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년 워너 브라더스는 어쩌다 다시 매물로 나왔나[딥다이브]
102년 역사의 할리우드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 매트릭스·해리포터·반지의 제왕·다크 나이트 등. 최고의 흥행작을 남긴 ‘영화의 역사’ 같은 기업이 또다시 팔립니다.
어디로? 예비 입찰 마감일(20일)이 코앞인 가운데, 인수 희망자로는 이런 곳이 거론되죠. 파라마운트, 넷플릭스, 컴캐스트,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할리우드 새로운 거물의 탄생
1923년 워너 가의 4형제가 설립한 워너 브라더스. 1927년 세계 최초의 장편 유성영화 ‘재즈 싱어’로 대성공을 거둔 이래, ‘카사블랑카’, ‘마이 페어 레이디’, ‘용서받지 못한 자’ 등 명작들을 쏟아내며 할리우드 최고의 스튜디오로 자리 잡았죠.

디스커버리는 워너 미디어를 430억 달러에 인수해 2022년 4월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를 탄생시켰습니다. 이제 이 기업은 이런 사업을 아우릅니다. 워너 브라더스(영화), DC 엔터테인먼트(슈퍼맨과 배트맨), HBO(TV 드라마), 디스커버리(다큐멘터리), CNN(뉴스), HBO 맥스(OTT).
거대 미디어 기업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를 이끌게 된 자슬라브 CEO. 그는 인수 직후 ‘잭 워너(워너 브라더스 창립자)의 그 유명한 워너 브라더스 급수탑을 물려받았구나’라며 꽤나 감격했다는데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선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단숨에 ‘할리우드의 새로운 거물’로 올라섭니다. 그리고 이 거물이 할리우드를 대혼란에 빠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죠.
엔터 기업을 쥐어짜는 방법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 주주들이 자슬라브 CEO에 부여한 과업은 단순했습니다. 바로 ‘비용 절감’이었죠. 앞서 두차례의 인수 합병(2000년 AOL, 2018년 AT&T) 과정에서 불어난 막대한 부채(2022년 당시 500억 달러)의 늪에서 탈출하려면, 어떻게든 쥐어짜야만 했으니까요. 그가 이사회에서 부여받은 목표치는 ‘2년간 30억 달러(4.4조원) 비용 감축’이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어떤 식으로 비용을 감축할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안 만들면 됩니다. 제작을 멈추거나 취소하는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돈은 관객들이 보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법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영화 개봉을 위해 마무리 작업과 마케팅에 수천만 달러를 더 쓰느니, 차라리 제작비 9000만 달러를 손실로 처리해서 그에 해당하는 세금(연방 법인세율 21%, 뉴욕주 법인세율 7.25%) 수천만 달러를 아끼는 게 낫다고 본 겁니다.
자슬라브 CEO는 이 결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제작비로) 1억 달러를 썼는데, 개봉하지 않으면 다 날아가 버립니다. 문제는 이 영화를 극장 개봉하고 홍보에 3000만~4000만 달러(약 440억~586억원)를 더 써야 하는가입니다. 회사의 건전성 때문에 우린 그런 결정(제작 중단)을 내려야 했어요. 그 결정에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했죠.”

또 보통 콘텐츠 비용은 여러 해로 나눠 회계처리하는데요. 아직 이 기간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콘텐츠를 삭제하면, 남은 비용에 대해 한꺼번에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세금을 줄이려고 이 기간이 남은 프로그램을 골라 삭제한 거죠. HBO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우, 이렇게 HBO 맥스에서 내려가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슬라브 CEO가 왜 ‘할리우드에서 가장 미움 받는 인물’로 불리게 됐는지 아시겠죠. 그는 프로그램 제작에 투입된 수많은 노력, 팬들의 신뢰 따위는 안중에 없는 냉정한 경영자입니다. 그 결과, 그는 목표치를 초과해 40억 달러 비용 절감에 성공했습니다.
그 공로로 2024년 그는 무려 5190만 달러(약 760억원)의 보상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이는 넷플릭스 테드 사란도스 CEO의 보수(6190만 달러)와 비교해도 큰 차이 없는데요. 다른 점라면 넷플릭스는 그해 87억 달러(12.7조원) 이익을 기록한 데 비해,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는 110억 달러(16.1조원) 적자를 냈다는 점이죠.
HBO 맥스의 황당한 리브랜딩
단기적인 비용 절감을 위해 수년간 공들인 콘텐츠들을 희생시키는 게 과연 맞는 방향일까요. 지극히 회의적이지만, 그래도 이 부분에선 찬반이 엇갈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자슬라브 CEO가 한 일 중 누가 봐도 명백한 실패작은 이거였습니다. HBO 맥스의 리브랜딩.

