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만 수천곳인데”…산업계 ‘노란봉투법 협상지옥’ 열리나

김정환 기자(flame@mk.co.kr), 손동우 기자(aing@mk.co.kr),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5. 11. 2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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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걸린 기업들
조선사 하청비중 63% 달해
건설·철강도 협력사 수백곳
교섭단위 나눠질땐 부담 가중
업계 “협상 가이드라인 모호
이대로면 정상 경영 불가능”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개정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고용노동부가 24일 발표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은 기업(원청 사업자)과 하청노조가 공동 교섭에 합의하지 못하면 중앙노동위원회가 직권으로 사측과 교섭할 수 있는 하청노조들을 정해주겠다는 것이다.

내년 3월 시행되는 노란봉투법은 원청 사업자와 하청노조가 직접 교섭하도록 한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업들이 교섭해야 할 대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만큼 ‘공통분모’가 있는 하청노조들을 서로 묶어 공동 교섭에 나설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문제는 노동위원회가 하청노조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기준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수천 개 협력사를 하청으로 두고 있는 대기업들은 어떤 기준으로 노조를 묶을지 불분명하다고 토로한다. 교섭단위가 늘어나면 교섭이 지연되고 노조와의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가령 국내 최대 완성차 업체인 현대자동차는 사내외 협력사가 8500여 곳, 대표 조선 업체인 HD현대는 3900곳에 달한다. 건설업도 원·하청 구조가 복잡하다. 원도급사(종합건설사)가 전체 공사를 수주하고 토목·건축·전기 등 공종별 전문 건설사에 하도급을 주는 ‘3단 구조’가 기본인데 현장당 수십~수백 개 협력업체가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선·철강업계도 폭탄을 맞았다. 고용노동부의 통계 분석 결과 올해 제조업 하청 노동자(회사 소속 외 근로자)는 31만7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선업 사내하청 비중이 63%로 가장 높았고 건설(44.3%), 철강(35.6%), 전자부품·컴퓨터(16%), 자동차(10.2%)가 뒤를 잇는다. 유통업계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점포 운영부터 물류, 배송 등에서 위탁·용역 등 다양한 고용 형태를 복합적으로 쓰기 때문이다.

내년 3월부터는 이들 기업 노조는 원청 기업의 실질적인 지배력을 이유로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교섭에 응하지 않는 경우 파업에 나설 공산이 크다. 노동위원회가 특정 근로조건에 대해 원청의 실질적인 지배력을 인정하면 원청이 교섭 절차를 진행하도록 한 내용이 시행령에 담겼기 때문이다.

한 기업체 관계자는 “가뜩이나 대표 교섭권을 가진 원청노조와 교섭해도 해를 넘기는 경우가 많다”며 “아무리 교섭단위를 단일화한다고 해도 교섭단위가 수십, 수백 개로 늘어나면 1년 내내 교섭만 해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교섭창구를 분리하면 교섭단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밖에 없다”며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건설업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타격받는다”고 밝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데 안전 관련 비용은 늘어나고 노동 관련 교섭까지도 최악으로 몰리는 ‘3중고’가 덮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원청 사업자가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하청 기업과 교섭하는 데 따른 부작용도 상당하다. 하청 기업에 대한 경영 실적이나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로 교섭에 나서며 재무 부담이 커지고 소송 리스크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

원청노조에서 ‘노노 갈등’이 불거지며 경영 혼선이 가중될 소지 역시 농후하다. 현재 복수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선 교섭 대표 한 곳을 정해 사측과 교섭하도록 돼 있다. 재계에선 교섭권이 없는 원청노조가 하청노조처럼 교섭권을 달라고 요구하며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원청 업체와 하청노조 간 교섭은 원청 사용자의 사업장을 기준으로 교섭창구 단일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를 명확히 하는 시행령 개정을 별도로 하지 않았다”며 “향후 법적 분쟁이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영계는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을 더욱 객관적인 기준으로 정하도록 정부에 입장을 전달하겠다는 계획이다.

4대 그룹 관계자는 “어디까지 교섭해야 하는지 정부 가이드라인이 불명확하다”며 “이대로라면 경영 마비 상태가 올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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