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서 나온 '봉한학설', 경락의 해부학적 구조는 있을까

장준오,이창욱 기자 2025. 11. 2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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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한약, 침술 등 한의학의 치료법이 일부 질환에서 효과가 있다는 근거는 여러 대조 실험을 통해 보고되고 있다. 다만 생체 기전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신경생리, 내분비(호르몬), 근막, 신경면역 등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다양한 접근 가운데 이 글은 역사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봉한학설’에 관해 이야기한다.

● 북한 과학자가 발견한 한의학의 실체?

1961년 김봉한 북한 평양의학대 교수는 인간의 몸에서 경락을 이루는 해부학적 구조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경락’은 한의학에서 기의 순환이 이뤄지는 통로를 가리키는 용어다. 

한의사들은 경락이라는 개념을 통해 병을 진찰하고 병의 원인을 분석하고 치료하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현대의학이 정립되고 의학자들이 몸속을 수없이 들여다봤음에도 경락에 대응하는 해부학적 구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북한의 한 과학자가 경락의 실체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김봉한은 1963년과 1965년에 발표된 후속 연구에서 경락에 대응하는 해부학적 구조에 ‘봉한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구체적인 특성도 밝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봉한관은 피부부터 내장 기관, 뇌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순환계로 ‘산알’이라는 물질이 그 속을 흐르고 있다. 산알은 오직 봉한관에서만 발견되며 산알이 자라 세포가 되는 등 생명체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인체에 혈관계와 림프계가 아닌 지금껏 발견되지 않은 제3의 순환계가 있다는 선뜻 믿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동시에 독자적이고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봉한학설은 북한 체제와 민족과학의 우수성을 선전하기에 적합한 연구 결과물이었다. 

김봉한은 1964년 새로이 설립된 ‘경락연구원’의 원장으로 임명됐고 북한 최고의 과학자라는 영예를 누렸다. 북한 정권은 김봉한의 논문을 여러 언어로 번역해서 배포하고 같은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과 소련의 과학자들을 실험실로 초청해 봉한관의 실체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1966년이 되자 김봉한이라는 이름은 지면에서 갑작스럽게 지워져버렸다. 경락연구원과 학회도 알 수 없는 이유로 폐지됐다. 김봉한과 봉한학설의 몰락에 대해서는 정치적 이유로 인한 숙청설 등 여러 추측만 무성할 뿐 정확한 이유는 정보 부족으로 베일에 싸여 있다. 한 북한 과학자의 대담한 가설은 어둠 속에 묻히는 듯 보였다.

● 남한에서 ‘프리모관’으로 부활한 봉한학설

과학의 역사에는 끝내 틀렸다고 밝혀진 무수히 많은 이론과 학설이 있다. 무언가를 관찰했다고 착각했다가 나중에 오류로 밝혀진 예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03년 프랑스의 한 물리학자가 발견했다고 주장한 N선(N-ray)이다. 

당시는 자외선, X선, 방사선 등 새로운 발견이 쏟아지던 시기였고 새 광선을 발견했다는 소식에 과학자들이 앞다퉈 N선에 대한 수백 편의 연구를 발표했다. 한 물리학자의 폭로로 인해 N선은 착시에서 비롯된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1964년 북한에서 발행된 김봉한 박사 기념 우표. 봉한관을 발견한 공로로 김봉한 박사는 한동안 북한 최고 과학자의 영예를 누렸다. Wikimedia Commons 제공

봉한관도 김봉한의 착각에서 나온 산물이었을까. 김봉한의 연구를 재현하려는 시도가 대부분 실패했다. 이론의 주창자마저 사라지자 봉한관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시들해졌다. 여러 언어로 번역돼 세계 각국에 배포된 김봉한의 논문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1970년 당시 미국 캔자스주립대 학부생이었던 고(故) 소광섭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봉한학설을 처음 접한 것도 도서관에서 발견한 영어 논문 덕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한의학물리연구실’을 설치한 소 교수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김봉한의 연구를 재현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김봉한은 자신의 논문에서 봉한관을 찾는 방법을 자세하게 기술하지 않았다. 소 교수팀은 다양한 염색법과 관찰 도구를 동원하는 등 몇 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2003년에서 2008년 사이 여러 염색법을 활용해 혈관, 장기 표면, 림프관에서 봉한관을 관찰했고 2010년 봉한관에 ‘프리모관(primo vessel)’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김봉한은 봉한관이 가장 늦게 발견됐음에도 다른 순환계의 생성을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소 교수팀은 이를 따라 ‘첫 번째’를 의미하는 ‘프리모’라는 이름을 지었다. 봉한학설 연구자들은 명칭을 변경하면서 봉한학설을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 힘썼다. 국제 학술지를 발행하고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해외 대학의 연구실을 방문해서 프리모관을 분리하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 경락은 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보였다

