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 야구는 더 이상 일본의 ‘맞수’가 아니다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25. 11. 2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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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1무10패…연패 고리 이번에도 못 끊어
내년 3월 WBC의 현실적 목표도 일본 아닌 대만·호주에 맞춰져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15년 11월 열린 프리미어12 준결승전. 한국 야구 대표팀은 8회까지 일본 선발 오타니 쇼헤이에게 철저하게 끌려갔다. 삼진을 무려 11차례나 당했다. 하지만 오타니가 내려간 뒤 9회초 공격력이 살아나면서 역전승(4대3)을 거뒀다. 투구 수에서 여유가 있었음에도 오타니를 내린 일본 대표팀 감독의 패착이었다.

이때 이후 야구 대표팀은 프로선수 등 정예 멤버가 참가한 대회(아시안게임 제외) 및 평가전에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일본을 넘어선 적이 없다. 11월15~16일 도쿄돔에서 열린 K-베이스볼시리즈에서도 1무1패를 거두면서 연패 고리를 끊는 데 실패했다. 지난 10년간 1무10패 성적표는 '맞수'라고 말하기에도 낯 뜨거운 수준이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도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반면, 일본은 우승을 거머쥐었다. 한일 야구 격차가 상당히 벌어졌다는 것을 야구계 안팎에서도 대부분 인정하는 분위기다.  

11월15~16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두 차례 평가전에서 한국의 젊은 투수들이 21개의 볼넷을 남발하는 가운데서도, 가능성을 보여준 박영현(왼쪽)과 정우주 ⓒ 연합뉴스

경험 부족한 어린 투수들 도망가는 투구…볼넷 남발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일본 선수들의 존재감을 봐도 그렇다. 월드시리즈(WS) 2연패를 이룬 LA 다저스만 해도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 사사키 로키의 공헌이 절대적이었다. 야마모토는 선발·구원을 오가며 WS MVP를 차지했고, 사사키는 선발 요원에서 포스트시즌 마무리로 변신해 팀의 뒷문을 지켰다. 오타니는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투타 겸업으로 압도적 퍼포먼스를 펼쳤으며 3년 연속 리그 만장일치 MVP를 수상했다. 한국은 김혜성이 오타니 등과 함께 다저스에 속해 있으나 그는 포스트시즌 동안 거의 벤치만 지켰다. 

비단 다저스만이 아니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뛴 일본인 선수는 10명이 넘는다. 이마나가 쇼타(시카고 컵스), 마쓰이 유키(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기쿠치 유세이(휴스턴 애스트로스), 요시다 마사타카(보스턴 레드삭스), 센가 고다이(뉴욕 메츠) 등 대다수가 주전급이다. 올겨울에도 이마이 타츠야(세이부 라이온스), 무라카미 무네타카(야쿠르트 스왈로스), 오카모토 가즈마(요미우리 자이언츠)가 포스팅을 통해 빅리그 문을 두드린다. 이에 비하면 한국인 빅리거는 김혜성을 비롯해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김하성(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뿐이다. 배지환은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웨이버 공시돼 뉴욕 메츠로 이적했다. 팀 붙박이가 아니다. 송성문(키움 히어로즈)이 포스팅 신청을 앞두고 있고, 강백호(KT 위즈)가 FA 자격으로 미국 진출을 노리고 있으나 일본 선수들만큼 큰 관심은 받지 못하고 있다. 

2026 WBC에는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출전한다. 그렇다면 일본은 K-베이스볼시리즈에 출전한 대표팀보다 1.5~2배는 더 강해진다. 한국도 이정후·김하성·김혜성과 일부 한국계 선수가 합류하지만, 일본 전력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진다. 만약 오타니나 야마모토가 한국전에 선발 등판한다면? 완전체 전력에서 60~70% 정도 가동한 일본 대표팀에 4대11로 완패(1차전)하고, 천신만고 끝에 무승부(7대7, 2차전)를 기록했던 한국 야구 대표팀이다. 물론 한국도 완전체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한국과 일본 야구의 극명한 차이는 투수력에서 나온다. 일본은 2010년대 중반 이후 트랙맨·랩소도·고속카메라 등으로 회전수·회전축·최적 릴리스 각도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투수별 맞춤 훈련을 구축했다. 기계적 반복 대신 개인 최적화 훈련으로 구속과 구위를 끌어올렸고, 미국식 트레이닝에 일본식 디테일을 더한 체계적 프로그램으로 하체·코어를 강화해 공의 힘을 키웠다. 일본 투수들은 이제 과거와 비교해 더 강하고, 더 빠른 공을 던진다. 한국도 물론 훈련의 과학화가 이뤄지고 있으나 아직은 부족하다. 아마추어 선수층의 차이로 인해 투수력 차이는 더 커 보인다.  

