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윈도 떠났다, 도쿄로 몰려드는 중국 상류층의 속사정

김태현 기자 2025. 11. 22.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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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11만 명이 늘어 87만 명, 2026년이면 100만 명을 돌파한다. 마윈과 왕스가 먼저 떠난 그 길을, 이제 중국의 기업가·엔지니어·학부모들이 따르고 있다.

[우먼센스] 도쿄 고토구의 한 초고층 아파트 로비. 최근 이곳에서는 중국어 대화가 심심찮게 들린다. 엘리베이터 안 게시판에는 중국어로 된 부동산 광고가 붙어 있고, 단지 내 놀이터에서는 중국 본토 억양으로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오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가 전한 풍경이다. 2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 삶의 터전을 옮겨온 이들이 속속 늘어나면서다.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 집계를 보면, 2023년 말 기준으로 일본에 중·장기 재류자로 등록된 중국인은 82만1838명에 달한다. 2022년 말 76만1563명에서 불과 1년 사이 6만 명이나 증가한 수치다. 2024년 말에는 이 숫자가 다시 87만3286명으로 뛰어올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현재 추세라면 2026년이면 일본 거주 중국인이 1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봉쇄의 기억이 결정타였다

"돈이 많든 인맥이 좋든 소용없었어요. 그때 깨달았죠. 이 나라에서는 기본적인 자유조차 보장받을 수 없다는 걸요." FT가 인터뷰한 작년 일본으로 이주한 40대 중국인 사업가의 말이다. 그가 이주를 결심한 건 2022년 상하이 봉쇄 때였다. 

당시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만 나와도 아파트 단지 전체를 봉쇄했다. 식량 배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굶주림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속출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은 중국 중산층과 상류층에게 일종의 각성제가 됐다고 한다. 아무리 부를 쌓아도,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정부 정책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사실을 체감한 것이다. 여기에 시진핑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강화되고, 부동산 시장 침체와 민간기업 규제로 경제 불확실성까지 커지면서 "언제 내 재산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됐다고 한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룬(润·Run, 달아나다)'이라는 표현이 유행어가 됐다. 특히 '룬르(潤日)'는 '일본으로 달아나다'는 뜻으로, 더 나은 삶을 찾아 일본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는 단순히 부유층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IT 엔지니어, 연구자, 문화인 등 전문직 중산층 사이에서도 일본 이주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미국이나 캐나다, 싱가포르 같은 전통적인 이민 선호 국가들도 여전히 인기가 있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 일본이 새로운 선택지로 급부상했다. 중국과의 거리가 가깝고, 한자 문화권이라 적응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며, 무엇보다 엔저 덕분에 부동산 가격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베이징보다 저렴해진 도쿄 프리미엄 입지

엔저는 중국인들에게 일본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도쿄만이 내려다보이는 고토구 도요스 지역 인기 고층 아파트 단지는 ㎡당 120만 엔 선으로 거래된다. 원화로 따지면 ㎡당 1050만 원, 평당 3500만 원가량이다.

중국 주요 도시와 비교하면 체감상 상당히 저렴하다. 베이징 중심부 신축 아파트 평균 가격은 ㎡당 약 100만 엔, 상하이는 약 126만 엔 수준이지만, 최고급 아파트들은 ㎡당 150만 엔을 훌쩍 넘는다. 특히 중국 대도시의 프리미엄 입지 아파트와 도쿄의 베이 프론트 고급 단지를 비교하면, 도쿄가 여전히 경쟁력 있는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게다가 중국은 부동산 거품 붕괴로 집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더 떨어지기 전에 팔아서 도쿄로 갈아타자"는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주택 구매 관련 규제가 적고 임대 시장도 안정적이어서, 여러 채를 매입해 임대 수익을 올리는 중국인 투자자도 늘고 있다.

명문 초등학교 학군 노리는 학부모들

선전에서 금속 무역업을 하던 한 중국인은 지난해 도쿄 도요스 지역 한 아파트를 65만 달러(약 9억 원)에 매입했다. 그는 올해 초 가족을 불러들이며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꿨다. FT는 도쿄 부동산 중개업체 관계자가 "일본어를 전혀 못 하는 중국인 가족들이 통째로 이주해 정착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며 "단순히 투자 수익을 노리는 게 아니라 아예 살 곳을 찾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교육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도쿄 분쿄구는 명문 공립 초등학교가 밀집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중국인 인구는 2019년 대비 2024년 약 1.5배로 늘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분쿄구의 주요 초등학교 4곳을 가리키는 '3S1K'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츠쿠바, 세이시, 쇼와 같은 명문 공립학교를 지칭하는 별칭으로, 중국 학부모들 사이에서 '학군 따라 이주'가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다.

