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vs 김민석' 대립 속… 다시 불붙는 '종묘 앞 빌딩숲' 19년 논쟁
5년 뒤 박원순 시장 '도심 재생 전환'에 백지화
吳 복귀 후 재추진… "건물 용적률·높이 상향"
市, 유네스코 권고 '세계유산영향평가'도 거부
전문가 "서울 랜드마크 남산 경관 훼손 위험성"

서울 도심 정비의 숙원 사업이었던 종로구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과 공방이 뜨겁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를 정면으로 마주 보는 세운4구역의 재개발은 2006년 재정비촉진지구 지정된 이후 줄곧 답보 상태에 있다가 최근 반전의 계기를 맞았다. 이달 6일 대법원이 서울시의 개발 완화 조례를 인정한 덕분이다. 19년 만에 비로소 탄력을 받게 된 셈이다.
하지만 법적 걸림돌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이 정면 충돌했다. 정부와 국가유산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의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의사를 표한 것이다. 김민석 국무총리와 여당(더불어민주당)의 차기 서울시장 유력 후보들도 잇따라 동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민의힘 소속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종묘와 재개발 지역 간 거리가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범위 기준인 100m 이상이기 때문에 문화유산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맞서고 있다.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싸고 19년간 이어진 논쟁의 역사를 되짚어 봤다.
세운4구역 재개발, 20년 가까이 '표류'
세운4구역은 오 시장의 서울시장 취임 첫해인 2006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다. 당시 오 시장은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 축을 2015년까지 완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도심 개발 사업 청사진을 내놨다. 이에 따라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2007년 세운4구역의 사업시행자로 선정됐고, 최고 122m 높이 고층 빌딩 건설이 추진되기 시작됐다. 이듬해 12월 종묘에서 가장 가까운 현대상가가 철거됐고, 2009년에는 해당 부지에 녹지가 조성되기도 했다.
뒤이어 같은 해 발표된 세운지구 재정비 촉진 계획에는 ‘세운상가군을 모두 철거하고 전체 대상지를 8개 대규모 구역으로 개발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종묘 맞은편의 세운4구역 역시 이때 재개발 사업 승인 신청까지 마쳤다. 이때만 해도 거침없는 사업 진행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난관에 봉착했다. 그해 7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종묘 문화재 심의를 거쳐 ‘건물 높이가 너무 높다’는 이유로 사업을 무산시킨 것이다. 당시 문화재 심의위원들은 ‘종묘 정전에서 바라볼 때 건축물의 최상층이 3개 층 이하로 보이도록 높이를 낮추라’고 요구했다. 이 때문에 세운4구역 건축물 높이는 당초 122.3m에서 최고 71.9m 수준으로 대폭 하향 조정됐다. 낮아진 건물 높이 탓에 사업성도 이전보다 떨어지게 되자 개발 계획은 암초에 부딪힌 형국이 됐다. 오 시장이 2011년 10월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시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지지부진’ 상태만 계속됐다.
그리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주도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선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며 세운상가군 철거 계획은 사실상 중단됐다. 박 시장은 기존의 도심 개발 사업을 ‘도심 재생 사업’으로 전환했다. 세운상가군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는 방향이었다. 단순한 계획 변경이 아니라, 원칙 자체의 근본적 전환이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2014년 서울시는 기존의 8개 구역을 171개 구역으로 쪼갰다. 2016년부터는 세금 1,109억 원을 투입해 세운상가 7개 건물을 잇는 공중 보행로를 조성했다. 구역별로는 전면적 철거 대신, 상가나 건물 단위로 접근해 리모델링을 하거나 재개발하는 방식을 택헀다. 2020년 3월 박 시장은 도심 재생 사업을 한 단계 더 구체화해 ‘공공임대상가, 산업특화골목, 주민 공동시설 등을 짓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다만 4개월 후 사망하면서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건물 높이 규제 완화, 대법 판결에 동력 얻어
2021년 4월 보궐선거 승리로 오 시장이 10년 만에 서울시에 복귀하면서 ‘사실상 폐기’ 상태였던 도심 개발 사업도 ‘재가동’ 수순을 밟게 됐다. 오 시장은 전임자(박원순 시장)가 조성한 공중 보행로에 대해 “개발을 가로막는 대못”이라고 규정했다. 15년 전 구상의 업그레이드 버전도 제시했다. 세운상가를 비롯한 노후 상가건물 7곳을 모두 철거해 공원으로 조성하고, 양옆에는 고층 빌딩 숲을 세우겠다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한 것이다. 녹지 공간은 개발 사업자가 기부 채납하게 하는 대신, 건물 용적률과 높이 제한을 완화해 주는 방식으로 사업성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종묘 앞 세운4구역도 건물 높이를 종전보다 대폭 올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의 용적률을 올리면서도 문화재청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일종의 ‘꼼수’를 고안했다. 2023년 10월 서울시 문화재보호조례에서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국가지정유산 100m 이내) 밖이더라도 건설공사가 문화유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는 조항(19조 5항)을 삭제한 것이다. 이어 2024년 10월에는 세운4구역의 최고 높이를 대폭 상향하는 내용의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을 고시했다. 