봉한학설 연구자들의 주장만 본다면 전 세계의 생물학 교과서가 다시 쓰일 것 같다. 소 교수팀이 봉한관을 ‘재발견’하고 20여 년이 흘렀음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봉한관을 다루는 새 연구는 기존의 봉한관 연구 커뮤니티 내에 한정돼 있었고 주류 학계에서는 봉한관에 대해 논의하거나 심지어 비판하는 글을 찾기도 어려웠다. 봉한관이 주류 학계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인체 모형. 경락과 경혈의 위치를 표시했다. 경락은 신체에서 기와 혈이 흐르는 경로를 의미하며 경혈은 경락의 특정한 지점이다. 이곳을 침 등으로 자극해 몸의 이상을 고친다는 원리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봉한관 연구자들은 봉한관의 실체를 사진이나 직접 관찰을 통해 보여주기만 한다면 학계가 봉한관의 존재를 인정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몸 전체에 퍼져 있는 봉한관을 가시화하려고 노력했다. 문제는 봉한관 연구 커뮤니티 바깥에서는 봉한관 연구를 재현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새롭게 봉한관 연구 커뮤니티에 포섭된 이들도 스스로 봉한관의 실체를 분리한 것이 아니었다. 기존 봉한관 연구자들의 시연을 직접 보고 그제야 봉한관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주류 의학계는 봉한관의 존재 여부에 의문스러운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 한의학의 과학화는 어디까지

봉한학설 연구자들을 추동한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는 ‘한의학의 과학화’에 대한 열망이었다. 많은 전통적인 믿음, 주술, 미신, 종교가 근대 등장한 ‘과학화’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사라졌다.

서양 전통의학도 마찬가지다. 4체액설, 사혈(瀉血), 관장과 같은 지금은 황당하게 보이는 개념과 시술이 계급을 가리지 않고 횡행했다. 모두 과학적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사라졌다.

한의학, 더 넓게 보자면 동양의 전통의학 역시 현대의학과 과학의 도전을 받고 있고 실제 많은 부분 과학화가 이뤄졌다. 앞서 말했듯 한약과 침술 같은 한의학 치료법이 특정 증상, 질환에서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는 것은 여러 실험을 통해 어느 정도 증명됐다.

중요한 점은 동양 전통의학의 뿌리가 되는 기와 경락의 개념은 과학의 테두리 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명을 DNA, 단백질 같은 분자 구조까지 파헤치고 전자현미경으로 바이러스를 직접 관찰하는 시대가 됐음에도 기와 경락에 대응하는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만약 봉한관이 학계의 인정을 받는다면 한의학에 대한 불신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될까.

설사 봉한관의 존재가 인정된다고 해도 한의학의 과학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봉한관이 경락에 대응하는 구조물인지 입증해야 한다. 봉한관 연구자들은 경락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관찰을 수행하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한의학에서 말하는 경락인지는 알 수 없다.

피부 표면, 장기, 림프관에서 발견된 봉한관은 서로 연결돼 있을까. 경락이 두께가 수십 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한 관이라면 한의사들은 어떻게 침으로 그걸 정확하게 찌를 수 있을까. 봉한관을 침으로 찌르는 행위가 어떻게 효과를 보이는 것일까.

의문들에 답하지 못한다면 봉한관은 한의학에서 힌트를 얻어 발견된 새로운 신체 기관일 뿐 경락의 실체라고 인정받기 힘들 것이다.

‘한의학의 과학화’에 대한 열망은 봉한관 연구를 추동하는 동기이지만 그와 동시에 봉한관이 주류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원인일지도 모른다. 봉한관 연구자들은 국제무대에서 연구를 발표할 때 한의학적 배경은 배제한다. 봉한관이 2010년대에 ‘프리모관’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은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포유동물의 몸 여기저기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가느다란 구조물이 제3의 순환계이며 생명 현상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체계라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프리모관이라는 개념의 배경에 있는 한의학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과학의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선입견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가 있다. 혁신적인 이론이 수십 년 동안 무시받다가 후대 연구자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는 사례도 있다. 봉한학설은 둘 중 어느 사례에 속하게 될까.

※필자 소개 
장준오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유사과학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고 출판사에서 과학책 편집자로 일했다. 이상한 걸 믿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유사과학 애호가. 현재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취미로 잡지를 만들고 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11월호, [유사과학 테이스팅 노트] 한의학의 과학적 설명을 찾아서, 봉한학설

[장준오,이창욱 기자 ojunjang@gmail.com,changwoo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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