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젤렌스키에 “27일까지 새 ‘평화안’ 서명 안 하면, 지원 끊는다” 압박

이철민 기자 2025. 11. 22.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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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목요일이 적당한 타이밍...결국엔 뭔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젤렌스키, TV 연설서 “우크라 존엄성 잃거나, 美지원 끊기는 선택 맞았다”
우크라軍 60만 명 제한ㆍ100일 내 주요 선거 실시, 러시아는 G8 복귀
유럽 정상들 “러시아 요구에 항복한 평화안”

미국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20일 새 평화 제안서를 제시하고 미국의 추수감사절인 다음주 목요일(11월27일)까지 서명하지 않으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철회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 폭스 뉴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게 추수감사절까지 답하라는 데드라인을 줬느냐에 질문에 “목요일이 적당한 타이밍이다. 일이 제대로 풀린다면”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날 오후 기자들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반응을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좋아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크라이나는 그냥 계속 싸워야 할 것이다. 결국에는 그도 뭔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먼저 우크라이나로부터 합의를 받아내, 이 평화안을 러시아에게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우크라이나로선 1주일도 안 되는 기간 내에 미국이 원하는 답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젤렌스키는 20일 밤 TV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는 이제 존엄성을 잃을 것이냐, 핵심 파트너[미국]를 잃을 것이냐는 매우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20일 다니엘 드리스크롤 미 육군장관 일행은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가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키릴 드미트리예프와 함께 작성한 ‘28개 항목’의 평화안을 전달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 두번째)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정부인사들이 20일 키이우에서 다니엘 드리스콜 미 육군 장관(오른쪽 가운데) 일행이 제시한 미국 측의 새 평화안을 놓고 얘기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이 ‘우크리아나-러시아 평화 계획’안은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 지역과 크림 반도의 러시아 영토 인정 ▲우크라이나 헌법의 ‘나토 비(非)가입’ 명시 ▲60만 명으로 우크라이나군 병력 제한 ▲나토(NATO)군의 우크라이나 내 배치 불가 ▲유럽 전투기는 폴란드에 배치 ▲100일 내 주요 선거 실시 등을 담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헤르손ㆍ자포리자 등 나머지 전선(戰線)은 현상태에서 동결된다. 우크라이나는 또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미사일을 발사할 수 없다.

대신에 우크라이나는 “신뢰할 수 있는 안전 보장”과 EU 회원국 자격을 부여 받는다. 또 러시아 동결 자산 중 1000억 달러와 유럽이 추가하는 1000억 달러를 기반으로, 재건(再建)을 위한 “강력한 글로벌 패키지”를 제공받는다고 했다.

한편, 이 평화안에 따르면 러시아는 G8 정상회의에 복귀한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강제 합병 이후 G8에서 축출됐고,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아ㆍ캐나다ㆍ일본이 G7 체제로 회의를 진행했다. 러시아는 유럽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가침(不可侵)정책을 법제화하며, 나토는 헌장에 ‘우크라이나 가입 불허(不許)‘를 명문화한다.

이 ‘평화안’에서는 미국도 ‘안전 보장’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인프라 및 광물ㆍ천연자원 개발에서 주도권을 쥐며, 우크라이나 재건에 들어가는 1000억 달러 러시아 자산의 운영은 미국이 주도하고, 수익의 50%를 가져간다. 나머지 러시아 동결 자산은 미국과 러시아가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투자기구를 설립해 운영한다.

21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가 수도 키이우의 ‘천국에 있는 100인의 영웅 거리’에서 2004년의 오렌지 혁명, 2013년의 유로마이단 민주화 혁명에서 숨진 시위대원들을 추모하는 촛불을 켜고 있다./AFP 연합뉴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와 파이낸셜타임스는 평화안 제시에 정통한 여러 인사들을 인용해, 우크라이나는 현재 추수감사절까지 합의하라는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2주 정도 지나면 실제로 미국의 지원이 철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인 무기 공급은 줄이고 늦췄지만, 유럽 동맹국들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에 필수적인 러시아군에 대한 정보 제공도 지난 3월에 중단했다가, 이후 재개했다.

◇유럽 반응은 “순전히 러시아측 평화안”

프랑스ㆍ영국ㆍ독일 정상은 21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컨퍼런스 콜을 하며, 미국 측 계획안의 핵심적인 사항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의 한 관리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미국측 평화안은 “러시아 요구를 수용하는 항복”이라고 표현했다.

스테판 코르넬리우스 독일 정부 대변인은 “현재의 전선(戰線)이 이해의 출발점이 돼야 하며, 우크라이나군이 주권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실도 “유럽과 나토의 이해 관계에 영향을 주는 결정은 유럽 파트너와 NATO 동맹국의 지지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성명을 냈다.

유럽 동맹국들은 이 평화안을 “순전히 러시아안(案)”이라고 평가한다. 유럽 정상들은 22~23일 남아공(南阿共)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리는 G20 정상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더 유리한 대응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젤렌스키 “우리 역사상 가장 힘든 순간 맞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일 저녁 TV 연설에서 “이제 우크라이나는 존엄성을 잃을 것이냐, 핵심 파트너를 잃을 것이냐는 매우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며 “우리 역사상 가장 힘든 순간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미군 관리들이 그들[미국]의 시각인,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제안서를 제시했다”며 “전쟁 첫날부터, 우리의 명백한 입장은 러시아가 앞으로 세번째 침공으로 무너뜨릴 수 없는 진짜 평화를 원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측 평화안에 공개적으로 반대 표시는 하지 않았다. 젤렌스키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팀이 유럽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 점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가 러시아에 보인 ‘유화적인’ 접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어떻게든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젤렌스키는 평화안의 일부 조항에 대해 수정을 요청했고, 드리스크롤 미 육군장관은 일부는 변경에 가능하다고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상은 이 평화안을 만든 위트코프가 ‘나쁜 경찰(bad cop)’ 역할을 맡고, 드리스크롤은 부드럽게 말하는 ‘좋은 경찰’을 맡은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이 ‘평화계획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에 “젤렌스키가 서명하고 싶어도, 정치적 입지가 약해 서명할 수 없다. 또 많은 조항이 협의의 시작점도 못 되는, 명백히 친(親)러시아안”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미 언론에 “이 평화안은 젤렌스키의 최고위 안보 측근인 루스템 우메로프의 수정을 거쳤고, 그가 대부분의 조항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가안보ㆍ국방위원회 의장인 우메로프는 일간지 키이우 인디펜던트에 “미국 ‘평화 계획’안의 조항을 승인하거나 평가하는 역할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 측 평화안이 논의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안은 우리가 알래스카에서 논의한 것이고, 미국 측은 우리에게 일부 양보하고, 유연성을 보여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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