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건축물 기행] 양산 ‘목화당1944’

knnews 2025. 11. 2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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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하나, 기둥 하나… 기억을 찾고 시간을 품다

1944년 일제강점기 준공된 건축물
1980년대부터 양산기장축협 창고
도시재생사업으로 마을카페 변신
외부 벽돌 벽체·기둥 그대로 살려
과거·현재 잇는 미래 플랫폼으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오봉산의 능선이 부드럽게 감싸는 양산의 과거 중심지였던 중앙로에는 아직도 5일장이 서는 시장과 좁은 골목들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중 북부동 한 골목 안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 ‘목화당1944’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시절부터 현재 카페로 되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목화당1944’는 일제강점기였던 1944년에 준공된 건물이다. 당시 양산은 낙동강 나루를 따라 물자가 오가던 교통의 요지였다. 오봉산 아래에서 재배된 목화와 곡물이 이곳 창고에 쌓였다가 경부선 물금역을 통해 부산으로 향했다. 해방 이후에는 소방기구 보관 창고로 활용하기도 했고, 1950년 6·25전쟁 당시 보도연맹 희생자들을 구금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후 마을 공회당이 되어 사람들의 모임과 영화 상영이 이루어지는 모이는 장소로, 1980년대부터는 양산기장축협의 창고로 쓰였다. 산업화의 파도 속에서도 건물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다. ‘목화당1944’의 벽돌 사이로 스며든 세월의 결은 양산의 도시사(都市史)를 증언하는 ‘시간의 기록’이다.
양산시 북부동에 위치한 ‘목화당1944’ 야경. 이곳은 1944년 일제강점기에 준공된 건물로 2021년부터 진행된 양산 북부지구도시재생사업으로 마을카페로 재탄생했다./건축사사무소강나루/

양산시 북부동에 위치한 ‘목화당1944’ 야경. 이곳은 1944년 일제강점기에 준공된 건물로 2021년부터 진행된 양산 북부지구도시재생사업으로 마을카페로 재탄생했다./건축사사무소강나루/

◇사라질 뻔한 건물, 새 숨을 얻다

오랜 세월의 노후화와 기능 상실로 인해 한때 철거가 검토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양산시에 도시재생 전략사업이 시작되며 2021년부터 진행된 양산 북부지구 도시재생사업은 ‘양산 원도심, 양주골의 미래혁신을 양산하다’라는 비전 아래, 일제강점기 지어진 건축물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거리 환경 개선과 더불어 역사와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진행됐다.

대상 건축물은 원형이 남아 있는 당시 기장축협 창고(현 ‘목화당1944’)와 칠칠공사(현 ‘의춘당’). 개인 소유로 철거 위기에 있거나 증축으로 훼손되고 있어 이 두 건물을 양산시가 매입하며 사업을 진행했다.
‘목화당1944’ 전경. 이곳은 1944년 일제강점기에 준공된 건물로 2021년부터 진행된 양산 북부지구도시재생사업으로 마을카페로 재탄생했다./건축사사무소강나루/

‘목화당1944’ 전경. 이곳은 1944년 일제강점기에 준공된 건물로 2021년부터 진행된 양산 북부지구도시재생사업으로 마을카페로 재탄생했다./건축사사무소강나루/
목화당은 가로 9.5m, 세로 27.5m의 장방향으로 긴 형태로 붉은벽돌을 길이면과 마구리면을 한 줄씩 교차해 가며 쌓은 1.5B 영식쌓기 벽체 위에 목재 트러스를 올려 지붕을 올린 형태다. 별도의 기둥을 만들지 않았으나 건물 외부에 약 8.5m마다 벽체와 동일한 형태로 기둥이 덧대어져 있다. 장식은 정면에서도 나타나며 출입구 상부에 벽돌로 ‘木’자와 ‘王’자를 만들어 장식해 놓았고, 목화 꽃송이를 닮은 반원의 파사드를 가지고 있다. 건물 하부에는 시멘트가 덧발라져 있는데, 조적이 지면에 맞닿아 있어 빗물에 벽돌을 보호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하지만 옆 도로가 뒤로 가면서 낮아지는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덧바름 위로 보이는 조적 단수가 같게 되어 있어 실측에서 보여주는 높이보다 시각적으로 건물이 높게 보인다. 당초 창고에 통풍을 위한 하부 환기구를 설치했던 것은 용도가 바뀌면서 벽돌로 막아버린 것으로 보였다.
‘목화당1944’ 내부. 목재 트러스의 형태는 원형을 그대로 유지했다.

