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부터 롤링까지…영국 거장들 부산에 모였다는데

김덕식 기자(dskim2k@mk.co.kr) 2025. 11. 2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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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 보는 틴매일경제
탐방기
브론테 자매의 다이닝 룸을 재현해 둔 공간. [서나은 인턴기자]
‘좋은 소설에서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신사든 숙녀든 참으로 불행한 이일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사원’ 중 한 구절입니다. 좋은 소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장을 붙잡고 있게 만들죠. 지난주 많은 사람들의 ‘인생 소설’을 만들어낸 작가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바로 9월부터 아시아 최초로 부산박물관에서 열린 ‘거장의 비밀: 셰익스피어부터 500년의 문학과 예술’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아서 코넌 도일, J K 롤링 등 영국 문학 작가 78인의 초상화와 친필 원고, 편지, 초판본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총 5부로 구성돼 그들의 삶과 문학적인 빛과 그림자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1부의 테마는 ‘작가를 찾아서-글, 초상, 그리고 삶’입니다. ‘호빗’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써 낸 존 로널드 루엘 톨킨과 ‘황무지’의 작가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작품인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는 뮤지컬 ‘캣츠’의 원작이라고 합니다.

2부 ‘위대한 여정-거장이 되기까지’에서는 작가들의 생애를 살필 수 있었습니다. 전시는 초상화뿐 아니라 사진, 이메일 기록, 관련 조각상, 친필 편지 등 다양한 자료들로 채워져 있었어요. 특히 작가의 활동 시기에 그려졌던 초상화에는 관련 일화도 함께 있어 유익했죠. ‘더버빌가의 테스’를 쓴 토머스 하디의 초상화는 화가가 하디의 말년 3년 동안 여러 차례 작업실을 방문해 완성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디는 완성된 그림을 보고 ‘내가 저렇게 생겼다면, 차라리 땅속에 들어가는 게 낫겠네’라는 말을 했다고 하죠.

3부 ‘억압과 검열, 그리고 저항-장벽에 맞선 작가들’에서는 성별·종교·성적 지향 등에 따른 사회적 억압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낸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가는 브론테 자매였습니다. 첫째 샬럿 브론테는 ‘제인 에어’로, 둘째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으로, 막내 앤 브론테는 ‘애그니스 그레이’로 잘 알려져 있죠. 브론테 자매는 남성 중심의 문단에 들어서기 위해 남성 필명을 사용하며 정체를 숨겼습니다.

오랫동안 영국 문학계에서는 인간의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것이 금지됐습니다. 또 글은 남성의 전유물이었죠. 그렇기에 당대 작가들에게 글쓰기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자신을 표현하려는 치열한 투쟁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금서로 지정되거나 핍박받기도 했지만 현대에 와서 비로소 ‘명작’의 반열에 오른 수많은 작품을 마주하며 시대를 거스르는 글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4부 ‘명성-빛과 그림자’에서는 ‘앨리스’의 루이스 캐럴, ‘크리스마스 캐럴’의 찰스 디킨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로알드 달 등 모두가 잘 아는 작품과 작가들이 이어졌습니다. 셰익스피어와 J K 롤링, 애거사 크리스티도 4부에서 만날 수 있었죠. 작가에게 명성과 성공은 큰 보상이지만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되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6세기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시인.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고 공연되는 문학·연극계의 거장.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햄릿’이 실린 4대 비극, ‘베니스의 상인’ 등 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작품들을 남겼다.
작품 속 캐릭터가 인기를 얻으면 작가의 다음 행보를 좌우하며 작가를 그 캐릭터의 틀에 가둬버리기도 하죠. ‘곰돌이 푸’의 작가인 A A 밀른은 다른 작품을 많이 남겼음에도 ‘곰돌이 푸’의 작가로만 기억됐으며, 푸의 모티브였던 아들 로빈은 평생을 ‘책 속의 아이’라는 꼬리표에 시달렸다고 해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아서 코넌 도일도 자신이 ‘셜록 홈즈’의 작가로만 기억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홈즈를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출판사와 대중의 반발 때문에 다음 작품에서 그를 부활시켜야만 했죠.

마지막 5부 ‘글의 힘-세상을 바꾸는 글쓰기’에서는 기성 체제에 도전하기 위해 글을 무기로 든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시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은 평생을 사회 부조리에 맞서 싸웠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문이 노예 농장을 소유했던 것을 ‘가문의 저주’라고 부르며 노예제 폐지를 위해 목소리를 냈고, 여성 불평등 문제에도 앞장섰습니다.

여운을 가지고 마지막 커튼을 걷자 시 낭독을 감상할 수 있는 방과 작품들을 필사할 수 있는 방이 보였습니다. 감상 방에서는 헤드폰을 끼고 듣고 싶은 시를 고르면 귀에서 원문 시가 흘러나왔어요. 눈앞의 화면에는 원문과 번역본이 함께 제시돼 운율을 느낌과 동시에 의미도 알 수 있었죠. 필사 방에는 전시에서 만났던 작가들의 책이 한가득 있었습니다. 엽서에 인상 깊은 구절을 직접 필사할 수 있어 ‘나만의 기념품’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이 전시는 부산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내년 1월 18일까지 열립니다. 문학계 거장들이 한자리에 모인 전시, 한번 방문해보는 게 어떨까요? 김덕식 기자. 서나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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