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발길 끊기는 괌 사이판

김태훈 논설위원 2025. 11. 2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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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의 두 섬, 괌과 사이판은 1989년 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 30년 가까이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여행지였다. ‘금요일 밤 떠나고 월요일 새벽 돌아와 오전 9시까지 출근’이란 광고 문구는 두 섬이 지닌 매력을 압축했다. 괌은 신혼여행과 효도 관광지로, 사이판은 골프 등으로 인기가 높았다. 2017년 한 여행사가 발표한 해외 10대 인기 관광지에서 괌은 2위, 사이판은 6위였다. 지금 중년 이상 중에 괌·사이판 한번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크게 변했다. 2019년 한국인은 괌에 74만명, 사이판엔 24만명이 갔다. 지난해엔 각각 37만명과 17만명으로 감소했다. 이달 초 부산을 출발해 괌에 도착한 여객기의 승객이 고작 4명, 돌아오는 여객기엔 3명만 탑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 전체 항공사의 괌 노선 11월 평균 탑승률이 10~20%에 불과했다. 이코노미석에 누워서 여행 갈 수 있다 해서 ‘눕코노미’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괌과 사이판이 된서리를 맞은 이유로 첫손꼽히는 것이 달러당 1400원을 넘어선 고환율이다. 올여름 괌에 다녀온 한 여행객은 “한국에서 7000원이던 햄버거가 현지에서 1만3000원 하더라”고 했다. 요즘 새로 뜨는 필리핀 보홀에선 무얼 먹어도 4인 기준 하루 식비가 5만~6만원인데 괌에서는 저녁 한 끼만 30만원이 든다고 한다. 새 상품 개발에 소홀했던 것도 추락의 이유다. 단순한 물놀이 위주의 가족 관광만 고집하다 동남아에 손님을 잃었다.

▶사이판의 몰락에는 다른 눈여겨볼 점도 있다. 2000년대 초까지 사이판 경제는 관광과 의류·봉제 산업이란 두 기둥이 떠받쳤다. 미국령이지만 최저임금제가 적용되지 않아 싸고 질 좋은 옷을 만들어 세계에 팔았다. 미국인 4명 중 1명은 사이판에서 만든 옷을 입었다. 그런데 2007년 최저임금제가 의무화되며 가격 경쟁력을 잃고 급속히 몰락했다. 공장 문이 닫히며 사람들이 섬을 떠났다. 2010년 4만8000명이던 인구가 지난해 4만명까지 떨어졌다. 사이판 현지 풍경을 소개한 유튜브엔 창문이 깨진 채로 방치된 가게, 녹물이 쏟아지는 호텔 샤워 꼭지, 거리를 배회하는 유기견이 나온다. 밤이면 외출하기도 어렵다니 관광지라 할 수 없다.

▶괌·사이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도 섬이나 마찬가지다. 사방이 막혔고 수출 의존형 경제여서 대외 영향을 많이 받는다. 어제까지 잘했다고 내일을 준비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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