한국은 두 차례 평가전에서 일본에 21볼넷을 내줬다. 이에 '피처(pitcher·투수)'는 없고 '스로어(thrower·공 던지는 사람)'만 있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왔다. 2년간 ABS(자동볼판정시스템)에 익숙해져 인간 심판의 스트라이크존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해석도 나오지만, 한국은 리그에 ABS를 도입하지 않았던 2023 WBC 때도 일본과 호주전에서 14개 4사구를 남발하는 졸전 끝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ABS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대회 경험이 부족한 일부 어린 투수가 도망가는 투구를 한 것이다.

11월16일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7대7 무승부를 기록한 한국 대표팀이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현진·김광현 등 베테랑 투수들 대표팀 합류할 듯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번 일본과의 평가전을 통해 옥석을 가리게 됐다는 것이다. 류지현 대표팀 감독도 "평가전을 통해 (선수 선발 기준에 대한) 확신을 조금 더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나마 정우주(한화 이글스), 박영현(KT) 등은 생소한 공인구(롤링스), 스트라이크존, 도쿄돔, 한일전의 무게감을 견디고 제 공을 던졌다. 2차전 선발로 나선 19세 정우주는 포커 페이스로 3이닝 동안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박영현은 구속이 시즌보다 시속 10km 떨어졌는데도 공격적인 투구로 2이닝을 퍼펙트하게 막았다.

1차전 선발로 등판한 곽빈(두산 베어스) 또한 나쁘지 않았다. 좌완 손주영(LG 트윈스)을 테스트해볼 기회가 없었다는 게 다소 아쉬울 뿐이다. 대표팀 원투 펀치인 원태인(삼성 라이온즈), 문동주(한화)는 피로 누적으로 이번에 공을 던지지 않았다. 류지현 감독은 일본전에서 괜찮았던 선수들에 더해 류현진(한화) 혹은 김광현(SSG 랜더스) 등 베테랑을 대표팀에 합류시킬 것으로 보인다. WBC에서는 투수가 한 번 마운드에 오르면 3타자를 의무적으로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제구가 되고 경험 있는 투수가 필수적이다. 류 감독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이 가진 기량을 발휘하는 선수가 있었는데, 베테랑 선수들과 조화를 이룬다면 좀 더 단단한 투수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구자욱(삼성), 김도영(KIA 타이거즈) 등이 빠진 타선에는 안현민(KT)이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안현민은 일본전에서 이틀 연속 대형 홈런포를 터뜨렸다. 일본·대만·호주의 좌완 선발에 맞설 오른손 거포로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생애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는데도 "긴장은 하나도 안 하고 아주 재미있었다"는 안현민이다. 처음 밟아본 도쿄돔에서 자신감을 꽤 얻은 터라 내년 WBC에서도 '강한 2번 타자'로 두려움 없이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K-베이스볼시리즈를 기획한 이유는 2026 WBC 8강 진출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함이었다. 현실적으로 내년 WBC에서 한국의 목표는 일본이 아니다. 호주와 대만이다. 이들을 제압해야만 8강이 보인다. 단기전 특성상 분위기를 제대로 타면 일본 또한 넘지 못할 산은 아닐 것이다. 절대적 전력 차이에도 준비만 제대로 된다면 적어도 콜드게임 패배 직전까지 내몰렸던 2023 WBC와는 다를 수 있다. 한국 야구에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닌 변화다. 준비되지 않은 팀은 기적을 말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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