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자키·하쿠슈…5대 강국 일본 위스키, 와규보다 더 팔리는 비결

“18년 숙성한 몰트(맥아)의 상쾌함과 깊은 향, 익은 과일 맛인 듯 은은한 스모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 14일 일본 야마나시현 호쿠토시 하쿠슈초의 위스키 증류소 ‘하쿠슈의 숲’에선 이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안내를 담당한 일본 주류업체 산토리의 직원은 “일본 위스키 가운데 하쿠슈는 다양한 풍미에 오크통 향이 더해져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긴다”고 자랑을 이어갔다. 도쿄에서 3시간 정도 거리인 ‘하쿠슈의 숲’은 유네스코(UNESCO) 생물권보존지역인 ‘에코파크’ 자연 조건을 그대로 살려 만든 양조장으로 유명하다.

‘하쿠슈의 숲’에서는 일본 생수인 ‘산토리 천연수’가 생산된다. 산토리는 이 물을 이용해 세계 5대 위스키로 꼽히는 일본산 위스키의 대표 주자 격인 ‘하쿠슈’와 함께 ‘야마자키’를 만들고 있다. 위스키 맛의 또 다른 핵심 재료가 ‘캐스크’(숙성 통)인데, 이 회사가 보유한 캐스크가 120만개 정도로 알려졌다. 위스키용 캐스크는 개당 1만달러(1500만원) 정도라고 하는데, 위스키 술통에다 최소 10조원이 넘는 막대한 투자를 한 셈이다. 게다가 산토리는 숙성향을 내는 일본산 물참나무 통 수천개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산 위스키는 지난달 30일 새삼 주목받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서울 삼성동 한 치킨집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맥(치킨과 맥주) 모임’을 하면서 두 재벌 회장에게 하쿠슈 25년산을 선물로 내놨다. 일본 현지에서 720㎖ 한병 기준 50만엔(470만원), 한국에선 700만원 정도 수준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진 고급 위스키다. 실제 이날 시음장에서 마셔본 하쿠슈 18년은 애주가들의 기존 평가처럼 짙은 오크향 사이로 배·사과 맛 같은 과일향과 허브향이 어우러져 ‘위스키의 묘미가 이런 것인가’라는 느낌을 주기 충분했다.
일본 위스키는 1929년 4월1일 도리이 신지로가 ‘산토리 위스키’ 1호를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스코틀랜드산 위스키가 5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것과 견줘 100년 만에 눈부신 성장을 했지만 여러 부침도 겪었다. 특히 1983년 위스키 소비량이 극심한 감소세를 보이며 이후 25년간 어두운 터널을 걸어야 했다. 여기에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된 1990년대 버블경제에 한번 더 큰 타격을 입었다. 1980년대 소주붐, 1990년대 맥주 원료량을 줄여 값을 낮춘 ‘발포주’ 인기 등 경쟁 주류에 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산토리, 닛카, 기린 등 위스키 업체들은 생산량을 줄이더라도 사업 자체를 포기하지 않았다. 1980년대 한때 일본 주류시장 5.2%를 차지했던 일본 위스키는 2008년(0.9%)로 ‘1%’ 아래로 추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뜻밖에 ‘하이볼’ 열풍이 불면서 드디어 침체의 터널을 벗어났다. 2014년에는 일본 ‘닛카 위스키’ 창립자인 다케쓰루 마사타카의 일대기를 다룬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아침드라마 ‘맛상’이 대히트를 기록하며 위스키 인기에 한번 더 불을 댕겼다. 이어 일본 위스키는 서구 전유물로 여겨지던 고급 위스키를 현지화해 ‘세계 5대 위스키’로 불릴 만큼 뛰어난 품질로 끌어올렸다. 지난 2006년 ‘히비키 30년’이 세계 3대 주류 평가대회로 꼽히는 인터내셔널 스피리츠 챌린지(ISC)에서 3년 연속 최고상을 수상했다.
일본 위스키는 한때 애주가들에게 ‘변방의 위스키’ 정도로 취급되며 독특한 취미 생활 대상처럼 여겨지던 데서 그치지 않고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노무라증권이 지난해 9월 낸 ‘일본산 위스키의 지속적 성장 보고서’를 보면, 2022년 일본산 위스키 수출 금액이 560억엔(5300억원)에 이른다. 일본산 위스키는 일본 전통주인 ‘니혼슈’의 수출량을 2020년 이미 넘어섰다. 같은 해 일본산 소고기(와규) 수출액이 520억엔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위스키는 단순히 애주가들의 취미 생활을 넘어 일본 농수산·식품 분야 대표 수출품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2008년 일본 위스키 평균 단가는 리터당 1376엔(1만3천원)이었는데, 2022년엔 3933엔(3만7천원)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
세계적으로 통하는 술을 만들어 큰 수익을 내는 선순환 구조가 이어지자, 새 증류소들이 크게 늘어나며 관련 산업 영역도 확대되고 있다. 2014년 2건에 불과하던 위스키 제조면허 신규 취득이 2021년부터 3년간 평균 한해 31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스즈키 다쿠미 노무라증권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스카치위스키협회 조사에 따르면, 위스키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에 151곳 증류소가 가동 중인데 일본에서 91곳인 만큼 향후 지역별 특색을 지닌 일본산 위스키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관광산업과 연계해 지역 활성화에 상승효과도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 주류 산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 전통주의 해외시장 진출 주요 요인 및 수출 활성화 방안’ 논문을 보면, 2022년 세계 주류시장은 5308억5천만달러(781조원) 규모에 이른다. 하지만 같은 해 한국 술 수출량은 위스키 152만달러(22억원)를 포함해 소주, 맥주, 막걸리 등을 모두 더해도 3억6천만달러(5300억원) 규모로 일본 위스키 단일 품목 수출액에도 미치지 못한다.
야마나시/글·사진 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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