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폭발 위험 줄이고 수명 두 배 ↑
“분자 한 겹 설계만으로 리튬
금속전지 양극·음극 동시에
안정화한 혁신적인 사례”

마치 얇은 방탄조끼가 앞뒤 양쪽 공격을 동시에 막아내듯, 분자 한 겹 두께의 분리막이 양극과 음극을 동시에 보호하는 원리다.
포스텍 화학과 박수진 교수, 한동엽 박사, 경상국립대 이태경 교수, 이지윤 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송규진 박사로 이루어진 공동연구팀은 '분자조절 멤브레인(molecularly engineered membrane)' 기술을 개발해 에너지 소재 분야 국제 학술지인 '에너지 앤 인바이런먼털 사이언스(Energy & Environmental Science)'에 최근 발표했다.
리튬이온전지는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에 널리 쓰인다. 하지만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같은 크기에서 약 1.5배 더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리튬금속전지가 차세대 전지로 주목받고 있다. 전기차로 치면 한 번 충전해 400km를 달리던 것을 650~700km까지 늘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문제는 안전이다. 리튬금속전지를 충·방전할 때, 리튬이 전극 표면에 고르게 쌓이지 않고 나뭇가지처럼 삐죽삐죽 자란다. 이를 '덴드라이트(dendrite)'라 부른다. 동굴에서 종유석이 자라듯, 자란 이 가시가 전극 사이 분리막을 뚫고 반대편까지 닿으면, 배터리 안에서 합선이 일어나고 폭발이나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팀은 양극과 음극 사이에 끼워진 분리막에 분자 수준 기능을 넣었다. 단순한 분리막 표면에 플루오린(-F)과 산소(-O) 기반 극성 작용기를 화학적으로 붙여, 전극 경계면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 결과, 리튬 금속이 쌓이는 음극에서는 리튬 플루오라이드(LiF) 보호층이 고르게 만들어져 덴드라이트 생성을 막았다. 양극에서는 해로운 불화수소(HF) 생성을 차단해 전극이 무너지는 것을 막았다. 한 장의 얇은 분리막이 양극과 음극을 동시에 안정화하는 '이중 보호막' 역할을 한 것이다.
실제 전기차 구동 환경에 가까운 조건에서 실험한 결과, 높은 온도(55°C)와 적은 전해액, 얇은 리튬 음극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에서도 208회 충·방전 후 처음 용량의 80%를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파우치형 전지로 만든 셀은 무게당 385.1Wh/kg, 부피당 1135.6Wh/L의 높은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다. 지금 쓰이는 리튬이온전지(250Wh/kg, 650Wh/L)보다 각각 약 1.5배와 1.7배 높은 수치다.
연구를 주도한 박수진 교수는 "이번 연구는 분자 한 겹 설계만으로 리튬금속전지 양극과 음극을 동시에 안정화한 혁신적 사례"라며 "수명과 안정성, 에너지 밀도를 모두 높이면서 지금 있는 리튬이온전지 공정에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성과"라고 밝혔다.
경상국립대 이태경 교수는 "밀도 범함수 이론 계산과 분자 동역학 시뮬레이션으로 분리막 안 작용기의 전자구조와 경계면 반응을 원자 수준에서 밝혔다"라며 "이론적으로도 분자조절 멤브레인 안정화 효과를 입증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송규진 박사는 "이번 기술은 에너지 저장장치 등 대형 전력망에도 쓸 수 있는 높은 내구성과 안전성을 갖춘 실용 기술"이라며 "친환경 고에너지 전지 상용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사업과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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