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하나자이저' 장하나, 꺼지지 않는 불빛을 찾아서. 그 곁에는 20년 동행 김평기 대표
- 화끈한 플레이와 따뜻한 나눔으로 남은 흔적
- 여전히 동반자와 함께 걸어갈 새로운 길

2006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김평기 당시 스포티즌 이사(현 프레인 글로벌 대표)는 서울 서초구 반포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의 소문 난 삼겹살 맛집을 우연히 찾았습니다. 식당 이름은 '옹달샘'. 식당 주인 부부에게는 늦둥이 자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라는 이름을 지닌 당시 중학교 2학년 딸은 골프 유망주로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연을 전해 들은 김평기 대표는 목마른 가슴에 시원한 옹달샘 단물을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스포츠 매니지먼트 업체를 이끌며 선수 에이전트 업무까지 직접 하고 있었기에 본능적으로 차세대 스타를 만났다는 촉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난 겁니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인연은 어느새 20년이 흘렀습니다. 10대 중반의 중학생이던 장하나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이르러 현역 투어 프로 생활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그런 장하나를 바라보는 김평기 대표도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장하나는 이번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상금 순위 60위에 들지 못해 내년 정규투어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장하나의 정규투어 잔류는 일찌감치 힘들어 보였습니다. 2021년 시즌 2승에 상금 순위 3위(약 9억 원), 평균타수 1위로 마칠 때만 해도 여전히 전성기를 달리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2022년부터 끝 모를 추락을 거듭했습니다. 손목 통증과 드라이버 입스가 찾아와 우승 경쟁이 아니라 대회 때마다 순위표 끝자락에서 이름을 찾는 게 쉬워졌습니다.

2022년 26개 대회에서 17차례 컷 탈락하며 상금 순위 80위에 처졌습니다. 2023년은 28개 대회에서 26차례 컷 탈락, 상금 순위 123위. 2024년 4개 대회에만 나서 3차례 컷 탈락했습니다. 올해에는 26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하며 상금은 0원이었습니다. 참담한 성적이 반복되면서 '차라리 출전 대신 쉬면서 재충전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떨까'라는 주위의 조언도 쏟아졌습니다.
장기 슬럼프에 빠지면서 장하나의 투어 생활 연장도 갈림길에 섰습니다. 마침 KLPGA가 올해 '정규투어 시드권 부여 제도'를 새롭게 도입하기로 하면서 장하나가 첫 수혜자가 되리란 기대가 컸습니다. 이 제도는 10년 연속 KLPGA 투어에서 활동한 'K-10 클럽', 누적 상금(25억 원 이상)과 협회 기여도, 인지도 등을 고려해 특별시드를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2010년 KLPGA에 입회한 장하나는 KLPGA 누적 상금 약 58억 원으로 박민지에 이어 2위에 올랐습니다. 개인 통산 15승(5위)을 기록했고, 메이저 대회 우승만 4회로 이 부문은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필자는 지난여름 KLPGA 고위 관계자로부터 이 제도 취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KLPGA투어에서 활동하며 세운 기록과 공헌도를 참작하면 장하나만 한 후보가 없어 보인다. 유력할 것 같다"라는 예상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장하나는 특별시드를 받지 못했습니다. 미국 LPGA 투어에 진출해 3년 동안 해외에서 보낸 경력이 걸림돌이 됐습니다. 이 바람에 KLPGA투어 10년 연속 개근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겁니다. 장하나는 KLPGA투어에서 12시즌을 뛰었지만, 중간에 공백기가 생기면서 연속 출전으로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8년 연속일 뿐입니다.
KLPGA는 두 기준(10년 연속 활동+25억 상금)을 모두 충족한 선수가 1순위, 10년 이상 연속 활동한 선수가 2순위, 25억 상금 받은 선수가 3순위였다는 선발 기준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면서 이소영, 김지현, 장수연, 서연정을 첫 수혜자로 발표했습니다.
