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日 천만 영화 '국보' 이상일 감독 "예술의 절정에 도달하는 삶, 아름다워"

정효림 기자 2025. 11. 20.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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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계를 뒤흔든 흥행작 <국보>의 창작 비밀
이상일 감독이 말하는 예술과 삶

[우먼센스] 일본에서 1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신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는 영화 <국보>가 19일 한국에서 개봉했다. 누적 흥행 수익은 170억 엔을 넘어섰고, 이달 안에 일본 실사 영화 중 역대 흥행 1위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앞서 칸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큰 호평을 받았으며, 일본 영화 대표로 아카데미(오스카)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상일 감독.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국보>는 일본 전통 연극 '가부키'에 인생을 바쳐 예술혼을 불태운 두 남자의 일대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다. 디즈니플러스 <파친코2> 연출에 참여했던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신작으로, 한국인 감독이 일본 내 혈통 중심의 가부키 세계를 정면에서 다뤘다는 점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원작은 요시다 슈이치 작가의 동명 소설로, 전작 <악인>, <분노>에 이어 세 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작품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내한한 이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달하려는 예술가들의 삶을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찬란한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다"며,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예술의 절정에 이르는, 불꽃같은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14일 서울 논현동 배급사 NEW 사옥에서 만난 이상일 감독은 전날 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보다 훨씬 편안한 모습이었다. 블랙 니트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대부분의 질문에 한국어로 직접 답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되레 질문으로 응수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에서 1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굉장하다고 느낀다. 이런 흥행은 20년 만에 나온 숫자다. 지금까지 천만을 넘긴 작품들은 대부분 애니메이션이었다. <국보>는 액션도 아니고, TV드라마 원작의 영화도 아니고, 관객이 정보 없이 보기엔 쉽지 않은 작품이다. 

그런데도 이 숫자가 나왔다는 건 작품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런 작품을 원하고 있었다는 걸 느꼈고, 관객들의 눈이 점점 깊어지는 걸 체감한다.

한국 개봉을 앞둔 지금 심정은?

긴장된다. 부산영화제에서는 페스티벌 분위기라 관객들 만나면 즐거웠지만 정식 개봉은 또 다르다. 더 진지하게 영화를 보게 되는 자리라 신경이 쓰인다. 일본에서 들은 바로는 한국은 요즘 영화관에 가는 관객이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일본 전통 예능을 다루는 영화이고 개봉 타이밍이 아주 좋은 건 아니라 아쉬운 점도 있다.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요시다 슈이치 작가와 <악인>, <분노>에 이어 다시 함께했다.

요시다 작가는 나보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악인>을 처음 작업했을 때, 그가 만든 세계가 내가 그리고 싶었던 세계와 너무 닮아 있었다. <국보>는 <악인>이 완성된 후, 온나가타 배우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고 그 아이디어를 요시다 작가에게 전달했다. 이후 소설이 완성돼 자연스럽게 영화도 함께하게 되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부키 곡들은 어떻게 선정했나?

이 영화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오페라, 장대한 서사시 같은 느낌을 줘야 했다. 무대 장면과 일상의 장면이 혼란스럽게 섞이면 안 되고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했다. 그래서 감정 흐름을 이어주는 곡들을 중심으로 골랐다.

슌스케 어머니 역의 테라지마 시노부 배우는 실제로 가부키 명문가의 장녀다. 그녀가 조언한 부분이 있었나.

많이 조언해 주셨다. 실제 가문에서 자라며 느낀 점들을 기반으로 표현해야 할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분의 조언 덕분에 설정이 더 확실해졌다. 배우들이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줬다.

가부키는 폐쇄적이고 혈통 중심적인 문화다. 영화화 과정에서 협조를 얻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가부키 공연 사업은 원래 일본의 대형 영화사 쇼치쿠(松竹)가 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가부키를 가볍게 다루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하면 배우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에 영화화에 관련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영화 개봉 후에는 가부키 배우들도 SNS와 유튜브에 좋은 감상을 올려주는 등 반응이 매우 좋았다.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영상미가 뛰어나다. 미술감독(타네다 요헤이), 촬영감독(소피안 엘 파니)과는 어떻게 작업했나?