비판과 조롱이 쏟아졌습니다. 당시 넷플릭스 CEO 테드 사란도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죠. “정말 깜짝 놀랐어요! HBO의 행보를 지켜봤는데, 한때 HBO, HBO Go, HBO Now, HBO 맥스까지 있었죠. 그래서 저는 ‘본격적으로 하려면 그 모든 이름이 사라지고 그냥 HBO만 남게 될 거야’라고 말했어요. HBO가 사라질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자슬라브 CEO는 ‘HBO’의 프리미엄 이미지가 고객 확장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더 넓은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HBO 브랜드를 일부러 지운 거죠. 대신 더 저렴하고 편안한 디스커버리의 리얼리티쇼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을 가져와서 정체성을 흐렸고요.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한 이름(맥스)을 붙였습니다.

슈퍼맨도 못 구할 워너, 믿을 건 매각뿐
3년 연속(2022~2024년) 적자. 무자비한 비용 절감에도 여전히 과중한 부채(2025년 6월 기준 380억 달러). 2025년 봄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 주가는 10달러 밑으로 떨어졌고, 3대 신용평가사는 모두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낮췄습니다.
이래서는 제아무리 슈퍼맨이 와도 구하기 어려울 지경. 실제 2025년 7월 개봉한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의 ‘슈퍼맨’은 4억 달러 넘는 수익을 올렸지만, 가라앉는 기업의 운명을 블록버스터 영화만으로 되돌리기란 역부족처럼 보였습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건 데이비드 엘리슨 CEO의 아버지. 바로 오라클 창업자이자 세계 2위 부자(순자산 2770억 달러) 래리 엘리슨이죠. 그만큼 자금력이 엄청날 뿐 아니라, 트럼프 정부의 지지도 받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는 거물급 후보는 바로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케이블 채널을 제외한 스튜디오(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제작)와 스트리밍(HBO 맥스) 부문만 인수를 적극 검토 중이라는데요. 넷플릭스로선 배트맨과 해리포터 지식재산권(IP)을 탐내지 않을 수 없겠죠. 워낙 돈 잘 버는 기업이니 자금력은 문제없고요. 규제 장벽이 관건입니다.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시장 지배력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반독점법 위반이란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죠.

이번 매각이 잘 마무리돼 주주들이 높은 수익률을 올린다면 자슬라브 CEO로선 성공적인 임무 완수이겠죠. 비록 ‘할리우드의 파괴자’란 평은 피할 수 없겠지만요. 부디 이번 워너 브라더스 M&A는 이전과 달리 재앙이 아닌 해피엔딩으로 기록될 수 있기를. By.딥다이브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는 올해 에미상 시상식에서 170번이나 후보에 오르면서 여전히 저력 있는 스튜디오라는 걸 보여줬습니다. 케이블TV 사업의 쇠퇴와 스트리밍 서비스 부문의 막대한 적자로 전체 실적은 부진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선 대단한 기업임엔 틀림없죠. 누가 새 주인이 될지, 한번 지켜보시죠.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102년 된 할리우드 스튜디오, 워너 브라더스가 다시 매물로 나왔습니다. 2022년 디스커버리의 인수로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가 된 지 3년여 만입니다.
-그동안 워너 브라더스는 대혼란을 겪었습니다. 자슬라브 CEO는 대대적인 제작 중단과 프로그램 삭제 등 비용 절감에 올인했고요. 그 과정에서 제작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미움 받는 인물’이 되어버렸죠.
-무엇보다 스트리밍서비스 ‘HBO 맥스’를 ‘맥스’로 리브랜딩한 게 패착이었습니다. 50년 넘게 구축해온 HBO 브랜드를 스스로 버렸던 거죠. 결국 올해 다시 ‘HBO 맥스’라는 이름으로 돌아옵니다.
-빚더미에 앉은 채 주가가 추락했던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 하지만 이를 사기 위해 다시 쟁쟁한 엔터 기업들이 인수전에 뛰어들었습니다. 파라마운트, 넷플릭스, 컴캐스트. 이 3강이 겨루는 가운데, 사우디 공공투자기금이 파트너로 참여할 거란 관측까지 나오죠.
*이 기사는 11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與도 말리는데 발끈한 ‘왕실장’… “주변서 ‘정치영역 들어왔다’ 해”
- “쾅 하더니 배 기울어”…267명 탄 여객선 항로 벗어나 무인도 충돌
- 정성호, 한동훈 ‘론스타 항소’에 “잘하신 일…퇴임후 본격 진행”
- [단독]차기총선 공천권 쥘 당대표 선출 ‘정청래 룰’ 논란… “당심 비율 확대”
- ‘울산발전소 붕괴’ HJ중공업 본사 등 6곳 압수수색
- 변기에서 울음소리, 물탱크 열어보니 신생아가…
- “조카 얼굴에 아이라이너 범벅”…2000만뷰 영상, 바이럴 마케팅?
- [김순덕 칼럼]대장동 싸고도는 ‘변호인 정부’, 김건희 싸고돌던 검찰정권
- “사업 성공뒤 거만해졌다”…北, ‘큰손 부부’ 공개 처형
- 엔비디아 깜짝 실적에…코스피 4000선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