장하나가 제외되면서 골프계에서는 구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해외 진출에 따른 괘씸죄에 걸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폭발적인 장타를 앞세운 화끈한 플레이, 남다른 개성과 뒤풀이 등으로 한국 여자골프 인기의 한 축을 책임진 장하나의 존재감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큽니다. 한 골프 전문가는 "해외투어에서 뛰던 선수가 국내로 돌아와 마지막 무대를 마무리하고 싶은 경우도 많다. 해외 시드권자였던 선수에 대한 예외 규정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KLPGA는 꿈쩍도 하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지난 4년 연속 드러난 장하나의 장기 부진을 참작할 때 특별시드가 아깝다는 KLPGA 내부 분위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필드를 빛낸 베테랑에 대한 예우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2025년을 마감하는 데 대해 장하나는 "30대에서 가장 힘들었다, 한편으로는 즐거운 투어 생활을 했다. 골프에 있어서 작년까지 힘들었던 부분이 고쳐져서 마음이 편했다. 아쉬워도 후회는 없다"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내년 특별시드와 관련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는 김평기 대표의 가슴도 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KLPGA 결정이 내려졌을 때는 곧바로 그 배경과 내막을 따지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김평기 대표는 "애써 무덤덤하여지려 하지만 쉽지 않다"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장하나는 무엇보다 의리를 중시하는 스타일입니다. 김 대표는 "장하나 프로가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전향할 때 매우 많은 동종업계 매니지먼트 회사가 장하나 프로 부모님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때 장하나 프로가 '나 그냥 김평기 이사님이랑 계약할 거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아요'라며 아버지에게 직설적으로 얘기했다"라고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그로부터 장하나 골프 인생의 중요한 대목에는 김평기 대표가 있었습니다. 장하나가 LPGA 투어 생활을 갑자기 정리하고 국내 복귀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도 김 대표가 현장을 지켰습니다. 자신을 돌보느라 고생한 아버지와 어머니 걱정을 하며 장하나가 눈물을 쏟을 때 김 대표의 눈가도 촉촉이 젖어 들었습니다. 필자는 장하나와 관련된 특이사항이 발생하면 새벽이고 한밤이고 김 대표의 연락이 날아든 기억도 남습니다.
누구보다 장하나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김 대표는 "장 프로는 골프 아이큐가 매우 높고, 챔피언조 압박을 오히려 즐긴다. 본인 감정에 거침이 없다"라고 전했습니다.
23년째 KLPGA 공식 사진을 전담하는 박준석 작가 역시 장하나를 최고의 포토제닉으로 꼽았습니다. 박 작가는 "장하나 프로가 가장 찍기 좋았던 선수다. 필드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다. 덕분에 원하는 장면을 많이 포착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장하나는 솔직하고 화끈한 성격을 지녔으며 본인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도 강합니다. 특히 장애어린이 재활치료를 위해 푸르메재단에 총 3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푸르메재단 고액 기부자 모임 '더 미라클스' 13번째 회원이 됐습니다. 강원도 초등학교에 골프용품과 장학금을 기증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많은 분의 성원에 보답하는 길을 찾고 있다. 특히 장애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라고 밝혔습니다.
장하나는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느덧 은퇴라는 단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 바로 선수 생활 은퇴를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다만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고 있다"면서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아쉬운 때도 많습니다. 장하나는 "20대 시절의 추억이 없는 것. 골프 외에 다른 추억도 많이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골프밖에는 몰랐다. 인제 와서 생각하니 여행, 다른 취미 등 좀 더 다양한 활동을 해볼걸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렸던 장하나는 당장 내년 뛸 투어가 사라졌다는 현실이 낯설기만 합니다. 그래서 더 바쁘게 지내려 하는 것 같습니다. 1주일에 3번 정도 라운드를 나가고 있습니다. 지인들도 자주 만나고, 후원사 행사에는 매번 빠짐없이 참여한다고 근황을 전했습니다. 김 대표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계획은 없다. 다만 어디서 무엇을 하든 골프와 관련된 일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10대 때부터 장타 소녀로 불린 장하나의 대표적인 별명은 '하나자이저'입니다. 언제나 밝고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지녔다는 의미로 '하나'라는 이름과 '에너자이저'를 합친 겁니다.
투어 프로의 황혼기를 맞은 장하나는 이제 또 다른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늘 곁을 지킨 20년 동반자 김평기 대표와 함께라면, 그의 길은 다시 새로운 빛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스포츠파트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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