‘목화당1944’ 내부. 목재 트러스의 형태는 원형을 그대로 유지했다.
‘목화당1944’ 내부.

‘목화당1944’ 내부.

내부에는 기장축협 본사로 사용하면서 만든 금고 외에는 내부 칸막이가 없는 통홀이었고, 베니어합판 천장이 있어 전체 규모에 비해 낮은 천장고를 가지고 있었다. 내부 벽은 시멘트몰탈을 벽돌 위에 덧발라 페인트로 마감한 단순한 구조였다.

준공된 지 80년이 되어 가는 건물에 새로운 용도를 부여하기 위한 설계 단계에서 가장 큰 과제는 ‘현행 법규’와 ‘원형 보존’의 균형이었다. 문화재가 아닌 일반 공용건축물이어서 내진 기준을 충족해야 했고, 구조 보강 없이는 리모델링이 불가능하고, 단열기준 또한 현행법에 적합해야 한다.
‘목화당1944’ 야경.

‘목화당1944’ 야경.
‘목화당1944’ 야경.

‘목화당1944’ 야경.
필자는 구조기술사와 함께 오랜 논의 끝에 외벽을 해체하지 않고 내부에 철골(H형강) 기둥과 보를 세워 보강하는 방식을 택했다. 외부의 붉은 벽돌 벽체와 장식 기둥, 내부 목재 트러스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철근콘크리트 기초를 내부에 새로 시공해 철골 기둥을 세웠다. 철골보를 최대한 기존 목재 트러스의 위치에 맞추고, 그 사이 간극(間隙)은 각파이프를 받쳐 일체화했으며, 천장 마감재를 걷어내 지붕 하부구조를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창문은 목제 단창이 설치돼 있는데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 창호로 교체하면 전체적 느낌이 사라질 것 같아 외부에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에 열효율에 맞는 창문을 덧대어 시공해 외부에서는 목제 창문으로 오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다만 의춘당과 연계하기 위해 화장실을 신설하고, 측면도로에 과거 벽돌로 막아 놓았던 입구를 복원해 자동문을 설치했으니 다행히 큰 이질감은 없었다.
‘목화당1944’ 내부.

‘목화당1944’ 내부.
‘목화당1944’ 내부.

‘목화당1944’ 내부.

◇기억의 집, 미래의 플랫폼

양산은 전통과 근대, 그리고 첨단이 공존하는 도시다. 조선시대 읍성이 남아 있는 원도심과, 새롭게 들어선 신도시가 나란히 있다. 물금, 덕계, 삼호, 신기 등 각 지역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도 고유한 결을 지켜왔다.

‘목화당1944’는 그 중심에서 양산의 ‘시간의 층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인근의 ‘의춘당’과 함께 양산 문화역사플랫폼을 구성하며,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도시가 자기 기억을 복원하고 정체성을 새로 세우는 과정이다.
‘목화당1944’ 내부.

‘목화당1944’ 내부.
‘목화당1944’의 복원은 ‘보존’과 ‘활용’ 사이의 균형으로 도시재생사업의 방향을 보여준다. 원형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주민 의견을 반영한 유연한 운영 전략과 공공-민간 협력 구조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
‘목화당1944’ 전경.

‘목화당1944’ 전경.

이제 ‘목화당1944’는 단순한 근대건축이 아니라, 과거의 상흔을 지우지 않고 품어 안는 태도, 공동체의 기억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곧 이 공간의 존재 이유다. 그 벽돌 하나, 기둥 하나가 전하는 이야기는 오래된 듯하지만 결코 낡지 않았다.

‘목화당1944’는 이제 시간의 집이자 사람의 집이다.
설계: 건축사사무소강나루 배미선

설계: 건축사사무소강나루 배미선

◇건축 개요

설계: ‘건축사사무소 강나루’ 배미선 건축사

위치 : 양산시 북부동 376-1

용도 : 근린생활시설(휴게음식점)

배미선(건축사사무소강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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