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내가 왜 마약사범이야!” 월 600~700 유혹에 인생을 날렸다 [백색가루의 종착지-쓰고 버려지는 청년들]

이영기 2025. 11. 2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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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가루의 종착지 : 쓰고 버려지는 청년들
<파트2> 전과자 만드는 온라인 취업미끼
① 마약 전문 변호사들이 본 드라퍼

[헤럴드경제=이영기·박준규·김아린 기자] 마약은 투약과 유통은 물론, 소지만 해도 범죄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같은 금융범죄와 견주면 피해자가 눈앞에서 발생하진 않는다. 마약 유통 생태계의 말단에서 소비자에게 약을 직접 전달하는 ‘드라퍼(Dropper)’들의 죄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경찰에 붙잡혀 피의자 조사를 받으면서 비로소 큰 죄를 저질렀다는 걸 실감한다. 2030 청년들, 심지어 10대들도 가담하는 마약 전달책의 공통적인 특징을 마약사건 전문 변호사들을 통해 종합했다.

마약 전달책, ‘드라퍼’ 이미지. 챗GPT를 이용해 제작했다.
① 범행동기 : 약 혹은 돈

청년들이 마약을 뿌리게 된 배경을 거칠게 압축하면 약이 필요해서 또는 돈이 필요해서다.

마약 투약을 하고 중독되면 끊임없이 약을 찾는 악순환에 빠진다. 중독자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약은 해야 하는데 약값이 없다. 자연스레 평소 약을 구하던 소셜미디어(SNS) 판매상의 권유나 제안, 알선을 받아 전달책으로 ‘취업’하게 된다.

박진실 변호사(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비상임이사)는 “투약자가 알선자가 되고 그다음 판매자로 이어진다”며 “투약하다가 돈이 없으니 주변 친구들과 가족한테 돈을 빌리려고 거짓말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단순 투약자가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는 때가 오면 드라퍼가 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대인 관계는 끊기고 주변에는 투약자만 남는 때이기도 하다.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변호사. 임세준 기자

박 변호사는 “주변에 다 투약자뿐이니 약을 파는 게 돈이 된다는 걸 배운다”며 “그럼 그 투약자는 이제 이를 통해 먹고 살기 시작한다. 주로 알고 지내던 판매자한테 약을 받아서 던지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준형 변호사(법무법인 지혁)는 “‘너 드라퍼 좀 해볼래? 그럼 내가 약값은 벌게 해줄게’라는 식으로 딜러(상위 판매자)가 접근한다”며 “이런 식으로 약을 사기 위해 드라퍼가 된다”고 설명했다.

단시간에 큰돈을 손에 쥐겠단 일념으로 드라퍼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마약을 투약하진 않는 비(非)투약 드라퍼들이다.

안 변호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자영업이 망해서 드라퍼하는 경우도 있고, 어린 나이에 알바 구하다가 인터넷에서 고액 알바를 하게 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도박에 중독돼 감당할 수 없는 빚에 시달리다 마약 전달책을 하기도 한다.

박 변호사는 “비투약 드라퍼는 모순되는 면이 있다”며 “본인도 마약이 위험한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유통하는 일을 했으니 모순된다는 것이다. 판매나 유통도 해선 안 된다는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라고 지적했다.

② 가담연령 : 20대 초중반
박민규 법무법인 안팍 변호사. 임세준 기자

박민규 변호사(법무법인 안팍)는 “돈 없는,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이 드라퍼로 이용되는 경향이 강하다”며 “결국 드라퍼는 (상선 입장에선) 쓰고 버리는 존재다. 건당 1만원만 더 줘도 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안준형 변호사는 “제 경험상 40~50대는 드라퍼 못 한다”며 “몸이 느리고 손도 느리고 주요 소통창구인 텔레그램 사용도 못 한다”고 설명했다.