타네다 미술감독과는 <69 식스티나인> 작품 때부터 <훌라걸스>, <악인> 등을 같이 작업하며 20년 정도 함께 오래 작업했다. 촬영감독 소피안은 <파친코 2> 작업에서 처음 만났는데 일본어를 몰라도 배우의 움직임과 분위기를 정확히 잡는 능력에 감탄했다.

두 사람 다 리얼함 속의 화려함, 즉 사실적이지만 시각적으로 강렬한 스타일을 만들어낼 줄 아는 감독들이다. <국보>도 인간의 리얼한 감정이 중심이지만, 그 위에서 미술과 화면이 화려함과 깊이를 만들어줘야 했다. 그 균형을 잡아준 것이 두 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50년의 시간을 담은 만큼 시대, 공간 변화가 많은데, 구현하기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국보>는  한 사람의 인생을 긴 호흡으로 다루지만 외적인 사회적 사건은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래서 가부키 무대와 분장실 같은 가부키 배우들의 내부 세계 안에서 시간의 흐름을 보여줘야 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배우들이 살아가는 느낌을 유지하면서 세월을 표현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가장 전율을 느낀 장면은?

키쿠오(요시자와 료)가 '오하츠' 역을 맡아 무대에 섰을 때다. 단순히 연기를 잘한 수준이 아니라 키쿠오 내면의 고통, 기쁨, 불안 같은 감정이 전부 드러났다.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왜 가부키 배우를 쓰지 않느냐는 반응이 있었지만, 이 장면을 찍는 순간 "가부키 배우가 아닌 영화배우로 가야 한다"는 확신이 실현됐다. 그 순간은 스태프들도, 배우 본인도 분명히 느꼈을 감정이라 생각한다.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두 남자 주인공 요시자와 료와 요코하마 류세이 캐스팅 이유는?

요시자와 료는 '리버스 에지'와 '킹덤'에서 인상적이었다. 만화적이고 비현실적 세계에서도 유독 '리얼한 존재감'을 유지하는 재능이 있었다.

류세이는 <유랑의 달>에서 같이 작업했었는데 겉으로는 차갑고 쿨한 남자로 보이지만 내면에는 연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졌다. 두 배우는 고양이하고 강아지 같은, 서로 다른 각각의 매력이 있어 함께 캐스팅했다.

키쿠오가 주변 사람들의 희생을 밟고 올라가는데, 그런 주변 인물들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가부키 배우의 인생은 강하고 화려한 빛을 받지만, 그만큼 주변에는 깊은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림자와 빛의 대비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키쿠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영화 안에서 중요한 위치에 두었다.

일본에서 가부키 산업은 어떤 상황인가? 영화가 만들어낸 변화가 있는지.

가부키도 사실 코로나 때문에 침체기가 있었고, 코로나 이후에도 관객들이 많이 돌아오지 않았다. 요즘 일본 젊은 세대는 가부키를 직접 보러 가는 문화가 거의 없다. 하지만 <국보> 개봉 후 젊은 관객이 늘었고 요즘은 티켓 구하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들었다. 가부키 배우들 말로는 관객들의 분위기가 이전과 많이 다르다고 한다.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온나가타(가부키에서 여성을 연기하는 남성배우)의 매력을 영화에서 어떻게 담고자 했나?

온나가타는 실제 여성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상상 속의 이상적인 여성의 형태와 동작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존재다. 온나가타가 표현하는 움직임에 여성의 아름다움, 신비로움을 담아내야 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움직임과 실루엣을 통해 잔상 같은 형태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품을 통해 가장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한마디로 말하면 '아름다움'이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는가, 어떤 삶을 선택해야 아름다움의 경지에 닿을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아름다움에는 모든 것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그걸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

감독 데뷔 초를 돌아보면 어떤가?

그때는 너무 젊었다. 영화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감독을 시작해 많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계속 배웠다. 지금까지 감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은 또 모른다.

차기작에 캐스팅하고 싶은 한국 배우가 있다면?

한국에는 훌륭한 배우 분들이 너무 많다. 봉준호 감독 작품의 송강호 배우, <기생충>의 최우식 배우, <승부>의 이병헌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파친코 2>에서 함께한 한국 배우들도 정말 좋았다.

차기작에서 다뤄보고 싶은 주제는?

앞으로도 '아름다움'이라는 것, 인생의 비애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계속 만들고 싶다. 

정효림 기자 jhlim@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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