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주말여행의 아름다움
나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찼다. 내 명예에 흠집이 났다는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 불안하고 화가 나서 주변은 안중에도 없다. 문득 창밖에서 기척을 느낀다. 황조롱이 한 마리가 활강하는 것을 발견한다. 자아는 자취를 감추고 이제 황조롱이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다시 돌아와서 본 내 문제는 덜 중요해 보인다.
이것은 철학자 아이리스 머독이 든 일화다. 내면에 갇힌 현대인이 자연을 통해 변화하는 순간을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책 저책에서 인용되는 이 일화를 읽을 때 나는 심드렁했다. 아니, 새 한두 번 보나. 새를 보며 깨달음을 얻는다는 게 인간 중심적이라고 여겼다.
주말에 순천으로 여행을 갔다. 기차역에서 습지대로 걸어가는 길에 저어새를 만났다. 부리를 물속에 넣고 이쪽저쪽 저어서 수생동물을 잡아먹고 있었다. 몸이 새하얗고 부리와 다리가 까맣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뒷머리 장식깃이 없어진 모습이다.
큰 몸집으로 물을 저어 저어 가고 있는 저어새 쪽으로 오리들이 편대를 이루어 다가왔다가 물러난다. 순천만으로 흐르는 작은 개천 이편에는 오래된 아파트가 있고 저쪽에는 새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장 가까이에서 먹이잡이하는 새들에게는 포클레인 소리와 아파트 주민들 시선이 위협적이지 않은가 보다. 억새풀이 가을볕에 빛난다. 일하는 평일에 잘 느낄 수 없는 마음으로 변한다.
해야 할 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게다가 추석 때 산에 갔다가 전신에 생긴 알레르기가 나아질 기미가 없다. 토요일 오전 기차를 타느라 진료시간을 놓쳐서 월요일 아침에 병원에 가야 한다. 지금 당장 괴로운데 어떻게 해야 하나. 나에 대한 생각으로 몰두한 와중에 저어새를 만난 것이다.
순천만국가정원 모니터링에 따르면 올해에는 흑두루미 5000여마리가 찾아왔다. 재두루미, 독수리, 큰고니는 한 자리 숫자이고 오리류 1만3000마리와 함께 노랑부리저어새는 50여마리 보인다고 한다. 한국에서 드물게 보이는 노랑부리저어새를 10여마리나 만난 해룡천은 2008년부터 펼친 하천복원사업으로 되살아났다. 어쩐 일인지 지난 1월에는 잉어, 붕어가 집단 폐사해서 철새가 이들을 먹지 못하도록 순천만보전과 직원 두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는 기사도 있다. 작은 하천에 많은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조금씩 주의가 바깥으로 향했다. 그것은 그저 자기를 잊은 상태가 아니라 더 널찍한 정신적 행위가 가능해진 것이다. 아이리스 머독의 새 일화를 두고 영문학자 일레인 스캐리가 내린 해석인데, ‘널찍한’이라는 말이 재미있다. 머독이 그린 의식의 변화가 스캐리에게서 공간의 확장이 된다. “자기를 보호하는 데 봉사하던 모든 공간이 이제 자유롭게 다른 무언가를 위해 봉사한다.”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의 이 대목은 새를 지키거나 글로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행위를 설명해준다. 그것은 세계 안에 있는 아름다움의 한 조각을 보호하거나, 새로운 대상을 만들어서 보충하는 행위다. 둘 중에서 보통 후자가 창조 행위로 높이 평가되지만 스캐리는 정의로움의 관점에서 보충과 보호는 동등하다고 말한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두 학자의 책을 꺼내 보면서 주말여행과 평일노동의 관계를 다시 이해했다. 주말여행에서 아름다움을 만나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토요일이 지나가면 일요일이 오고, 그다음에 월요일이 온다는 사실은 굳건하다. 월요일에 사무실로 돌아가면 순정한 노동을 투입해야 할 교정지가 쌓여 있는 현실 속에서 주말여행은 평일노동을 버틸 땔감 아닌가. 그런데 아름다움의 경험은 나만의 고민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내가 하는 일에 새 빛을 비춘다. 이렇게 알게 된 것을 글로 써서 나누고 지금 편집하고 있는 책에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신새벽 민음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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