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 단일화 자율에 맡긴다는 정부 … 현장 대혼란 불보듯

최예빈 기자(yb12@mk.co.kr) 2025. 11. 2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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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시행령 분석
직무 특성별 교섭단위 분리후
분리 단위 내에서 창구단일화
합의 안되면 노동위서 결정
원청·하청별 이해관계 달라
단일화 놓고 노노갈등 예고
사용자성 판단·노동쟁의 범위
고용부 가이드라인 변수될듯

"시행령의 교섭 단위 분리 기준이 지나치게 상세합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교섭 창구 단일화를 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실제로는 교섭 단위 분리에 길을 터준 겁니다. 사실상 모든 하청에 개별 교섭의 길을 열어놓은 셈이죠."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자율적 교섭 창구 단일화를 골자로 한 시행령 개정안을 24일 입법예고했다. 창구 단일화는 사측이 주로 희망해온 사안이다. 그러나 동시에 교섭 창구 분리를 원하는 노동계 요구도 수용했다. 이로 인해 원청이 많게는 수천 개에 이르는 하청업체와 개별적으로 교섭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노동위원회의 교섭 단위 분리·통합 결정 기준을 확대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25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노란봉투법 개정으로 하청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됐지만, 구체적인 절차가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고용노동부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교섭 절차 전반을 정비해 왔다. 이날 발표된 시행령 개정안은 원청이 근로 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범위에서 사용자로서 교섭 의무를 부담하도록 하고, 하청노조의 실질적 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한 절차를 규정했다. 원청과 하청의 교섭을 분리하되, 하청노조끼리는 자율적으로 교섭 창구 단일화를 우선 진행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자율적인 합의가 어려울 경우 노동위원회가 사용자·노조 등 교섭 단위의 통합 또는 분리를 결정한다. 구체적으로 △직무·이해관계·노조 특성이 현저히 다른 경우 개별 하청별로 분리 △직무 등 특성이 유사한 하청이 있는 경우에는 유사 하청별로 분리 △전체 하청의 직무 등 특성이 유사한 경우에는 전체 하청노조로 분리 등 다양한 분리 방안을 제시했다.

교섭 단위가 분리되면 이후 분리된 단위별로 단일화 절차를 진행해 각각의 교섭 대표 노동조합을 결정하게 된다. 정부는 하청노조의 교섭 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자율적인 공동 교섭단 구성과 위임·연합 방식의 자율적 연대를 지원해 소수 노조가 배제되지 않도록 지도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 같은 시행령이 마련된 배경에는 현행 노동조합법의 교섭 창구 단일화 규정이 있다. 현행법에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조직 형태와 관계없이 노동조합이 둘 이상 존재할 경우 노조들은 교섭 대표 노조를 정해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해야 한다"는 절차가 명시돼 있다.

즉 정부가 법의 취지에 맞게 하청노조가 실질 사용자인 원청과 원활히 교섭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만큼, 교섭 단위 분리·통합의 결정 주체인 노동위원회가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판례 등에서 제시했던 다양한 고려 요소를 추가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고용노동부는 내년 3월 노란봉투법 시행에 앞서 사용자성 판단 기준과 교섭 절차에 관한 지침·매뉴얼 등을 마련해 연내에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노란봉투법 통과로 하청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되자 노동계에서는 "하청들 사이의 이해관계와 노조 형태가 다양해 단일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노동계 의견을 반영해 교섭 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교섭 단위 분리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시행령에 담았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이번 노동조합법 시행령 개정안이 "겉으로는 교섭 창구 단일화를 원칙으로 삼았지만, 실제 내용은 교섭 단위 분리를 촉진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진단했다. 개정안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은 교섭 단위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고려해야 할 기준을 지나치게 세분화해 제시한 점이라고 강조했다.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한다는 정부의 취지 자체는 이해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기준들이 일종의 '근거 목록'이 돼 분리 요구를 유발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근로자 간 이해관계의 공통성, 이익 대표의 적절성, 갈등 가능성, 당사자 의사 등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요소가 포함돼 있어 사실상 어떤 경우든 분리 주장 근거가 될 수 있다"며 "노조마다 입장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이 기준을 적용하면 모든 노조가 '우리와는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원칙은 단일화라고 했으나 예외 조항이 지나치게 넓어져 원칙과 예외가 전도된 상태라는 판단이다.

'노노(勞勞) 갈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박삼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현장에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서로 다른 상급 단체 소속 노조가 공존하는 경우가 많아 교섭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 불가피하게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 비정규직 지회, 한국노총 산하 기업별 노조, 공공운수노조 산하 지회 등 다양한 하청노조가 이미 조직돼 있는 사업장에서는 교섭 대표권을 둘러싼 경쟁이 더 치열하게 벌어질 수 있다. 박 교수도 "단일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각 노조가 분리 근거를 찾아내려고 할 텐데, 시행령은 세부 기준을 너무 많이 적어놔 어느 하나는 반드시 걸리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이번 구조는 원청노조든, 원청 사업주든, 하청노조든 모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는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하청노조 입장에서는 왜 원·하청 전체를 하나의 사업장·절차 체계 안에 묶어 처리하려는지 납득하기 어렵고, 원청 사업주는 '이게 개별 교섭과 무엇이 다르냐'는 의문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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