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던 병들이 왜 많아졌지 ?… 과잉진단 시대를 ‘진단’[북리뷰]

2025. 11. 21. 09:3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진단의 시대
수잰 오설리번 지음│이한음 옮김│까치
헌팅턴병 등 생소한 병명 늘어
약한 병도 질병으로 정의 확대
前당뇨 등 비정상의 범위 증가
ADHD 등 진단 자체로 낙인
건강염려증으로 더 스트레스
환자의 삶·권리에 집중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종종 뭔지 모를 병명들에 시선이 박힐 때가 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은 이제 익숙하다. 하지만 헌팅턴병이나 엘러스-단로스 증후군, 자세기립 빠른맥 증후군 같은 병명은 한참 생소하다. 예전에는 몰랐던 병명들이 이토록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신경학과 전문의 수잰 오설리번의 ‘진단의 시대’는 급증하는 질병과 그 배경에 도사리고 있는 ‘더 많은 것을 병이라고 진단’하는 세태를 제대로 ‘진단’하는 책이다. 저자는 책 서두에 “의대생일 때는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흔해진 새로운 진단명도 너무나 많다”는 말로 과잉진단이 넘쳐나는 현실을 꼬집는다.

진단은 “건강 문제를 인지하고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을 식별하는 우리의 능력이 훨씬 나아졌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지표다. 하지만 과잉진단은 의학적인 치료가 ‘사실상’ 필요하지 않은 단계에서도 적극적인 치료를 하도록 이끈다.

과잉진단의 메커니즘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과잉검출”이다. 새로운 기술과 더 민감하고 집중적인 선별 검사를 통해 “더 약한 형태의 질병”까지 큰 병으로 진단한다.

다른 하나는 ‘질병 정의의 확대’로, 대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선을 이동함으로써 발생한다. 미국당뇨협회는 2003년 당뇨병 전 단계의 기준이 되는 공복 혈당 정상 수치를 리터당 6.1밀리몰에서 5.6밀리몰로 낮췄다. 이 기준에 따르면 중국 성인의 절반, 미국과 영국 성인의 3분의 1이 당뇨병 전 단계다. 물론 꾸준한 관리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지만, 건강 염려증으로 인해 더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도 있다.

과잉진단은 정상 범위는 축소되고, 비정상 범위는 그만큼 확장시킨다. 문제는 확장 이후다.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성 뇌 질환인 헌팅턴병은 우울증과 강박행동 등 인지장애뿐 아니라 행동이 굼뜨고 균형 감각을 잃는 신체 장애를 동반한다.

발렌티나는 첫 아이를 임신한 스물여덟 살 여성이었다. 새 생명에 대한 부푼 기대도 잠시, 엄마 비비언이 헌팅턴병 진단을 받으면서 “발렌티나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미래”는 극적으로 달라졌다. 발렌티나와 형제자매들은 갑자기 “불치성 신경퇴행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50%”가 되었고, 그들의 자녀들도 25%의 확률을 안고 살아야 했다. 발렌티나는 헌팅턴병에 걸릴 수도 있는 아기를 낳아야 할지를 고민하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공황발작이 찾아왔고, 이내 항우울제를 복용해야 했다. 엄마의 진단 이후 수십 년이 지나 발렌티나도 같은 검사를 받았지만, 질병은 유전되지 않았다. 삶은 이미 무너져 내린 뒤였다. “진단을 확인하기 전에는 여전히 어떤 미래도 가능하지만, 확인하고 나면 미래는 한정된다. 확실히 아는 것이 불확실한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진단이 대폭 늘어난 질병은 ADHD이다. 어린이·청소년은 물론, 성인 ADHD도 크게 늘었다. ADHD는 1968년 “협소한 의학적 상태”로 지정되었다. 당시 설명은 “아동의 과잉운동 반응이며, 사춘기에 사라지는 주의 산만과 안절부절” 한 줄이 전부였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주의력 결핍 장애’ ‘과잉행동’ 등의 용어가 추가되었고, 아동에게 국한되던 진단이 몇 년 전부터는 성인들도 대상이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ADHD 진단을 받는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부분 경증임에도 진단 그 자체가 낙인 효과를 내는 것은 불문가지. ADHD는 과거에는 “회복 정체성”을 지닌 질병이었지만, 이제는 “공통된 뇌의 비정상을 나타내는 요인”이 없음에도 장애로 인식한다. 라임병과 만성 코로나 증후군, 자폐증, 우울증, 신경다양성 등의 질병도 과잉진단이 현저히 늘고 있다. 태아 때부터 “이름 없는 증후군”을 찾기 위해 각종 첨단 장비를 이용한 과잉진단도 늘고 있다.

저자는 유전적으로 완벽한 아기를 고르는 일은 최선인가,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묻는다. 저자는 대세가 된 과잉진단이라는 현상을 통해 의료윤리를 묻고 있는 셈이다. 책 말미에는 온갖 진단을 받는 젊은 환자가 등장한다. 그는 어떤 진단도 없애지 못했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다른 새로운 진단을 받아야만 했다. 의료의 질은 향상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진단은 환자의 삶을 옥죄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진단의 시대’는 의료산업의 폐해에 집중하기보다 과잉진단으로 피폐해질 수 있는 환자들의 삶과 권리에 집중함으로써, 새로운 의료의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데 그 미덕이 있다. 364쪽, 2만2000원.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