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이 10살짜리 문학 소년에게 남긴 의문 [.txt]
영문학 전공 대학원생의 첫 장편소설
고전문학 섭렵해 ‘언어의 뿌리’ 탐색

넉달 뒤면 15주기를 맞는 동일본 대지진. 2011년 후쿠시마 해역에서 발생한 대지진을 직접 경험한 작가의 소회가 이 소설엔 배어 있다. 작가 나이 만으로 10살,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재앙이었다.
“지진이 제 안에서 정말 너무 컸어요. 언론이나 정치인, 연구자 같은 전문가들 말에 대한 신뢰도가 점점 희미해지는 걸 경험했죠. 어른(大人)들, 말하는 게 모두 달랐어요.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자기들 부모님 의견 따라 싸우기도 했죠. 말이라는 것에 대한 회의나 불신이 어렸을 때 강하게 있었던데다, 그럼에도 올바른 말이란 무엇일까, 무엇을 믿어야 하나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후쿠시마는 너무 큰 경험이었어요.”(올 1월 일본 언론 인터뷰)
그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후쿠오카로 이사한다. 후쿠시마의 기억을 처음 ‘소설’로 써 이전 학교로 보냈다고 한다. 헤어진 급우들과 교사가 그의 첫 ‘독자’가 됐다. 그로부터 10년 뒤 생애 첫 장편소설로 일본 최고 문학상이라 불리는 아쿠타가와상(2024년 하반기)을 받았다. 2001년생 작가 스즈키 유이, 그가 도서관에서 한달 만에 완성했다는 작품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얘기다.
동일본 대지진이 배경이 된 종래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 없진 않다. 2017년 수상작 ‘영리: 그림자의 뒤편’(누마타 신스케)을 시작으로, 1980년대 초반생까지의 작가들로 하여금 트라우마와 상실, 관계와 재건을 톺게 하는 시공간의 실체로서 대지진 사태는 엄연한 편이었다. 스즈키 유이의 소설에 지진은 일어나지 않는다. 재앙이 다 뭔가. 되레 2011년 그해 국립대 교수로 부임한, 안온하고 정감 넘치는 중상층 교수의 가족과 치열하되 문학과 학문 세계의 짐짓 탈속적 풍경들이 있을 뿐이다. 온 가족이 앉아 ‘파우스트’를 읽는 마지막 장면이라니.
직접 겪은 대지진이 원점이되 작품 제목부터 모호하리만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가 되기까지가 스즈키 소설의 차별적 면목이거니와 작품에 소구력을 더한다. 작중 시공간의 메타포적 실체로서 ‘허언’과 ‘탈진실’의 사태가 엄연해진다. 위조되거나 출처 없는 권위적 언어(가령 “가만 있으라”)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서서히 가해자 무리에 합류 중인 청년 세대로서, 스스로 말의 뿌리를 궁구하는 형상부터가 그러하다. 다만, 작가는 추리와 반전을 구동장치 삼고, 언어유희를 작중 곳곳에 숨겨두고 있으니 아무렴, 6학년 그때처럼, 제 세대에 먼저 권하는 소설인 것이다. 2000년대생 작가의 첫 아쿠타가와상이란 사실이 여기서 더 각별해진다.
일본의 괴테 연구 1인자로 꼽히는 도이치(1960년생)가 주인공이다. 그의 장인 또한 독문학의 거장이자 대학 은사다. 권위의 정통적 계보 같다.
‘파우스트’를 읽지 않은 대중용을 전제로, 작품과 괴테를 집약하여 소개해 주는 방송의 녹화를 앞둔 도이치. 한달 내 먼저 마감해야 하는 원고를 쓰며 연구자로서의 헌신, 그 결과 구축한 괴테의 세계, 문학·언어관이 오버랩되고 새 원고에서 응축된다. 와중 출처가 괴테라는 영어 문구를 불쑥 식당에서 만난다. 말하자면 속세 복판에 건재하던 고전문학인바, 아내, 딸과 외식 후 마신 홍차 티백의 꼬리표에 적힌 ‘명언’ 한줄이 이랬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mix).”
들어본 듯 들어보지 못한 말, 알 듯 알지 못한 말. 도이치가 종국에, 맥락 속에 온전해질 저 문장의 출처를 찾아 헤매는 여정이 이 소설의 폭과 깊이다. 1980년대 후반 독일 예나에서 자신이 유학하던 시절, 농담처럼 독일 친구와 주고받은 말마따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질 않는가. 적어도 괴테는 “모든 문학적 영역을 섭렵한” 문학자이자, 특히 ‘파우스트’를 통해 “이 세상 모든 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다 말하려고 하는 예술가의 정신”을 간구한 이다.
처음 추정했던 ‘서동시집’은 물론, ‘괴테 사전’에서도 저 어구는 찾을 수 없다. “모든 것을 파악하려는 욕망”으로 “모든 것을 말하려 했”던 괴테와 다를 바 없는 학자적 투지에도 불구하고, 도이치는 결국 자기 합리화한 채 그 말로 원고를 갈무리하고, 실제 방송에서 내뱉고 만다.
작중 흥미로운 인물은 도이치의 절친한 동료 교수 시카리다. 저작마다 대중적 인기와 학계 시선을 끄는 문화연구의 권위자다.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말이 세상에서 기승을 부”린다면서, ‘명언’으로 득세하기까지 원전을 축약한 형태, 최초가 누구랄 것도 없이 덧대며 전승된 형태, 원전과 별개로 윤색 위조된 형태로 구별된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작중 말의 ‘모방’이나 ‘위조’에 비판적이지 않다. 그건 되레 “‘모든 것을 말한’ 문학적 전통”에 가깝다. 대신 “단순한 것은 항상 허위다. 단순하지 않은 것은 쓸모가 없다”(폴 발레리) 하는 언어(적 인간)의 한계, 나아가 탈맥락화하여 제 편의로 인용하기 바쁜 세태에 작가는 더 집중한다. 시카리의 6번째 최신작 ‘신화력’이 날조 인용, 도용 논란에 휩싸이고, 90년대 첫 책부터 전작의 행적이 낱낱이 폭로되기까지의 내막과 사후 드러나는 진상 또한 그 방향에 맞춰 흥미롭게 펼쳐진다. ‘신화력’은 괴테의 소설 ‘친화력’에서 제목을 따되 ‘현대사회 신화의 탄생 원리’를 주제 삼는다. 신화는 곧 ‘권위’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자유로운 시카리에 견줘 ‘정통’의 권좌에 있던 도이치조차 괴테의 미확인 문장을 100여쪽의 방송용 논고를 마감하는 최적의 언어로 선택하고 “자유”마저 느낀다 하니, 또한 작중 의도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오해는 안되지 싶다. ‘자유’가 언어의 방종에 따른 쾌감인가? 아니다, 도이치가 ‘일물일어설’에 근접하려던 치열한 (한편의 일탈적) 행위에 대한 보상이 바로 자유다.
그리고 마침내 청년 세대의 말이 들려온다. 도이치의 사위(소설가)가 도이치의 딸에게 대학 독서모임 때 했던 말. “그렇게 인용만 하지 말고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게 어때?”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우리는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형식이나 표현으로 되풀이할 뿐”이라고 도이치가 꿈에서 들은 괴테의 말대로라면 중요한 것은 (파편화하거나 뭉개지기 십상인) 말보다 말해졌고 새로 말하려 하는 맥락일 터, 그 맥락이 다름 아닌 자신의 언어, 자신의 삶 되겠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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