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해도, 10번 없어도 "재방문"…말뿐인 매뉴얼, 인구주택조사 현장

국가데이터처의 '2025 인구주택총조사' 조사원들이 응답률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폭언한 대상자에게 재방문하라거나 여러 차례 응답이 없어도 '불응' 처리가 안되는 등 매뉴얼을 벗어난 방식을 강요당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는 무리하게 조사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또 표본 대체가 잦을 경우 조사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설명과 함께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의 한 주택가. 조사원 이모씨(39·남)는 심층 조사 표본 가구로 선정된 한 집의 문을 두드렸다. 이 집은 이미 세 차례 이상 방문해도 응답이 없어 매뉴얼상 '불응'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가구였다. 하지만 이씨는 관리자 압박으로 기준을 넘어선 네 번째, 다섯 번째 방문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씨의 조사구 관리자는 같은 조사구 조사원들의 진척률을 비교하며 "이번 주는 50%를 넘겨야 한다"고 독려 문자를 보냈다. "폭언이 있어도 조사를 감행하라"는 지시도 있었다. 규정상 불응으로 처리하고 다시 방문하지 않아도 되지만 지시는 계속됐다.
응답률을 높이라는 압박이 거세면서 현장에서는 매뉴얼상 '불응 가구'를 10회 이상 반복 방문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조사 매뉴얼은 조사원을 위협하거나 설문을 3회 이상 거부한 가구는 관리자 확인 후 불응 처리하고 재방문 여부를 관리자와 상의하도록 돼 있다.

조사원으로 참여한 임모씨(57·여)가 배정된 지역은 표본 가구 90%가량이 남성 거주자로 구성된 원룸촌이었다. 낮 시간에 집을 비운 가구가 많은 터라 조사기간 한 가구를 평균 13~14회씩 방문했지만 진척률을 높이기가 어려웠다. 관리자는 임씨에게 '야간 잠복 조사'를 지시했다. 밤 9시에 부재 가구 앞에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라는 이야기였다.
임씨는 "캄캄한 원룸촌에서 속옷만 입은 남성에게 고함을 들으면 너무 무서웠다"며 "위협적으로 여러 번 불응한 곳은 다시 가기가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블로그 댓글에서도 조사원 후기가 잇따랐다. 한 조사원은 "전화를 하거나 방문했을 때 소리부터 지르며 조사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대응하려 하면 더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해 무서웠다"고 적었다. 또 다른 조사원은 "밤 10시에 '통계청 돈은 그냥 주는 게 아니다'라는 문자 압박을 받았다"고 썼다.
관리자들로부터 야간 잠복과 불응 가구 반복 방문 등 불합리한 지시를 받자 조사원들은 자구책을 만들었다. 임씨는 "두려워서 남편이나 친구에게 같이 가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야간에 손전등을 들고 홀로 조사에 나선 여성 조사원들도 있었다. 국가데이터처의 인구주택총조사 조사지침서에 의하면 위험 발생 우려 지역을 방문할 경우 조사관리자와 2인 1조 동행 조사하도록 돼 있다. 공식 지시는 아니었지만 조사원들 사이 '부재 가구 앞 차량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자'는 편법도 공유됐다.
국가데이터처 관계자는 조사원들의 고충 토로에 "현장 조사 안전이 가장 기본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활동하면 안 된다는 부분을 충분히 강조했다"며 "현장 조사원, 관리자, 지방자치단체의 다양한 의견을 받아보고 불합리한 조사 사항과 민원을 종합 모니터링해서 2030년 조사에서는 개선해보겠다"고 밝혔다.
국가데이터처가 선정한 표본 가구 응답률을 높여야 조사 신뢰도가 높아진다고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인구주택총조사는 전국 20% 가구를 표본으로 하는 대규모 조사여서 (조사를 안 해준다고) 표본을 대체할 경우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며 "응답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통계 신뢰성이 높아지는데 어쩔 수 없는 경우는 무응답으로 처리하고 통계를 보정하는 방식을 쓴다"고 말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22일부터 지난 18일까지 500만여 표본 가구 대상 조사가 이뤄졌다. 일부 시군구는 조사 기간을 연장해 이달 내로 조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이정우 기자 vanill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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