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원장 “기업들, 규제 탓 말고 대안 찾아야”···‘금산분리 완화’ 등에 공개적 제동
“제도 바꾸려면 분명한 이유·사회적 합의 있어야”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금산분리 완화’ ‘지주사 손자회사 지분율 요건 완화’ 등의 재계 요구에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면서 관계 부처 간 관련 논의는 진통이 예상된다. 주 위원장은 “경제력 집중이나 독과점 폐해는 아직도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문제”라면서 강경한 입장으로 ‘규제 탓’ 대신 첨단 전략산업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금산분리 완화’ ‘지주사 규제 완화’ 논의기 시작된 곳은 대통령실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만난 자리에서 AI 분야에 한해 금산분리 등 규제 일부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고, 뒤이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호응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첨단전략산업에 투자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도 최근 지주회사 손자회사의 의무 지분율을 100%에서 50%로 완화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자회사가 더 많은 증손회사를 거느릴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셈이다. 재계는 투자자금 조달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혁신적이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만큼 지주회사의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금융회사 보유를 일정 부분적으로 허용하거나 투자회사 설립을 통한 자금 조달 경로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주 위원장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상당히 강한 어조로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그는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기업들이 본업에 충실해 연구개발(R&D) 혁신을 계속하는 것으로, 그동안 전략산업 분야에서 잘나가는 기업은 이런 투자를 잘 해왔다”며 “주요 기업이 규제 탓만 하고 투자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 위원장은 금융사 소유가 아닌 자본시장 조달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는 “자본 조달은 시장의 판단에 맡겨야 하며, 수출 실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을 기업이 자신의 책임하에 투자할 때 가장 책임 있는 투자가 가능하고 위험도 최소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구글·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은 자체 현금 흐름과 회사채 발행으로 투자금을 조달한다. 일본 소프트뱅크처럼 외부 펀드 자금을 가져오는 경우는 드문 케이스다.
주 위원장도 “기업들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처럼 투자회사를 만들어 이미 큰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등으로 유니콘 기업이 될 작은 씨앗을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금산분리 원칙이 허들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주 위원장은 (제도를) 바꾸더라도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꾸려면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변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방지하는 방안,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본업에 투자하는 데 과연 금산분리 완화가 필요한지 우리 사회가 같이 고민해봐야 한다”라며 “(향후) 필요한 자금이 10년 동안 몇백조 원인데, 이게 어렵다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고 이 때문에 규제를 허무는 실수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주 위원장의 공개적 발언으로 향후 정부의 논의도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앞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나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규제 완화에 찬성하는 목소리를 내비쳤으나 주무부처에서 나온 신중론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기업이 직접 설립하고 운영하는 벤처캐피털인 CVC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현재 외부 자금 조달 한도가 40%이고 해외투자 한도가 20%인데 이를 상향하는 방안 정도로 타협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산분리는 비용-편익 분석의 대상이 되는 공공정책으로, 비용과 편익을 엄격히 검토해야 한다”며 “기술선도성장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금산분리 완화인지는 엄격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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