20~30대들이 마약 던지기를 했다가 잡혀 실형을 살면 정상적인 사회 복귀는 쉽지 않다. 안 변호사는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참 일해야 할 청년들이 사회로부터 몇 년씩 격리된다”고 했다. 그들이 출소한 뒤에 다시 서기를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박 변호사는 “제 23살 의뢰인은 징역 10년 받았다. 33살이 되어야 나올 텐데 저한테 ‘변호사님 저 이제 한국에 살지 않으려고요. 출소하면 할 게 없을 테니 동남아 가려고요’라고 하더라”면서 “동남아에 가면 거기에 합법적인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겠는가”하고 안타까워했다.

③ 허상 : 月 1000만원 고수익
문인곤 법무법인 상원 변호사

마약을 소지하고 운반·판매에 관여하면 법원에서 무거운 형량을 피할 수 없다. 이런 ‘하이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 치고는 기대수익이 턱없이 적다. 일단 드라퍼는 물리적으로 활동하기에 붙잡힐 가능성이 높다. 폐쇄회로(CC)TV에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남성신 마약수사계장은 “아무리 신중하게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몇 달을 붙잡히지 않고 활동하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드라퍼 활동 첫날에 바로 붙잡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안 변호사는 “드라퍼들의 활동 기간은 길지 않다”며 “왜냐하면 증거를 늘 뿌리고 다닌다. 오래 해봐야 1년이다. 주로 활동한 지 1~2개월 안에 잡힌다”고 말했다.

또 이들을 이용하는 딜러는 전달책의 신분증이나 ‘드라퍼 계약 영상’ 등을 갖고 있다가 이용하기도 한다. 약을 잃어버리거나 잠적하는 사고를 치면 신상을 공개해 버린다. 그렇게 검거되는 경우도 있다.

안준형 변호사는 “돈은 판매자(딜러)가 다 번다. 드라퍼들은 (검거되지 않고) 열심히 해봤자 월 600~700만원 이렇게 번다”고 설명했다. 그 정도 소득이 적다고 할 순 없으나 마약을 취급하는 리스크를 떠안는 걸 고려하면 결코 고수익은 아니라는 게 변호사들의 이야기다.

문인곤 법무법인 상원 대표변호사는 “상선이 드라퍼를 이용만 하고 금전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오히려 ‘내가 지시한 장소에 마약이 없으니 너가 약값을 입금하라’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④ 착각 : 나는 마약사범이 아니다
안준형 법무법인 지혁 변호사

주사기로 제 몸에 약을 주입하지 않는다. 실험실 같은 곳에서 은밀하게 마약을 제조하는 것도 아니다. 몸 안에 약을 숨기고 항구나 공항을 통과하는 밀수도 아니다. 그저 1g을 여기저기 숨길 뿐이다. 단순 배달을 중범죄라고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변호사들은 말한다. 이 믿음은 현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박진실 변호사는 “의뢰인이 찾아오면 ‘제가 돈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고 직접 준 것도 아니에요. 저 근데 판매래요’라고 한다”며 “‘그건 판매가 맞다’라고 설명하는 것부터 상담을 시작한다. 그래서 당신은 형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인식시킨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아예 그들은 ‘나는 판매 행위에 가담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며 “드라퍼는 본인이 마약 사범이라는 인식이 없어요. 마약사범에 자기 자신을 대입하지 않는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드라퍼들은 검거된 후 조사를 받으면서 뭔가 크게 잘못됐단 자각을 한다. 박 변호사는 “이렇게 큰 범죄였다는 걸 알았다면 안 했을 것”이라며 “왜냐하면 형량을 봤을 때 드라퍼가 얻는 이득에 비해서 너무 무겁고 쉽게 검거된다”고 강조했다.

안준형 변호사는 “드라퍼들은 재범률은 떨어지는 거 같다”며 “왜냐하면 드라퍼들은 이게 이렇게까지 중범죄고, 감옥까지 갈 정도인 줄 알았으면 그 돈 받고 일을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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