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서 텐트 치고 순록 키우던 유목민의 역사…자수로 세계적인 예술이 되다 [슬기로운 미술여행]
[슬기로운 미술여행 - 44] 스톡홀름 근대 미술관
스웨덴은 사슴이 유명합니다. 스톡홀름 도심에서도 출몰하는 걸 볼 수 있고, 거리 곳곳에는 사슴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 신기했습니다. 사슴과 엘크 고기를 먹는 나라다웠죠.
왕관 다리를 건너 그림 같은 운하변의 풍경을 보며 걷다 보면 조각 공원이 눈에 들어옵니다. 스켑스홀멘섬은 조각 공원과 스웨덴 왕립 미술학교, 근대 미술관이 어우러진 미술섬이더군요. 북유럽 최대 규모의 거대한 현대 미술관이라 할 수 있는 이 곳의 입구에도 사슴이 그려져 있었죠. 무엇보다 수준 높은 전시를 만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4층 카페의 뷰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스톡홀름 전통 건축물들이 도열해 있는 구도심이 보이는 운하가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졌죠. 카페와 빵도 맛이 있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오슬로 몽크 뮤지엄보다도 이 곳이 유럽 최고의 뷰를 가진 미술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대한 크기는 북유럽 최대 규모의 근현대 미술관이라는 수식어를 믿게 만드는 규모였습니다. 근대 미술관은 20세기 초의 현대 미술과 1840년 이후의 사진을 수집, 보존,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1958년 국립 미술관은 스톡홀름의 스켑스홀멘섬에 있는 옛 해군 훈련장에 새 공간을 열어 근현대 미술을 ‘독립’시켰습니다. 현재 건물은 스페인 유명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가 설계해 1998년 문을 연 현대적인 건축물입니다.
컬렉션은 다양한 매체의 13만점 이상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원래 스웨덴 및 북유럽 미술, 프랑스 중심의 모더니즘, 1950년대와 60년대 미국 미술의 세 가지 범주로 구분되던 컬렉션은 20세기와 21세기 여성 예술가와 세계의 예술을 포함하도록 확장되었죠. 사진 컬렉션만도 10만점에 달합니다.


소장품 상설 전시장이 꽤 방대했고 소장 작품도 많았습니다. 근대+현대 미술을 다루는데다, 이름을 읽기도 어려운 북유럽 작가들이 많아지자 미술관 관람의 난이도는 극상으로 높아져만 갔습니다. 카페에서 허기를 채우고 당당하게 전시실로 들어섰지만, 난해한 작품들에 금세 넉다운이 될 것 같았습니다.
![에곤 쉴레 [웅크린 자세의 자화상], 1913 ©Moderna Museet](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2/mk/20251122235408662twys.png)
종이에 펜으로 그린 드로잉은 단순한 습작으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자아는 물론이고 환경, 일상, 감정, 생각, 사회 비판 등을 가감없이 표현할 수 있는 솔직한 도구이기도 했죠. 에곤 쉴레, 헬레네 슈예프벡,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의 반가운 그림이 보였습니다.

힐마는 자신의 작품이 미래에 더 잘 이해될 거라고 생각해 생전에는 거의 공개하지 않았고 “사후에도 20년간 전시를 하지 말아달라”고 유언을 남겼던 세기의 은둔 화가입니다. 추상화 거장 바실리 칸딘스키보다도 5년 앞선 1911년부터 추상화를 그렸던 그의 봉인된 작품은 무려 1300여 점에 달했죠.
스웨덴 왕립미술학교에서 여성으로는 드물게 정식 미술 교육을 받았던 작가는 초기에 식물과 자연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당대 많은 지식인들도 빠져들었던 신지학(神智學)에 심취하기도 했죠.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탐색하며 그녀는 점차 원과 나선 같은 상징으로 가득한 추상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귀국 이후에 찾았던 부산 현대 미술관 전시는 정말 즐거운 관람 경험을 안겨줬습니다. 잘 모르던 작가의 세계를 속속들이 만나는 경험. 새로운 만남은 언제나 부족한 경험과 감각의 경계를 넓혀주곤 합니다.
두 개의 상설 전시장을 모두 통과하고 난 뒤 로비로 돌아오는 길의 긴 복도에도 대형 평면 작품들이 도열해 있었는데요. 마치 산수화처럼 보이는 니콜라스 파티의 붉은색 파스텔로 동굴을 그린 풍경화 대작이 걸려 있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74미터의 대작 [Historjá]를 원형 전시 공간에 걸어놓았다. ©김슬기](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2/mk/20251122235412746rahl.png)
제가 이 작가를 처음 만난 건 2017년 카셀 도큐멘타에서였습니다. 현대 미술의 올림픽이라고해도 무방한 이 행사에서 꽤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작가였죠. 본 전시장의 거대한 한쪽 벽을 그녀의 24미터 길이의 자수 <역사(Historjá)>가 가득 메우고 있었죠. 자신과 민족의 역사를 한 땀 한 땀 새겨넣은 이 작품을 감탄하며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50여년 동안 브리타 마라카트-라바는 자수, 그래픽 작품, 설치 및 조각을 통해 사미족의 문화, 역사 및 투쟁을 실로 꿰어 왔습니다. 그녀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출세작은 이 대서사시 <Historjá>(2003-2007)였죠. 트롬쇠 대학에 전시하기 위해 만든 이 작품이 독일로 건너간 그 시기에 제가 우연히 작품을 만났던 겁니다. 이 거대한 자수는 원형으로 전시되어 있어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요. 숲에서 시작해 다시 숲으로 귀환하는 기나긴 역사를 담고 있었습니다.
74세의 할머니 작가 브리타 마라카트-라바는 북부의 작은 마을 출신입니다. 텐트를 치고 순록을 치는 가정의 9남매 중 한명으로 자랐죠. 유목민으로 살았던 그녀의 어머니는 “자연의 모든 것에는 영혼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연과 함께 행동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그녀의 자수 예술은 자신이 속한 사미족의 삶과 일상을 묘사합니다. 원시적인 삶의 형태를 지키고 있던 그녀의 작은 공동체를 핍박하는 건 언제나 자연과 국가였죠. 그녀는 “자수는 의도적인 느림의 미학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땀 한 땀의 바느질 속에 자신의 경험과 정신을 불어넣고, 시간과 공간을 항해하는 여정인 셈이죠.
![[Historjá]가 조명하는 1852년 봉기. ©김슬기](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2/mk/20251122235414061bwjm.png)
무엇보다도 1852년의 카우토케이노 반란을 거듭해 묘사하면서 작가는 사미족의 권리와 정치적 독립을 위한 투쟁을 조명합니다. 소수민족인 사미족의 권리를 박탈하려는 시도는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이런 역사를 담은 작품 <Historjá>는 2025년 봄, 미술 잡지 아트뉴스가 금세기 가장 중요한 예술 작품 100선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크고 작은 태피스트리 속에는 눈 덮인 광활한 풍광 속에 작은 인간과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사미족의 의식인 순록 사냥과 출산의 여신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사미족의 신은 여신만이 존재한다고 하더군요. 축제를 벌이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과정이 바느질을 통해 묘사되는데 주로 거대한 군상을 묘사하기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그 이야기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림 속 작은 인간의 모습은 때로 귀엽고 엉뚱합니다. 스웨덴 관람객들이 이 작가를 좋아하지 않을 방법은 없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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