종묘 쪽 건물 높이 제한 기준을 기존 55m에서 98.7m로, 청계천 쪽은 71.9m에서 141.9m로 각각 완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같은 서울시의 단독 행보에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이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서울시가 조례 개정 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협의하지 않았다”며 행정소송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달 6일 “서울시의회가 해당 조례를 자체적으로 삭제한 조치는 적법하다”고 판단하며 서울시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결 직후 이재명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이튿날 서울 종묘에서 기자회견을 연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모든 수단을 강구해 막겠다”고 선언했다. 다음 날인 10일 종묘를 찾은 김 총리도 “K관광의 부흥 시점에서 자칫 문화와 경제, 미래 모두를 망칠 수 있는 근시안적 단견”이라며 대법원과 서울시를 싸잡아 비판한 뒤 “이 문제를 다룰 제도 보완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든 종묘 주변 개발에 제동을 걸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최대 변수는 '세계유산영향평가'… 서울시 "필요 없다"
이번 갈등의 향후 최대 변수는 유네스코가 권고한 ‘세계유산영향평가(HIA)’다. 유네스코는 올해 3월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이 종묘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HIA 실시를 요청하는 공식 문서를 국가유산청에 보냈다. 지난 4월 7일 국가유산청은 해당 문서 원본, 권고 사항 조치 요구를 담은 공문 등을 서울시에 전달했으나 시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유네스코의 권고엔 법적 구속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세운4구역의 경우 규제 대상에도 해당하지 않아 HIA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세운4구역은 종묘로부터 100m 이상(180m) 떨어져 있어 국가유산법 등에서 지정한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관련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유네스코는 이달 17일 서울시의 종묘 앞 재개발 계획과 관련, ‘사업 승인을 중단해 달라’는 취지의 의견을 한국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년 동안 재개발을 기다려 온 세운4구역 토지주들의 반발도 거세다. 토지주들은 11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국가유산청이 재개발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부당한 행정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직권남용 등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2009년 세입자들을 이주시킨 후 매년 200억 원의 금융이자 손실 비용을 감당해 왔고, 누적된 자금 차입금만 7,250억 원에 달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특혜 여부 따져봐야" "吳 구상, 꼭 필요한지 의문"
오 시장은 2006년 내세웠던 “종묘부터 남산으로 이어지는 녹지 축을 만들겠다”는 취지를 지금도 변함없이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 강행 시 서울 도심 특유의 도시 경관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될 위험성이 크다는 게 도시설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김경민 서울대 도시계획학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19일 CPBC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세계적으로) 도심 한가운데 남산 규모의 산을 가지고 있는 ‘(인구) 1,000만 도시’는 없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도 조명했듯 서울의 랜드마크는 남산”이라고 말했다. 남산을 중심으로 조성된 서울 도심 경관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어 “(높이 기준 완화는) 세운4구역만이 아니라 (앞으로 개발을 앞둔) 2구역, 3구역, 5구역, 6구역에까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렇게 되면) 도심에 어마어마한 불륨의 빌딩 숲이 들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높이 완화가 경관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단언했다.
특혜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김경민 교수는 “건물 높이를 90m에서 145m로 높이면, 용적률이 600%에서 1,000%로 늘어난다”며 “(갑자기) 용적률을 무려 400%포인트나 올린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민간 개발에 따른 특혜 제공 가능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김세훈 서울대 환경설계학과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20일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김 교수는 “초고층 개발만이 사업성을 담보한다는 서울시 논리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역사적 가치는 한번 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는 자산이므로 단기적 개발 논리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며 “세운4구역 정비 사업은 필요하지만, 용적률 상향만이 개발의 정답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중층과 일부 저층, 고층이 섞인 밀도 높은 개발을 통해 충분히 사업성을 확보한 케이스들이 충분하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오 시장이 반복 강조하는 ‘녹지생태도심’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김세훈 교수는 “도심부에 공원 녹지가 많아진다는 점은 좋으나, 거대한 마천루 사이에 낀 선형 녹지가 지금 자리에 어울리는 안락한 공간이 될지 모르겠다”며 “서울은 오래전부터 동서 축(종로, 청계천, 을지로)이 강한 도시인데, 종묘에서 충무로까지 이어지는 남북 녹지 축이 꼭 필요한지 역시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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