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이혼이 남긴 위자료 현실화? [세상에 이런 법이]

2015년 2월 헌법재판소가 간통죄를 위헌결정하면서 상간 소송이 많아졌다. 과거 간통죄가 있었을 때는 배우자와 간음한 상대방을 형사상 처벌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상간 소송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상간 소송은 위자료 소송의 일종으로 상대방의 불법행위 등으로 발생한 정신적 고통을 금전 보상한다. 쉽게 말하면, 내 배우자와 바람 핀 상대방에게 ‘부부 공동생활을 침해’한 불법을 저질렀으니 내 정신적 고통을 돈으로 환산해서 지급하라는 소송이다.
원고(소송을 시작한 사람)가 상간 소송에서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 상대방이 내 배우자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뿐 아니라 상대방이 내 배우자가 기혼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까지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원고는 증거수집 과정에서 형사처벌도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배우자 계정에 몰래 들어가는 행위, 배우자의 핸드폰을 뒤지는 행위, 배우자의 핸드폰에 위치추적 앱을 설치하는 행위, 배우자의 차량 블랙박스에 있는 음성을 가져오는 행위 등 불륜을 밝히기 위해 증거수집을 하는 과정에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원고가 어렵게 상간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상대방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위자료 액수는 500만~3000만원 사이에 불과하다. 불륜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아무리 클지라도, 상대방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위자료 액수는 이를 위로할 만큼에 이르지 못한다.
상간 소송에서만 위자료 액수가 낮은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 성폭력 등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상당할 것 같은 사건도 우리나라에서 인정되는 위자료 액수는 매우 낮은 편이다.
사람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경우에도 위자료는 최대 1억원에 그친다(2016년 법관세미나 불법행위 유형별 적정한 위자료 산정 방안). 한국에서는 사망하지 않는 한, 죽을 만큼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도 위자료로 1억원 넘게 지급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위자료 액수도 법원마다 천차만별이다. 위자료 산정기준에 대해 법률에서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으며, 대법원 판례도 법원의 재량을 넓게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다43165 판결). 위자료 인심이 넉넉한 판사를 만나는 경우 위자료 액수가 높아질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판사를 만나는 경우 위자료 액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는 점도 위자료가 낮은 이유 중 하나다. 한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은 중대재해처벌법 등 일부 특별법에서만 인정될 뿐, 일반 민법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민법은 손해배상의 범위가 통상의 손해를 한도로만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민법 제393조 제1항).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 돈으로 치유될 수 없지만
지난 10월16일 대법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재산분할금(1조3803억원)에 대해서는 파기환송했으나, 위자료(20억원)는 그대로 확정했다. 2심의 위자료(20억원) 판단이 재량 범위 내에 있다며 과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해 8월22일 서울가정법원에서도 최 회장의 동거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이 노소영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피고 측의 재산 규모 등에 비추어, 20억원 위자료가 다른 사건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판결들은 법원의 위자료 증액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리라 보인다. 사망이나 심각한 강간 사건이 아닌 한 1억원을 넘기 힘들었던 위자료 액수가, 20억원까지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손해배상소송연구회(약 100명의 판사가 속한 연구단체)는 위자료 산정 방식에 대한 세미나를 열었다. 10년 만에 위자료 액수 현실화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손해배상소송연구회는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 액수가 시대에 비해 지나치게 낮고, 산정 방식이 불명확하고 일관성이 없다”라는 부분에 공감하면서, “향후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사회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설계”하기로 했다.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은 결코 돈으로 치유될 수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을 과거로 돌릴 순 없기에, 사후에라도 피해자는 금전적으로나마 위로받아야 하는 것이다. 부디 빠른 시간 안에 피해자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위자료 산정 기준이 만들어지기 바란다.
이지연 (변호사)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