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증기기관 발명한 와트와 ‘국부론’의 스미스는 경계 넘어 교류했다
‘칸막이' 넘어야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게 올해 노벨경제학상의 교훈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기술 혁신과 경제 성장을 규명한 조엘 모키어, 필리프 아기옹, 피터 하윗 등 세 명에게 돌아갔다. 특히 모키어 교수는 역사적 관찰을 통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어떻게 서구에서 가능했는지, 하필이면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처방적 지식(prescriptive knowledge)’이 ‘명제적 지식(propositional knowledge)’과 결합하는 독특한 문화가 산업혁명을 탄생시켰다고 설명하며, 그 시작점을 증기기관의 탄생으로 보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 오늘날 한국 사회가 새겨야 할 메시지가 있다.

1757년 영국 글래스고 대학 교수들은 솜씨 좋은 기계공 제임스 와트를 불러 대학 내 작업장을 맡긴다. 이 중에는 나중에 경제학자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도덕철학 교수 애덤 스미스가 있었고, 의대 교수 조셉 블랙도 있었다. 교수들과 친구가 된 제임스 와트는 글래스고 대학이 소유한 뉴커먼 증기기관을 처음 보게 된다. 이처럼 증기기관은 제임스 와트가 최초로 만든 게 아니다. 뉴커먼의 증기기관은 물을 끓인 수증기가 피스톤을 상승시키고, 실린더에 찬물을 끼얹어 하강시키는 방식이었다. 와트는 이 방식의 문제점을 알아차렸다.
물을 데우면 온도가 올라가다가 일단 끓기 시작하면 아무리 가열해도 100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이때 계속 더해지는 열은 물의 온도를 올리는 대신 물을 수증기로 바꾸는 데 사용되는 것이다. 이것이 친구 조셉 블랙 교수가 밝혀낸 ‘숨어 있는 열’, 즉 잠열(潛熱, latent heat)이라는 개념이었다. 수증기로 만드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굳이 이를 다시 물로 응축하는 것이 낭비라는 의미다. 일단 와트는 응축기(condenser)를 실린더 외부로 빼내는 특허를 낸다.
문제는 실린더 내부에 작동하는 수증기가 피스톤 틈새로 새는 것이었다. 의외의 곳에서 실마리가 풀린다. 런던 왕립 학회 회원이던 의사 이래즈머스 다윈은 버밍엄에서 계몽주의 모임 루너 소사이어티(Lunar Society)’를 이끌고 있었다. 어느 날 말에서 떨어진 과학자 프리스틀리가 다윈에게 치료받으러 왔다가 이 모임에 참여한다. 1774년 와트가 여기에 합류하며 프리스틀리의 처남 존 윌킨슨을 알게 된다. 그리고 윌킨슨이 개발한 ‘보링(boring)’ 머신은 수증기가 새는 문제를 단숨에 해결한다. 이렇게 1776년 와트의 증기기관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모키어 교수가 영국 산업혁명의 배경으로 지목한 루너 소사이어티에서는 이처럼 지식인들이 분야와 경계를 넘어 교류했다. 그중에는 도자기 업자 웨지우드와 같은 사업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중에 웨지우드와 친구가 된 이래즈머스 다윈은 자기 아들을 웨지우드의 딸과 결혼시키는데, 이 부부가 낳은 아들이 찰스 다윈이다. 한편 애덤 스미스는 친구였던 와트의 증기기관이 작동하기 시작한 바로 그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책 하나를 출판한다. 이 책이 바로 ‘국부론’으로, 이 1776년을 기점으로 비로소 서양이 동양을 앞서기 시작했다.
노벨상 위원회는 올해 노벨경제학상의 업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혁신이 계속되려면, 무언가가 작동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왜 그런지 과학적 설명도 필요하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이게 부족해서 발견과 발명이 발전하기 어려웠다.” 처방적 지식은 노하우가 중요한, 어떻게 보면 기술 장인들의 지식이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부터 중국의 화약, 나침반, 종이에 이르기까지 혁신 기술은 많았다. 하지만 이들이 작동하게 되는 원리를 설명하는 명제적 지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노하우는 단절될 수 있지만, 책으로 기술되는 명제적 지식은 전승된다.
더 중요한 것은 두 지식의 결합이다. 뉴커먼 이전에 증기기관을 만들었던 토머스 세이버리와 드니 파팽은 학자에 가까웠고, 뉴커먼은 기술 장인이었다. 기계공이던 와트를 친구로 받아들인 교수들이 없었다면, 과학자들과 기업인들이 자유로이 토론하던 루너 소사이어티가 없었다면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뉴커먼의 증기기관은 혁신적이었지만, 1분에 열두 번 물을 퍼 올리며 효율이 너무 낮았다. 이에 비해 명제적 지식이 결합한 와트의 증기기관은 석탄 소모량을 무려 절반으로 줄였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런 기회를 만들지 못했을까. 모키어 교수는 저서 ‘성장의 문화’에서 성리학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굳어지며 정착한 과거 제도를 지목한다. 능력주의 관료들을 양산했지만, 암기가 반복되며 중국은 서서히 쇠퇴한다. 모키어 교수는 서양의 계몽시대에 중국 출판물 상당수가 시험 대비용이거나 실무 서적이라는 점을 꼬집는다. 더 큰 문제는 학자들과 기술자들과의 괴리. 학자는 있었지만, 기술은 천시했다. 처방적 지식과 명제적 지식은 결합할 수 없었다. 아마 조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이런 교류가 활발할까. 과학을 기술과 구분하려는 문화는 명제적 지식과 처방적 지식을 결합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 구체적 문제의 해결은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험 성적으로 진로가 정해지는데, 다양한 분야를 모아 놓은 대학에서조차 전공의 벽을 넘는 교류를 찾기 힘들다. 누구나 한국 제조업과 산업의 전망이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눈앞에 맞닥뜨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분야와 경계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올해 노벨경제학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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