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엡스타인 연루 ‘거물 명사’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 강단서도 내려와
대학 조사기간 강의 중단키로… 충격 속 사실상 퇴장 수순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
미성년자 성범죄자로 유죄 판결을 받은 고(故)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부적절한 교류 정황이 드러난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자 전 하버드대 총장이 하버드대 강단에서도 내려오기로 했다.
이미 각종 공적 활동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대학 내부 조사 기간 동안 강의를 맡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의 자숙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성과 영향력에 비례해 미국 사회의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결혼생활 중 다른 여성과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엡스타인에게 설명하면서 조언을 구한 것으로 드러난 데에 미국 사회는 충격과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머스 전 총장은 오랜 세월 미국 경제 정책과 학계, 정치권을 넘나들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거물 명사’다. 그런 만큼 그의 추락은 충격이 더 크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서머스 전 총장의 대변인이 19일(현지시간), 엡스타인과의 관계를 둘러싼 하버드대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가 강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주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들이 공개한 ‘엡스타인 파일’, 특히 2012년부터 2019년 3월까지 최소 7년간 이어진 이메일 기록은 그가 모든 공적 활동을 접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이메일들에는 서머스 전 총장이 기혼자이면서도 자신의 부적절한 여성 관계를 엡스타인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한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메일이 세상에 공개된 직후 그는 “제 행동에 깊은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며 공적 활동 전면 중단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서머스 전 총장은 이번 조치와 함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맡아온 모사바르-라흐마니 기업정부센터 소장직에서도 사임할 예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학기 수업은 동료 교수들이 대신 마무리하며, 다음 학기에는 강의 계획이 없다고 그의 대변인은 전했다.
다만 조사 기간 동안 그가 보유한 ‘하버드 종신 교수직’은 유지된다. 그가 대학에서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특혜 논란이 확산되고, 일부 교수진에서도 “권력 구조의 문제를 드러낸 사건”이라는 내부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하버드 캠퍼스에서는 서머스 전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학생 단체들은 연일 성명을 발표하며 “하버드대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미성년 성범죄자와 교류한 전 총장에게는 관대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서머스의 완전한 직위 박탈’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이 진행 중이다.
일부 학생들은 그가 재무장관·하버드 총장·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지낸 정치·경제계의 핵심 인물이었던 만큼 그의 영향력이 부당하게 작동할 가능성을 문제 삼고 있다.
이번 사태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이유는 서머스 전 총장이 지닌 무게감과 상징성 때문이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했고,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경제정책 입안에 관여한 NEC 위원장을 맡았다. 하버드대 최연소 종신 교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으며, 2001년부터 2006년까지는 하버드 총장을 지냈다.
경제학계에서는 ‘신경제학파’의 대표적 논객으로, 미국과 유럽 정책 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 또한 여러 국제 싱크탱크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며 글로벌 경제 논쟁을 주도해왔다.
이러한 인물이 미성년자 성범죄자와 수년간 개인적 교류를 이어왔다는 사실은 너무나 이질적이다. 이번 서머스 전 총장의 사례를 계기로 미국 사회와 학계 전반의 윤리 의식에 대한 근본적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서머스 전 총장은 이날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이사직에서도 물러났다. 글로벌개발센터(CGD),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예일대 예산연구소, 브루킹스연구소 해밀턴 프로젝트 등 그가 활동하던 주요 싱크탱크에도 일제히 사의를 표명해 사실상 미국 내 공적 무대에서 퇴장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NYT와 블룸버그 등 주요 언론도 그의 오피니언 기고 중단을 이미 사고로 알렸다. 그가 미국 사회에서 행사해왔거나 보유한 모든 지적·정책적 영향력은 물거품이 됐다.
이번 사건은 오랜 기간 권력층과 엡스타인을 둘러싸고 제기돼온 ‘책임 문제’를 다시금 부각시켰다. 미국 사회는 “그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인사들조차 엡스타인의 네트워크에 깊이 얽혀 있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과 실망, 냉소를 보내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하버드대 내부 조사 역시 개인 비위 확인에 그치지 않고 미국 지도층의 책임과 도덕적 투명성을 요구하는 논의 방향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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