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반려 피아노

오래전 어느 방송 프로에서 90세 할머니가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보았다. 그분은 60세 때 처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30년 동안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웠다고 한다. 정식으로 수업을 받은 게 아니니 수준 높은 연주 실력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도 간단한 악보는 어려움 없이 연주했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여 혼자 생활했던 지난 30년 동안 할머니에게 피아노는 가장 친한 벗이었고, 삶의 위로이자 기쁨이 되었으리라.
나도 아마 그런 마음이었을 거다. 퇴직을 앞두고 무언가 허전함을 지울 수 없었다. 한동안 그것이 무언지 확실한 실체를 몰라 고민하다가, 결국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게 될 외로움과 불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내게 주어질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물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으니 그들과 함께 가야 할 길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내가 필요할 때마다 항상 나와 함께 하고, 내 의식 속에서 겪게 될 숱한 갈등을 치유할 수 있겠는가.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고 생각했을 때, 피아노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동안 10여 년간 틈만 나면 피아노와 놀았다. 피아노를 치다 보면 답답하고 울적한 기분이 어느덧 기쁨으로 바뀌어 있고, 마음이 들떠 종잡을 수 없다가도 이내 차분해지곤 했다. 가끔은 너무 힘들어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피아노를 배우는 일은 고통보다 기쁨이 훨씬 컸다.
요즘은 베토벤이 작곡한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곡에 푹 빠져 있다. 이 곡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다. 특히 도입 부분을 비롯해 곡의 중간중간에 반복되는 아름다운 선율은 우리 주변의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이 곡은 예전에 학교에서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었고, 자동차의 광고 음악으로도 활용했으며, 심지어는 쓰레기 수거 차량의 신호음으로도 이용되었다. 그만큼 이 곡의 리듬은 듣는이의 마음을 편안하게도 하고 설레게도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런데도 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음미하며 들어본 사람도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어쩌면 너무도 익숙한 리듬이라서 그저 쉽고 단순한 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하게 된 배경이나 곡의 흐름이 바뀌면서 주는 감정의 변화를 음미하며 들어보면 이 곡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이 곡은 베토벤이 테레제라는 여인에게 청혼하고 거절당한 후에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도입 부분은 아주 부드러운 멜로디로 곡예사가 줄을 타듯 조심스럽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중간 부분은 템포가 빨라지면서 물고기가 호수 위로 튀어 오르듯 기쁨에 충만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어둠에 길을 잃은 듯 방황하고 고뇌하는 음률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어서 폭우에 계곡물이 쏟아져 내리듯 매우 빠른 리듬이 오르내리다 다시 도입 부분의 애절한 멜로디로 마무리된다. 이 곡을 연주하고 나면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을 모두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것들과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신선했던 감정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익숙해 지면 지루해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우리는 익숙한 것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좋아하는 취미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알고 이해하려고 했을까? 함께 한 10년, 함께 할 여생, 나는 피아노와 얼마나 더 친해질 수 있을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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