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수함은 한미동맹 현대화 상징"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5. 11. 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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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외교관서 전략자문가 변신
헨리 해거드
동맹체제는 美 국익의 근간
예측불허 트럼프도 못 바꿔
핵잠 현실화 장벽은 높을 것
조지아사태 재발 않으려면
美 규제 환경 맞춰나가야
진주서 영어교사·방북 세 번
10년 주한 미대사관 근무도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이하 '핵잠') 승인은 현대화된 한미동맹의 모습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지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이뤄진 한미정상회담 이후 화제의 중심에 선 핵잠에 대해 미국의 베테랑 외교·안보 전문가는 이런 평가를 내놨다.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공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유럽국장, 미 국무부 에너지국장 등을 지낸 헨리 해거드(54)는 최근 매일경제와 만나 "미국 대통령이 '우리는 핵 관련 기술을 공유할 만큼 한국을 충분히 신뢰한다'고 말한 것"이라며 "한미동맹에 의문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강력한 신호"라고 했다.

"핵잠은 한반도가 아닌 중국과 대만을 향한다고 봐야 합니다. 미국 정부는 동북아 안보 리더로서 한국의 역할을 촉구해 왔죠. 한국이 당장 특정 분쟁에 끼어든다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핵잠 보유는 지역 안보 문제에서 한국의 리더십이 한 단계 진화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는 25년을 미 국무부 소속으로 일하는 동안 한국에 세 차례, 총 10년간 부임했던 자타공인 '지한파'다. 2000년대 주한 미국대사관 영사, 정치팀장 등을 맡아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깊은 인맥을 쌓았다. 한국계 아내와 결혼해 두 아들도 서울에서 낳았다. 지난해 은퇴 후엔 미국 고위 관료들이 설립한 전략 자문사인 웨스트이그젝 어드바이저스(WestExec Advisors) 선임고문, 모교인 미국 라이스대의 베이커인스티튜트 선임연구원 등을 맡고 있다.

외교·통상·산업 거의 모든 영역에서 미국은 '연구 대상'이 된 게 사실이다. 자문 수요도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불허 성향 탓에 리스크가 한층 커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동맹 우호국에 수지타산을 따지며 관세폭탄을 퍼부은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해거드는 "그런 우려를 느낄 만하다"면서도 "미국의 근본 이익상 동맹 체제에 변화는 없다"고 힘줘 말했다. "한국에 체류 중인 20만 미국 시민에게서 등 돌릴 대통령은 없습니다. 양국 사이엔 350만명의 한국계 미국인,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3만6000명의 미국인 참전 용사 등 수많은 연결고리가 있죠. 이런 모든 관계가 양국의 미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다만 해거드는 한국형 핵잠 실현 여부에 대해선 "수년이 걸리거나 아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며 "트럼프 외교에선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여지를 남겼다. "핵발전과 관련한 미국 의회의 승인, 주변국의 입장 등 다양한 대화가 일어나고 있죠. 잠수함을 어디서 누가 건조할지도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매우 어려운 과정이라 현실화된다면 아주 놀랄 만한 일입니다."

그는 또 한국 기업을 향한 조언으로 "너무 서두르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지난 9월 LG에너지솔루션의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단속 사태의 방지책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의 눈부신 성장에 도움이 됐고 큰 경쟁력"이라면서도 "큰 규모의 투자가 안전하게 유지되도록 새로운 규제에 맞춰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인터뷰는 주로 영어로 진행됐지만, 그는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섞어 말했다. 외교관이 되기 전인 1997년 처음 한국에 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부터 배운 덕분이다. 당시 한국에 흥미를 느껴 경남 진주에서 1년간 원어민 교사 생활을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한국에 와 사랑에 빠졌죠. 합천, 마산, 통영, 여수, 밀양, 군산…. 아름다운 도시가 많았어요. 외교관으로서 북한에도 네 번이나 갔어요. 아름다운 금강산의 풍경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해거드는 외교관으로서 프랑스, 이라크에서도 일했지만 가장 열정을 갖게 된 곳은 역시 한국이었다. "한국과 미국·유럽 사이 가교 구실로 더 많은 일을 하고자 은퇴했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아시아에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서 잠재력도 큰 만큼 더 많은 미국인과 미국 기업을 한국에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이제 한미 간 상업 외교관이자 한국을 위한 홍보대사로 활동합니다. 한국 기업과 문화가 교두보를 넘어 미국 전역에 '착륙'하는 날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요?"

[정주원 기자 / 사진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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