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팬덤 먼저 잡아라… K팝 ‘마이너돌’의 생존법

구아모 기자 2025. 11. 25.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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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국내 대신 해외로 진출
지난 8월 20일 보이그룹 NTX가 필리핀 현지 예능 프로그램 ‘EAT BULAGA’에 출연해 진행자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내 대형 아이돌 기획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NTX처럼 해외 시장을 겨냥한 ‘마이너 아이돌’이 늘고 있다./독자 제공

“싸랑해요!” “머쪄(멋져) 오빠들!”

지난 19일 오후 7시 경기도 일산의 1000㎡(약 300평) 규모 음악 방송 스튜디오는 300명이 넘는 팬들의 환호로 가득했다. 이들 중 100명 정도는 미국·캐나다·멕시코나 동남아, 일본·중국 등에서 온 해외 팬이었다. 금발의 10대부터 일본에서 온 40대 여성까지 다양했다. 온라인 신청으로 방청권을 얻어 한국을 찾은 해외 팬들은 가방과 옷에 아이돌 얼굴이 새겨진 배지와 인형을 가득 단 채 DSLR 카메라, 응원봉 등을 들고 줄을 섰다.

이날 녹화한 음악 방송엔 이른바 ‘마이너 아이돌’들이 나왔다. 지상파 3사에는 좀처럼 출연할 기회가 없는 ‘키라스’ ‘뉴이’ ‘엑스러브’ 등 14팀이 무대에 올랐다. 상당수가 국내보다 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해외 팬들의 충성도가 높다. 공연이 시작되자 팬들은 멤버 이름을 외쳤고 노래 가사에 맞춰 응원했다. 곳곳에서 영어·스페인어 대화가 들렸다. 안전 요원들은 이들이 휴대폰으로 사진·영상을 찍으려 하자 “노 셀폰!(휴대폰 안 돼요!)”이라고 외쳤다.

BTS나 블랙핑크 같은 메이저 아이돌 그룹이 아닌 소규모 아이돌들이 잇따라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K팝 미개척지’인 체코·폴란드·멕시코 등을 돌면서 해외 팬층을 쌓고 한국 무대로 역(逆)진입하려는 전략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등의 성공으로 K컬처에 대한 관심이 세계로 퍼진 덕이다.

그래픽=이진영

이들은 대개 출연료 없이 체재비만 받고 해외 투어를 다닌다. 대학 축제, 지역 페스티벌도 마다하지 않는다. 충성 팬들을 만드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해외 팬들의 수요가 많아 해외 한국 공관이 주최하는 문화 공연 등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한 중소 기획사 관계자는 “뮤직비디오 한 편 찍을 돈으로 유럽에서 무료 공연을 몇 차례 열어 2000~3000명씩 모으면, 그 자체가 마케팅 자산이 된다”며 “당장 돈이 안 돼도 장기적으로 팬을 확보하자는 전략”이라고 했다.

실제 케데헌 열풍 이후 한국의 음악 방송을 방청하러 온 외국 팬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음악 방송 관계자는 “관광뿐 아니라 워킹 홀리데이나 교환 학생, 취업 등으로 한국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 팬이 늘었다”며 “요즘엔 공연마다 외국인 비율이 30%를 웃돈다”고 했다. 멕시코에서 한국을 찾은 마야 앙헬레스(33)는 “제대로 ‘덕질’하는 팀만 열댓 팀은 된다”며 “회사에서 받은 휴가를 한국 아이돌 보러 오는 데 쓴다. 이들의 소규모 콘서트를 따라다니는 게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해외시장을 노리는 ‘마이너 아이돌’이 늘어나는 건 국내에서 성공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해마다 120여 아이돌이 데뷔하지만 70% 이상이 3년 안에 해체한다. 하이브·SM·JYP·YG 등 4대 기획사가 시장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 중소 기획사 아이돌이 방송 출연 기회를 얻거나 대형 스타디움에 서기 쉽지 않은 구조다.

/독자 제공지난 10월 25일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2025 콜롬비아 K페스티벌’에 참가한 보이그룹 NTX를 보기 위해 모인 해외 팬들 모습. NTX는 지난해에도 브라질리아·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루 등 중남미 도시 6곳을 돌며 공연을 했다./독자제공

4인조 보이그룹 ‘엑스러브’는 중남미·동유럽에서 먼저 팬덤을 키운 뒤 한국으로 돌아와 인지도를 넓혔다. 8인조 보이그룹 NTX는 작년 브라질 브라질리아·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루 등 여섯 도시 투어를 했고, 올해는 아마존 관문 도시 벨렝까지 포함해 10도시 투어를 돌고 있다. 벨렝 공연에선 3000석 전석이 매진됐다.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는 4인조 보이그룹 ‘트리거’는 도쿄 100석 소극장이나 대학 축제, 오사카 쇼핑몰 무료 공연 등 이른바 ‘밀착 공연’을 쉴 새 없이 소화하면서 고정 팬을 모으고 있다. 팬이 요청하면 셀카는 물론이고 하이파이브도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

해외를 도는 아이돌이 늘면서 소속사와 분쟁도 늘고 있다. 한 보이그룹은 지난 2022년 해외 투어 도중에 소속사 간부에게 폭행·협박을 당했다고 폭로했고, 최근 전속 계약 해지 소송에서 승소했다. 공항이나 해외 호텔 등에서 이어진 폭언·폭행 영상이 공개되자 “어린 아이돌이 해외 일정에 무리하게 동원되면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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