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절반을 채운 커다란 L자 책상에서 글을 쓰다 고개를 들면 탁 트인 통창으로 바다가 보입니다. 적막이 흐르는 공간, 들리는 건 파도 소리뿐입니다. 1층 로비 라운지로 걸어 내려가면 독서실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바다를 향해 놓인 칸막이 책상에서 숙박객들은 공부하거나,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켜고 글을 씁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명상실에 들어가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오래 앉아 있어 온몸이 뻐근할 때는 바다를 보며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의자도 있습니다. 절간같이 조용해 캐리어에 읽을 책을 한가득 넣고 온다는 이곳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교암리 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호텔 ‘맹그로브 고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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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여기힙해 첫 기사는 ‘풀파티 천국, 양양·고성’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로 나가지 못하는 서퍼들이 양양·고성에서 서핑을 즐기기 시작했고, 멋진 남녀들이 이곳으로 몰린다는 소문에 전국에서 핫걸·핫가이들이 놀러 왔습니다. 그렇게 매일 낮에는 서핑을 즐기고, 밤에는 파티를 즐기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이들을 겨냥한 느낌 좋은 카페, 트렌디한 맛집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그러나 코로나가 끝나고 서퍼들이 다시 해외로 나가면서 양양·고성의 관광객은 급속도로 줄었습니다. 뒤늦게 힙하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구경 오자 과거의 뜨거운 분위기는 사라졌습니다. ‘양양·고성이 텅텅 비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올해부터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서핑보드를 들고 있던 손에는 책과 노트북을 들었습니다. 사람이 없는 분위기 좋은 카페는 책 읽기 딱입니다. 바닷가에 즐비한 트렌디한 호텔과 식당은 바다를 보며 일하기 좋습니다. 특히 최근 가장 유행하는 건 ‘텍스트힙’, 서핑보다 책 읽는 것이 더 힙한 시대입니다.
힙하다는 뜻에는 희소 가치가 묻어있습니다. 너도나도 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힙하지 않습니다. 파도 위 보드에서 손으로 휘적휘적 안 해본 사람이 없어지는 순간 서핑은 더 이상 힙하지 않아졌습니다. 대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힙해졌습니다. 그만큼 희소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책 읽는 것도 트렌드가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각 잡고 읽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무심한 듯 옆구리에 책을 끼고 걷다,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EDM(전자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것입니다. 매달 성수동의 언더시티에서 펼쳐지는 광경입니다.
고성에서는 ‘글라스하우스’입니다. 원래는 서퍼들이 목을 축이던 아지트였지만, 지금은 책도 읽고, 러닝도 하고, 요가도 하고, 트레일러닝(산과 계곡을 누비는 러닝)도 합니다. 이 공간에 앉아 책을 읽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만 봐도 최신 트렌드는 다 알 수 있습니다.
지난 8월에는 책과 음악이 머무는 바다 ‘낫어북페어(NaB·Not a Bookfair)’도 열렸습니다. 독립 출판물과 가면 퍼레이드, 공연(DJ 및 퍼포먼스)이 함께 모이는 장입니다. 북페어가 이렇게까지 힙해질 수 있다니! 페어에서 책 한 권 구입해 해변가에 누워 읽고 싶습니다.
양양 죽도해변에는 아예 해변 위에 책을 읽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웨이브 웍스’입니다. 죽도해변, 많이 들어보셨다고요? 양양이 한창 핫할 때 매일 밤마다 광란의 풀 파티가 펼쳐지던 곳입니다. 밤이면 헌팅하는 남녀들로 한 걸음 걷기가 힘들던 곳입니다. 여기힙해 1회 사진에 등장한 ‘템플온더비치’가 걸어서 8분 거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오로지 책을 읽고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4시간에 1만원, 8시간에 1만8000원을 내면 해변가 책상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책 읽고 일할 수 있습니다. ‘고고 양양’ 앱에서 5000원 할인 쿠폰도 받을 수 있습니다. 4시간에 5000원을 내고 바다를 보며 책 읽는 공간이라, 전 세계에서도 찾기 힘듭니다. 여름에는 아직 서퍼들도 있습니다.
바다 풍경이 지겹다면 솔향기 언덕에 있는 ‘카페로그’도 있습니다. 양양 하조대에 있는 대형 북카페로 숲과 바다 전망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높은 층고, 벽면 가득 채운 책들은 구성이 좋습니다. 한국교과서협회 연수원 건물 1층에 만든 카페입니다. 대형 도서관 같은 이곳에서 사람들은 발걸음도 조용히 걷습니다.
책 읽고 글쓰다 힘들면 노트북을 둔 채 그대로 밖으로 나갑니다. 건물 주변으로 산책할 수 있는 숲길이 있습니다. 해수욕장까지는 걸어서 10분입니다. 이렇게 숲길과 해변가를 걸으며 머리를 식히고 다시 자리에 앉습니다.
서퍼들이 좋아하는 양양·고성의 분위기가 여름이었다면, 텍스트힙족들은 겨울을 좋아합니다. 겨울 바다가 주는 무게감이 사람을 더욱 차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작년부터 가방에 책을 잔뜩 넣고 이곳으로 놀러 온 이가 말합니다.
“겨울 바다를 보며 책을 읽으면, 영혼까지 맑아지는 것 같아. 눈이 오면 더 좋아! 눈 내리는 바다는 진짜 낭만적이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