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윤석열, “(계엄 선포 후) 할 일 없었다”

윤석열, 한덕수, 김용현, 이상민. 12·3 쿠데타의 중심에 있던 이 인물들이 한날 한 장소에 모습을 보였다. 11월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재판에 윤석열·김용현·이상민 세 사람이 모두 증인으로 참석했다. 당초 윤석열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으나 재판부가 구인영장 집행을 감행하겠다고 경고한 후 입장을 바꿔 증인석에 앉았다. 윤석열이 내란 관련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석열·김용현·이상민은 모두 이 법정에서의 증언이 각자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주요 질문에 대해 “증언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한덕수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3부(재판장 이진관 부장판사)는 11월 중 재판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 “선서 거부 처음 봤다”
이날 오전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구속 중인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다. 이 전 장관은 본격적인 신문이 시작되기 전부터 증인 선서를 거부하며 논란을 불렀다. 자신에 대한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이고 형사소송법상 선서 거부가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증인 선서를 거부한 이상민 전 장관에 대해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했고, 이 전 장관에 대한 신문이 끝나갈 무렵 이렇게 말했다. “재판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진행한다. (증인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법정 최고형이 사형이다. 혐의가 중하고 저희 재판 과정에서 CCTV나 여러 증언 보면 증인이 깊이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을 고려해 전체적으로 (증인의) 증언 거부를 허용했다. 제가 재판하면서, 형사재판에서 선서 거부하는 것은 처음 봤다. 법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선서 거부 사유가 없음에도 선서 거부를 했다고 보아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했다.”
증인석에서 재판부의 이 같은 말을 들은 이상민 전 장관은 재판부의 결정에 수긍하지 않았다. 도리어 “정당한 사유가 없을 경우에만 (선서 거부시) 과태료를 부과한다”라고 따졌고, “즉시 이의제기 한다는 것을 조서에 남겨달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재판에서 검사 측의 질문에 대해 “답변드리지 않겠다”라는 말만 반복했던 이 장관은 오직 ‘벌금 50만원’에 대한 내용에만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 방청석에서 소리 지른 김용현 변호인
오후 재판의 첫 증인으로는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출석했다. 구속 상태인 김 전 장관은 당초 이 재판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강제구인 영장 집행을 예고하자, 오후 재판에 결국 출석해 증인석에 앉았다.
막상 재판이 시작되자 방청석이 소란스러워졌다. 김용현과 이상민의 변호인들이 연달아 돌발행동에 나섰다. 오후 2시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방청석 가장 앞자리에 앉은 이들이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이진관 재판장을 호명했다. 가장 먼저 김용현의 변호인인 이하상 변호사가 방청석에서 “신뢰 관계 동석(을 요청한다). 저희의 권리를 위해 한 말씀 드리겠다”라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 재판장은 퇴정 명령을 내렸으나, 이 변호사가 소란을 멈추지 않자 끝내 “감치하겠다”고 선언하며 구금을 명령했다. 이 변호사는 법정을 나서며 “이것은 직권남용이다”라고 소리쳤다.
뒤이어 옆자리에 앉아있던 권우현 변호사도 일어서 “이것은 공개재판이잖나”라며 따졌고, 마찬가지로 감치 대상이 되었다. 권 변호사는 끌려나가는 과정에서 “감치 처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판장님”이라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이들과 함께 앉아있던 세 번째 인물도 뒤이어 재판부에게 “저는 이상민 변호인이다. (저도) 감치해달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인물에게는 “퇴정하시라. 중계방송을 보시라”며 퇴정 명령만 내렸다.
한 차례 소란이 정리된 후 증인석에 앉은 김용현 전 장관 역시 증인 선서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증언을 안 해도 선서를 (꼭)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고, 재판부는 “선서 무능력자를 제외하고 선서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증인 선서 후 김 전 장관은 검사 측의 질문에 대해 앞선 이상민 전 장관과 마찬가지로 “증언하지 않겠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검사 측은 CCTV 영상과 김 전 장관이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은 조서, 윤석열 탄핵심판정에서 증언한 내용 등을 바탕으로 계엄 선포 당일 국무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물었지만,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다.
