"백지 상태로 스탠바이"... 69년 연기 열정 불태운 이순재 별세
서울대 재학 때인 1956년 연극 데뷔
연극, 드라마, 영화 등에서 종횡무진
1991년 '대발이 아버지'로 대중 인기
'거침없이 하이킥' 등에서 코믹 연기
"완성을 향한 도전과 노력이 숙명"
![[저작권 한국일보] 2016년 데뷔 60년 공연 '세일즈맨의 죽음'에 출연하는 이순재가 서울 대학로 아르코 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왕태석 기자](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5/hankooki/20251125164915798jsyc.jpg)
"배우는 항상 '백지 상태'에서 스탠바이 하고 있어야 됩니다. 백지 위에서 새롭게 개성을 그려나가는 것이지, 내 색깔이 이미 있는, 빨갛고 파란 바탕에서 그리기 시작하면 빨간색의 개성밖에 안 나오는 것입니다."
2008년 관악초청강연 연사로 모교 서울대를 찾은 이순재는 '배우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발이 아버지'처럼 큰 인기를 안겨준 배역을 작품이 끝나자마자 미련 없이 지워냈던 것도 이미지의 감옥에 갇히면 안 된다는 그의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69년 연기 인생 동안 그는 수백 편의 드라마와 영화, 연극 무대에 ‘백지 상태’로 뛰어들었다. 끝까지 예술인의 자존심을 지키며 창조적 욕구를 분출해온 최고령 현역 배우 이순재가 25일 오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햄릿' 보며 연기에 눈 뜨다

이순재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10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네 살이 되던 해 조부모가 살던 서울로 보내졌다. 착실한 모범생이었던 그는 1953년 서울고를 졸업하고 이듬해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처음 연기와 인연을 맺은 건 6·25전쟁을 피해 잠시 대전에 내려간 때였다. 충남여고 예술제에서 연극 공연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대전고에서 친구들과 함께 연극단을 만들어 공연을 올렸다. 대학 시절에는 단과대별로 흩어져 있던 연극부를 통합해 ‘서울대연극회’를 창설했다. 동시에 을지로의 국도극장, 충무로의 수도극장 등을 들락거리며 유럽 영화를 섭렵했다. 이때 로런스 올리비에가 주연한 ‘햄릿’을 보고 예술로서의 연기에 눈을 떴다고 그는 회고했다.

이순재는 대학교 3학년 때인 1956년 유진 오닐의 희곡 ‘지평선 너머’를 상연한 연극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정식 데뷔했다. 군 제대 후인 1961년 KBS 개국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를 통해 방송계에 입문했고 1964년 동양방송 공채 1기로 전속 연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활동 기록은 곧 한국 대중문화예술의 역사였다. 국내 최초 일일연속극 '눈이 나리는데'(1964)나 최초의 TV수사극 '형사수첩'(1965~1966) 등을 통해 얼굴을 알린 이순재는 1980년 전두환 정부의 언론 통폐합 조치로 TBC가 문을 닫을 때까지 100편이 넘는 드라마에서 활약했다.


영화계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66년 정진우 감독이 연출한 ‘초연’이 스크린 데뷔작이다. 1960년대 출연작에서는 냉소적이고 반항적인 청년들의 페르소나로 등장한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에도 꾸준히 영화 활동을 이어간 이순재는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최인현 감독의 '집념'(1976)에서 주인공 허준 역으로 열연해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남자연기상을 받았다. 후일 MBC 드라마 '동의보감'(1991)과 '허준'(1999)으로 이어지는(드라마에서는 스승 유의태 역) 깊은 인연의 시작점이다.
바른 리더의 조건 일깨운 정치 경험

이순재를 국민배우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은 1991년 방영된 MBC 주말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였다. 평균 시청률 59.6%로 역대 1위에 오른 이 작품에서 그는 가부장적이지만 따뜻한 아버지 역할을 능청스럽게 소화하며 ‘대발이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었다. 드라마의 선풍적인 인기는 13대 총선에서 한 차례 낙선했던 그가 1992년 14대 국회의원으로 여의도에 당당히 입성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이순재가 정치에 발을 들인 건 문화예술계의 어려움을 풀어보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4년 내리 국회 문화공보위원회 위원을 맡아 방송국에 저작인접권이 일임되어 있던 저작권법을 개정해 실연자인 배우의 권한을 제도화하는 등 문화정책 정비에 힘썼다. 신의가 없는 정치에 실망해 15대 출마는 포기했지만, 정치 경험을 통해 올바른 리더의 조건을 배웠다고 그는 말해왔다. 대중을 이끌 수 있는 힘과 정성, 반대하는 사람도 끌어 안는 포용력, 마지막으로 개개인의 역량을 묶어내는 협력의 리더십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국회의원 임기를 마친 뒤 연기자로 화려하게 복귀한 이순재는 배우로서 계속 스펙트럼을 넓혔다. '허준'(1999)과 '상도'(2001), '이산'(2007) 등 사극에서 근엄한 얼굴로 등장하다 코믹한 연기를 선보여야 하는 시트콤에 뛰어든 것이 대표적이다.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에서 그는 숟가락으로 손자들 머리를 내려치며 큰소리를 치다가도 순간순간 허당기를 드러내는 할아버지 역할로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였다. ‘야동 순재’ 별명은 노배우의 몸 사리지 않는 연기가 대중에게 인정받았다는 훈장이었다. 2013년에는 여행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 신구, 박근형, 백일섭과 함께 출연했다. 배운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지적인 호기심과 의욕이 넘치는 ‘직진 순재’의 모습이 또 한 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완성을 향한 도전과 노력이 배우의 숙명"

말년에는 그의 뿌리가 된 연극 무대에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80대 후반인 2023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작 ‘리어왕’에서 최고령 리어왕 역할을 맡아 3시간이 넘는 장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관객에게 큰 울림을 줬다. 2022년 안톤 체호프의 대작 연극 ‘갈매기’의 연출을 맡아 연출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지난해에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에스터를 한 달 정도 연기하다 담당의로부터 휴식을 권고받고 하차했다. 방송은 KBS에서 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개소리’가 유작이 됐다.

‘연기는 타고 나는 게 아닌, 철저한 연습을 통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소신을 갖고 후배 양성에도 힘썼다. 세종대 영화예술학과에 이어 가천대 연기예술학과에서도 석좌교수로 13년 재직하며 제자들을 지도했다. 현장에서도 멘토 역할을 자처하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드라마 새벽 촬영 도중 제대로 연기를 해내지 못한 후배에게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주자 “노케이(No-Kay)”를 외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역시 평생 예술로서의 연기를 치열하게 연구했다. 지난해 5월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특별무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이순재는 “연기가 쉽지는 않다. 평생 했지만 아직 안 되고 모자란 곳이 있다”며 “완성을 향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게 배우의 숙명”이라고 밝혔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라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그저 열심히 한 배우다 이렇게 기억해주시면 좋겠다”며 특유의 꼿꼿한 자세와 분명한 발성으로 '리어왕'의 한 대목을 연기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6시20분, 장지는 경기 이천 에덴낙원이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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