도쿄 부동산 시장, 기록적 상승세

중국인들의 유입은 일본 부동산 시장에도 뚜렷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도쿄 간테이에 따르면, 올 2월 도쿄 도심 6개구의 70㎡ 아파트 평균 희망 매도 가격은 1억1380만 엔(약 9억9000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3개월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도쿄 중심부 신축 아파트 평균 가격은 2023년 한 해에만 39.4% 급등해 평균 1억1480만 엔을 기록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수익이 3~4배 늘었다"며 "중국인 구매자들이 주요 고객"이라고 귀띔했다. 2024년에는 초고가 물량 공급이 일시 조정되기도 했지만, 중고 아파트 시장에서는 전년 대비 30% 가까운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엔저 효과와 공급 부족, 외국인 자본 유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이한 점은 스키 리조트가 있는 홋카이도 후라노 지역도 급등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국토교통성 공시지가 조사에 따르면, 후라노시 키타노미네초의 주거용 택지 가격은 2023년 대비 27.9% 올라 일본 전역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별장 수요를 노린 중국인 부유층의 매입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니세코에 이어 후라노도 중국과 해외 자본이 휴양 시설로 사들이는 대표적인 지역이 됐다.

마윈과 왕스, 도쿄에서 목격되다

중국 최고 부호들의 일본 체류 소식도 이주 붐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2020년 중국 금융 당국을 공개 비판한 뒤 한동안 잠적했다가, 2022년 말 파이낸셜타임스 보도를 통해 도쿄에 장기 체류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부동산 개발 그룹 완커의 창업자 왕스도 도쿄 긴자를 산책하는 모습이 중국 소셜미디어에 포착됐다.

이들의 존재는 '일본이 안전한 피난처'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글로벌 이민 컨설팅 업체 헨리앤파트너스는 2023년 보고서에서 중국을 떠나는 고액 자산가(투자 가능 자산 100만 달러 이상)가 1만 35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고, 2024년 최신 보고서에서는 이 숫자를 1만 5200명으로 상향 조정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유층이 빠져나가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얘기다. 다만 이는 중국 전체 부자 인구의 극히 일부에 해당해 '엑소더스'라는 표현은 과장이라는 비판도 있다.

자금 반출의 '회색 지대'

물론 일본 이주에도 걸림돌은 있다. 중국 정부는 해외 자본 유출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개인이 연간 해외로 반출할 수 있는 금액에 제한이 있어, 대규모 부동산 매입이나 이주 자금 마련에는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부유층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계좌를 개설하거나, 친지들을 동원해 소액으로 쪼개 송금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한다. 일부는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해 무역 거래를 가장한 자금 이동을 하기도 한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공식 루트를 피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중국에는 거대한 지하 금융망이 형성됐다고 한다. 위안화를 아프리카 무역 네트워크 등을 거쳐 세탁한 뒤 일본에서 엔화 현금으로 받는 '미러 트랜스퍼' 같은 방식이다. 이런 자금 이동 방식은 중국 내에서 불법이거나 탈법 영역에 속하지만, 단속을 피해 은밀히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비자 취득은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었다. 일본 정부는 상설 사무실과 직원 2명 이상을 갖춘 기업에 500만 엔(약 4700만 원) 이상을 투자하면 경영 비자를 발급해왔다. 이 비자를 받은 중국인은 2019년부터 2023년 사이 30% 증가해 1만 명을 넘어섰다.

다만 일본 정부는 최근 이민 목적의 악용 사례가 늘자 규제를 강화했다. 2025년 10월부터 자본금 기준을 3000만 엔으로 대폭 높이고, 일본인이나 영주권자를 포함한 상근 직원 최소 1명을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요건을 강화했다. 유령 회사나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비자 취득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일본 사회의 양면적 시선

중국인 유입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은 엇갈린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고민하는 일본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부동산 가격 급등과 문화적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2024년 말 기준 일본 내 외국인 주민은 약 377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 후반대를 차지한다. 이 중 중국인이 약 87만 명으로 외국인의 약 23%를 차지해 가장 큰 비중을 보인다. 절대 숫자로 보면 일본 전체 인구 대비 여전히 소수지만, 특정 지역 집중도가 높아 체감 영향은 더 크게 느껴진다.

일부 일부 언론은 '중국 자본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일본을 잠식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2025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는 외국인 배척을 내세운 극우 정당이 약진했다. 도쿄 부동산 시장의 급등은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불만을 자극하는 쟁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 도쿄에 자가를 보유한 A 씨는 최근 일본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A 씨는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간 외국인들에 대한 부동산 규제가 느슨했던 편이라, 특히 중국인들의 부동산 쇼핑으로 도쿄의 타워맨션 등의 가격이 폭등했다. 한국 정부에서 뒤늦게나마 외국인 부동산 거래 제한에 들어간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이런 건 일본도 배워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고, 실제로 외국인 규제 강화 정책을 강하게 내세웠던 '반중 인사' 다카이치 후보가 총리로 선임됐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당분간 중국인의 일본 이주 흐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룬르(潤日·일본으로 달아나다)'를 꿈꾸는 이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도쿄의 고층 아파트 로비에서 들리는 중국어 대화는, 이제 일본 사회의 새로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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