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부자에만 허용된 기회를 ‘빼앗다’…로빈후드가 연 기회의 재편[비트코인 A to Z]

한경비즈니스 외고 2025. 11. 2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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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후드 공동 창립자 테네프(오른쪽)와 바이주 바트./연합뉴스

영국의 전설 속 영웅 로빈후드에게는 흔히 ‘의적’이라는 호칭이 붙습니다. 부자들로부터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인물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세계적 핀테크 기업 로빈후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융서비스에서 소외되었던 일반 투자자들에게 더 쉽고 저렴하게 투자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창업의 뜻이 반영이 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증권 거래 및 코인 거래에 손쉬운 인터페이스로 투자 행위의 지평을 넓힌 로빈후드의 역사는 이를 증명합니다. 지난여름 로빈후드의 그 취지가 한층 선명하게 드러난 일이 있었습니다. 유럽 고객들을 대상으로 출시했던 ‘주식토큰’(stock tokens) 이야기입니다.

부자만 가능한 ‘비상장사’ 투자

주식토큰은 토큰화한 주식입니다. 애초에 주식이라는 게 기업의 지분을 쪼개서 소유하고 거래할 수 있게 만든 거죠. 그 주식을 블록체인 기술로 다시 쪼개고 전산화해서 더욱 거래하기 쉽게 만든 게 주식토큰입니다. 상장사 주식은 증권시장에서 거래돼야 하므로 시간 제약이 존재하지만 주식토큰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비상장사 주식이 토큰화되는 것은 더 큰 효과를 봅니다. 로빈후드는 역사적, 철학적, 경제사회적 의미를 강조합니다. 미국의 상장기업 수는 1996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인 가구 약 80%는 비상장기업에 대한 투자가 사실상 막혀 있습니다. 현행 ‘인증 투자자’ 규정에 따라 순자산이 100만 달러 이상이거나 연소득이 20만 달러 이상인 경우에만 사모투자가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유층은 초기 단계 투자를 통해 1000배 이상의 수익을 올리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한참 동안 기업가치가 고공행진하는 것을 바라만 보다가 공모(IPO) 단계에 이르러 1000억짜리 기업이 된 뒤에야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로빈후드의 블라드 테네브 CEO는 “이러한 제한은 사모 시장 투자의 상승분을 인구의 약 20%에게만 집중시켜 순자산 파괴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로빈후드는 이 구조를 파괴해서 자산 접근권을 확장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서비스 초기 거래할 수 있는 주식과 ETF의 가짓수가 200개라고 했는데 지금은 4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부자들이 독점하던 ‘비상장주식’이라는 정보와 기회를 일반 투자자들에게 주식토큰으로 풀어준 로빈후드에 ‘의적의 재림’이라는 수식은 과한 걸까요? 테네브 CEO는 ‘주식 거래가 물리적 거래소에서 전자 시스템으로 전환된 이래 가장 포괄적인 투자 혁명’이라면서 “우리의 서비스는 암호화폐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중추가 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고 했습니다.

 논란도 있었고 한계도 있다


물론 좋은 일만 있을 리 없습니다. 로빈후드는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은 비상장기업인 오픈AI와 스페이스X의 주식토큰을 출시했습니다. 그런데 오픈AI가 즉각 반발하며 경고를 내놨습니다.

“우리는 로빈후드와 파트너십을 맺지 않았고 이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이를 승인하지 않는다. 오픈AI 지분의 모든 이전은 우리의 승인이 필요한데 우리는 어떤 이전도 승인하지 않았다. 주의하기 바란다.”

투자자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실상인즉 로빈후드는 오픈AI의 주식을 직접적으로 토큰으로 만든 게 아니었습니다. 특수목적법인(SPV)을 통해 오픈AI 주식을 보유한 상태에서 이 법인을 토큰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로빈후드는 “(오픈AI) 지분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고 그럼에도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과거 제한되었던 사모 자산에 접근할 수 있는 효과적 기회를 제공하는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스페이스X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지털 자산과 토큰화에 대한 포괄적 규제가 존재하는 유럽에서는 상품을 출시한 로빈후드가 정작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규제 불확실성 탓에 서비스를 하지 못하는 것도 역설적입니다. 미국의 현행 규제는 토큰화된 실물자산을 ‘증권’으로 분류하지만 정작 증권법은 너무 낡아서 신문물인 블록체인 발행 토큰을 규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돌고돌아 다시 ‘인증 투자자’ 규정을 적용해 순자산이 100만 달러 이상이거나 연소득이 20만 달러 이상인 경우에 사모투자가 허용되는 예외 규정을 이용해야 합니다. 로빈후드는 “무의미하고 시대착오적”이라며 “미국의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고 한탄합니다.

 자본시장이 잠들지 않는 시대

하지만 미국도 많은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지난 3월 말 투자자 서한에서 “모든 주식, 모든 채권, 모든 펀드, 모든 자산이 토큰화될 수 있다. 그러면 투자 방식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24시간 돌아가는 자본시장을 이야기하며 결제 지연 탓에 동결되던 자금이 쉼없이 운용되면서 더 많은 성장이 가능할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블랙록은 지난해 비트코인 현물ETF를 출시한 뒤 미국 국채를 토큰화한 펀드 비들(BUIDL)도 내놨습니다.

테네브 CEO는 최근 “토큰화는 화물열차와 같다. 멈출 수 없으며 결국 전체 금융 시스템을 먹어치울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로빈후드는 토큰화의 장점으로 부동산이나 미술품처럼 현금화가 쉽지 않은 비유동 자산도 디지털 플랫폼에서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바꾸는 ‘유동성’, 블록체인의 스마트 계약을 통해 중개자와 제비용을 제거하는 ‘효율성’, 소액투자자들도 대규모 자산 투자에 참여시키는 ‘분할 소유’ 등을 꼽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기업가치 상승을 위한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토큰화가 진행될수록 유동성이 늘어나고 거래 비용을 줄이면서 세계적으로 더 많은 투자자가 참여하게 됩니다. 우수한 기업들로서는 더 많은 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마치 지금의 코인시장처럼 자고 일어났더니 밤사이 가격이 요동을 친 주식 잔고를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토큰화의 깃발이 의미하는 것

결국 토큰화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기회의 재편입니다. 거래의 장벽이 낮아지고, 자본이 더 빠르게 순환하며, 세계의 투자자들이 하나의 디지털 시장에서 만나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미국과 유럽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서려는 한국 자본시장에는 오히려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투자 접근성이 넓어질수록 혁신 기업들은 더 쉽게 자금을 유치할 수 있고 개인투자자들은 더 일찍 성장의 열차에 오를 수 있습니다. 토큰화는 아직 논란도 많고 제도적 준비도 더 필요하지만 ‘자본시장 민주화’라는 흐름 속에서 한국이 한발 앞서 성장의 주체가 될 가능성도 시사합니다.

로빈후드가 들어올린 토큰화의 깃발은 어쩌면 우리도 자본의 문턱을 낮추고 혁신의 속도를 높이라는 시대의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김외현 비인크립토 동아시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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