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재계가 쏘아올린 '금산분리 완화', 응답 받을까
사실상 금산분리 이슈…'금융'서 '산업'으로 중심 이동
최근 재계에 '금산분리' 키워드가 부각되는 모습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금산분리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애둘러 표현하면서인데요.
'금산분리'란 단어가 느닷없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최근 몇년 동안 꾸준히 언급됐죠. 다만 이번의 금산분리는 사뭇 방향이 다릅니다. 그간 금산분리를 이야기 해왔던 게 금융권이라면 이번에는 산업계에서 나왔다는거죠. 현재 논의되는 '금산분리' 방향성 또한 다르게 볼 여지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금산분리가 무엇이길래 뜨거운 감자가 된 걸까요? 최태원 회장은 왜 금산분리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언급한 걸까요? 그 이유를 살펴봅니다.

금산분리란?
금산분리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도록 하는 규제를 말합니다. 금융자본을 바탕으로 하는 회사는 제조업 등 비금융회사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죠. 반대로 비금융 사업을 주로 영위하는 회사는 금융회사 자회사에 제한을 둡니다. 금융업의 꽃인 은행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섞이지 못하도록 원천 금지하고 있죠.
금산분리 규제는 왜 도입됐을까요? 이는 금융회사라는 존재가 자금조달 측면에서 상당한 이점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금융회사는 말 그대로 '돈'을 다루는 회사기 때문에 돈이 쉽게 오고가죠. '라이선스'만 있다면 시장으로부터 쉽게 돈을 흡수 할 수 있고요 관리 또한 수월합니다. 이 때문에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합쳐지면 자본 조달이 수월해지면서 회사 '덩치'를 쉽게 키울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뚜렷합니다. 금융자본과 융합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죠. '자금력'에서 소위 게임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실'에 대한 리스크도 매우 커집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기업이 금융자회사 B로부터 자금을 끌어와 부실 가능성이 높은 제조업 회사 C를 연명시켰다고 가정하죠. C의 상황이 좋지 않아져 부실이 나면 A는 물론 B에게도 부실이 전이됩니다. '금융회사' 타이틀을 보고 B 회사에 돈을 맡기거나 투자한 이들 역시 피해가 전이되죠. 특히 '금융회사'에 돈을 맡긴 이들에는 일반 투자자와 금융소비자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울러 리스크가 전체 금융권으로 전이되는 '시스템 리스크'도 커지죠.
이에 우리나라는 금융지주회사법, 은행법, 보험업법,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 등 다양한 법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두 자본을 나누도록 하는 장치를 오랜기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은행 경영권을 좌우할 정도의 지분을 쥐고 있다면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도록 해야하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비금융산업 진출을 원천 차단합니다. 산업자본의 경우는 은행의 지분을 일정 수준(4%)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해 산업자본의 은행진출을 막고요.
인터넷전문은행과 같은 특수한 경우는 아예 특별법을 새로 만들어 다른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산업자본과 융합하더라도 금융시스템을 해치지 않을 가능성이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 감독이 용이한 보험회사나 금융투자회사는 제한적으로 진입을 허용합니다.
일반 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가질 수 없도록 제한되는데요. 일반 지주사로 전환한 롯데의 경우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을 매각했지만 그렇지 않은 삼성, 한화, 현대차 등은 아직까지 일부 금융회사의 경영권을 쥐고 있죠.
최태원, 금산분리 띄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이 개최했던 기업성장포럼에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애둘러 표현했습니다.
최태원 회장은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숫자들을 각 나라들이 투자하고 있다. '이게 말이 되나'라고 할 정도의 숫자"라며 "규모뿐만 아니라 속도의 게임도 있는데 집중화된 자금과 플랜을 만들지 못하면 이 AI 게임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금산분리규제 완화를 해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 숙제를 해낼 수 있는 방법론이 필요하다"라며 "공정거래법이 기업집단을 규제해 왔지만 아무도 그게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의 성장에 맞춘 새로운 규제의 틀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매우 적극적이고 속도감 있게 이뤄지고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 것의 이유 중 하나가 기업들이 펀드를 조성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으로 읽힙니다.
예를 들어 SK그룹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AI 투자에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SK는 이를 위해 자금 조달을 진행할 경우 은행대출, 회사채 발행, 유상증자 등 방법이 제한적입니다.