■ “하지만” “다만” 이후 따라붙은 말들
세 번째 증인인 윤석열은 오후 4시에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역시 당초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며 이 재판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강제구인의 가능성이 높아지자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증인석에 모습을 드러냈다. 증인 신문에 앞서 윤석열 변호인단 중 한 명인 김홍일 변호사 역시 방청석에서 ‘신뢰관계 있는 자의 동석’을 요구했다. 형사소송법상 증인으로 신문하는 이가 여러 상태를 고려해 불안·긴장을 느낄 경우 신뢰관계에 있는 자의 동석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상 신뢰관계 동석은 범죄 피해자일 경우에만 가능하다”라며 거부했고, 단순 방청만 허용했다.
윤석열에게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변호인 없이 홀로 법정 정중앙, 증인석에 앉았다. 윤석열 역시 재판 시작과 동시에 김용현·이상민과 같은 태도를 보였다. 비상계엄 경위와 세부 내용, 지난해 12월3일 대통령실 CCTV에 나타난 동선 등에 관한 질문에 “답변하지 않겠다”는 언급을 반복했다. 그러나 신문이 길어지자, 윤석열은 “답변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 뒤에 “하지만” “다만”이라는 뒷말을 이어붙이며 조금씩 관련 증언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쟁점이 된 부분은 피고인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국무회의 전후에 계엄을 반대했는지, 그리고 국무회의 요건을 갖추려는 시도를 어떻게 했는지였다. 검사 측이 “피고인이나 국무회의 다른 참석자들이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듣고 증인(윤석열)에게 뭐라 했나”라고 묻자, 증인 윤석열은 “답변하지 않겠다. 다만, 여기 피고인 한덕수 당시 총리는 저에게 재고를 요청한 적이 있다. 반대하는 취지로 다시 생각해달라는 얘기를 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윤석열은 자신이 피력하고 싶은 대목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주례 보고하듯 (국무위원들에게) 연락하면 국무회의 소집하는 과정에서 계엄 선포 사실 알려진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정족수 채워야 하니, 빨리 올 수 있는 사람 여기저기 물어봐서, 11명 정도 된다 하니 그걸 맞추려고 했다.”
“(김용현 전 장관이) 뭐 어디 언론사 얘기하는데 제가 펄쩍 뛰었다. 민간 기관 절대 보내지 말라. 안 된다 딱 잘랐고. 그래서 장관이 주시해서 출동하지 않고 중간에 가다가 올스톱했다”
“국무회의 없이 (계엄선포를) 하려다가 (한덕수) 총리 건의로 국무회의를 하려고 했다? 그건 넌센스라고 말씀드리겠다. 계엄에 국무회의 필요하단 거 알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증인 윤석열은 한덕수 측 변호인과 이해 관계가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피고인 한덕수측 변호인은 “피고인(한덕수)이 국무위원을 더 불러야 한다고 그렇게 건의한 사실이 없나”라고 물었다. 그러나 이에 윤석열은 “기억나지 않는다. 뭐 말씀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잘 모르겠다. 정확한 기억은 없다. (저는 그 전부터) 국무회의 요건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라며 국무회의 요건을 애초부터 본인이 인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검사 측이 CCTV 영상을 보여주며 비상계엄 선포 당일 증인 윤석열의 행적과 각 행적의 의도를 묻는 질문을 하자,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 전후 대통령실 상황을) 추정하는 질문이라 답변하지 않겠다”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재판부의 추가 질문에 대해서는 당시 자신의 상황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다. 재판부는 윤석열 신문 말미에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 추경호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과 통화한 것을 언급하며 “무슨 얘기를 나누었나? 통화 시점(각각 오후 11시22분, 오후 11시26분)을 고려하면 (비상계엄 선포 직후라) 상황이 급박해 보였는데”라고 질문했다.
여기에 돌아온 증인 윤석열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미리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방에서 다들 나가고, 방에 혼자 있었다. 정신없는 상황은 아니었다”라고 언급하더니, 마지막 발언으로 “저도 그때(비상계엄 선포 직후) 할 일이 없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고, 시민들은 국회 앞으로 달려나와 온몸으로 군을 막으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그 시각을 증인 윤석열은 ‘할 일이 없었던 시간’으로 회고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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