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격노' 후 뒤바뀐 수사 결과... 채상병 특검이 규명한 수사외압 시나리오
이종섭 통화 질책 후 일사불란한 '수사외압'
이첩 회수 지연되자 신범철에 "여태 안 됐냐"
특검 "직권남용해 수사 공정성·독립성 침해"

군에서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말단 하급자부터 고위 지휘관까지 줄줄이 엮어서 처벌하면 어떻게 되냐, 내가 누차 여러 번 이야기하지 않았냐.
2023년 7월 31일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통화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팀은 21일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윤 전 대통령에겐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공용서류무효 혐의가 적용됐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해병대수사단의 초동 수사 결과를 변경하도록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질책하고, 사건의 경찰 이첩을 막기 위해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에게 "왜 여태 사태 파악이나 대응 조치를 하지 않느냐"고 압박하는 등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판단했다.
윤석열, 신범철에게 '이첩 회수' 직접 지시
이날 특검팀 설명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7월 31일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으로부터 "사단장부터 현장 통제 간부까지 총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사건의 피혐의자로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이에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고 격노한 뒤 곧바로 집무실에 있던 내선번호 02-800-7070 전화를 이용해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군에서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말단 하급자부터 고위 지휘관까지 줄줄이 엮어서 처벌하면 어떻게 되냐, 내가 누차 여러 번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했다.
이 전 장관은 즉시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에게 연락해 사건 관련 언론 브리핑과 국회 보고 일정을 취소시키고 사건 이첩을 보류하도록 명령했다. 분리 파견됐던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정상 근무도 지시했다.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받아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대령)에게 전화해 "사건 인계서에서 혐의자, 혐의 내용, 죄명을 빼야 한다.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라"고 요구했지만, 박 대령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이후 속전속결로 수사 외압이 이뤄진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해병대수사단의 사건 이첩을 막기 위해 신 전 차관도 직접 압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3년 8월 2일 정오쯤 윤 전 대통령은 조태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해병대수사단의 기록 이첩 시도를 보고받고 기록 회수를 지시했다. 회수가 지연되자 윤 전 대통령은 오후 1시 30분쯤 신 전 차관에게 통화해 8분 45초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여태 사태 파악이나 대응조치를 처리하지 않고 있느냐"고 꾸짖고 이 전 장관과 함께 조치를 취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신 전 차관은 유 전 관리관과 김동혁 전 국방부 검찰단장에게 △기록회수 △(박 대령)선보직해임 △항명수사를 지시했다. 지시 당일 박 대령은 보직해임됐고, 군 검찰은 경북경찰청으로부터 사건 기록을 회수했다.
"해병대수사단에 조직적 보복행위... 중대 권력형 범죄"
대통령이 각 부처를 지휘·감독할 권한을 갖고 있지만, 이는 일반적·선언적 차원에 머무르며 특정 사건을 개별적·구체적으로 지휘하는 것은 수사 공정성과 독립성을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법 행위라는 것이 특검팀의 판단이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은 '임성근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을 피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개별적·구체적 지시를 하고, 이 전 장관 등이 위법 부당한 지시를 순차적으로 수명 및 하달함으로써 직권을 남용해 군사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직무수행의 독립성을 침해했다"고 결론냈다.
아울러 윤 전 대통령 지시로 해병대수사단을 향해 조직적 보복행위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특검팀은 이번 수사외압을 "중대한 권력형 범죄"로 규정했다. 정민영 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사건) 기록을 경북경찰청에 넘긴 사람을 항명으로 수사하고, 군사경찰 감축을 지시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통수권자가 행사할 수 있는 재량의 한계를 넘었다고 본다"며 "이 사건은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할 해병대수사단의 수사 권한 침해를 넘어 법과 원칙에 따라 정당하게 직무를 수행한 해병대수사단에 국방부가 조직적 보복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권력형 범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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