반면 해외 기업의 경우 벤처캐피탈 조직이 중심이 돼 타 펀드와의 공동 펀드를 조성, 외부로부터 천문학적인 자금을 끌어오는 방법도 활용하고 있죠.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블랙록이 만든 AI인프라 메가펀드(AIP)가 대표적이죠. 블랙록이라는 금융회사와 마이크로소프트 및 엔비디아라는 빅테크가 힘을 합쳐 자금을 조성하는 건데요. 모일 것으로 전망되는 자금 규모가 최대 1000억달러에 달할 거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같은 펀드 조성은 할 수 있지만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차이가 있습니다. AIP의 경우 마이크로소프나 엔비디아가 펀드의 전략 등(투자처 등)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SK와 같은 기업이 참여해도 펀드의 전략과 관련한 의사결정 없이 '돈'만 넣어야 합니다.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는 지향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설계 당시 원했던 방향으로 투자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는 AIP와 같은 펀드 조성자체가 힘들다는 겁니다.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AI를 둘러싼 '쩐'의 전쟁이 시작된 가운데 우리나라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 검토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분석입니다.
이전까지 금산분리와 다른 이유…더 커진 '반대' 목소리
이전까지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한 논의는 금융산업을 관리·감독하는 금융위원회 중심으로 이뤄져왔습니다. 지난 2022년 김주현 전 금융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꺼내들면서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죠.
금융위원회가 중심이 된 만큼 그 방향도 금융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산업환경 변화로 인해 금융업을 둘러싼 환경도 변하고 금융업의 생존 수단을 고민하면서 금융회사가 쌓아둔 데이터를 비금융업과 함께 활용한다면 더 높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죠. 이후 금산분리 규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금융지주사나 은행이 규제특례(샌드박스)를 다양한 비금융업 분야에 통해 진출했습니다. 알뜰폰이나 배달서비스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반대로 당시 산업자본이 금융업을 좀 더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은 논의 대상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금산분리 규제는 금융과 산업 양방향으로 적용되던 규제인데 특례 조치는 금융산업에만 일방향으로 이뤄진 것이었죠. 심지어 비금융 자본에서 불공평하다는 이야기가 확대되자 당시 금융위는 '금산분리' 대신 '금융산업의 비금융업 진출을 위한 제도 개선'이라고 쓸 정도였습니다.
최태원 회장이 던진 금산분리 화두는 과거와 달리 '산업자본' 중심의 규제 완화 필요성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산업이 중심이 돼 돈을 굴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 방향이 '금융→산업'에서 '산업→금융'으로 변화했기 때문이죠.
이전까지 금융업의 비금융업 진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적었습니다. 금융회사가 막강한 자본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산업의 구조가 고착화 된 상황에서 '자본력'만을 가지고 산업 생태계를 헤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게 핵심 이유였습니다.
실제로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은 출범 초기 압도적인 금융자본을 바탕으로 100만명의 고객을 1년 안에 모을 거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6년여가 지난 현재 45만명으로 기대했던 모객 규모의 절반에도 못미쳤죠. 신한은행의 배달앱도 점유율 10%를 넘지 못하면서 쿠팡이츠와 배달의민족을 아성을 위협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점유율이 크게 상승했다지만 지자체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실상 어려웠을 거란 분석입니다.
반면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진출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 목소리가 큽니다. 이미 산업을 잠식하고 있는 기업집단이 금융자본이라는 힘을 얻게 되면 관련 산업에서 더 막강해질 것이란 우려때문입니다. 최태원 회장이 언급한 펀드 조성만 가능해져도 이 자금이 펀드 주도 기업 관계사 중심으로 흘러들어가게 되면 '승자독식' 구조가 고착화 될 거라는 겁니다.
우리나라 금산분리규제는 1970년대부터 50년이 넘는 기간동안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환경이 빠르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그렇다할 성과는 아직 없였죠. 그만큼 의견차가 첨예하기 때문일 겁니다. 국회는 이르면 내달 중 금산분리 규제 완화 내용을 본격적으로 논의한다고 합니다. 50년이 넘은 금산분리와 작별하게 될지, 더 굳게 한국 경제에 고착화할지 지켜보시죠.
이경남 (lk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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