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콩글리시(포지티브)로 말해" [달곰한 우리말]
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필자는 외국어나 제2언어로 쓰이는 한국어를 주로 연구한다. 그래서 한국어가 신기하게 사용되는 모습을 보곤 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삶 속에서 쓰이다보니, 그들의 한국어 구사가 여러 양상을 갖게 된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이주 배경의 아이가 몇 달 지나 모국어를 하는 중에 한국말이 끼어들거나, 한인 동포들이 가족과 친구에게 숱한 한국어 단어를 집어넣어 가며 대화를 이어가는 경우 등이다. 유창한 발음을 두고 'chicken'도 '치.킨.'으로 똑똑 끊어 한국식으로 말한다. 그래야 맛있는 한국식 치킨을 가리킬 수 있으니까.
한국어는 이 언어를 사이에 둔 이들이 쌓아온 삶의 '레퍼토리'를 조화롭게 연결한다. 레퍼토리라고 하면 노랫가락이 먼저 생각나겠지만, 언어학에서 레퍼토리는 특정 언어 공동체나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언어적 변이형의 총체를 뜻한다. 개인이 구사하는 여러 언어나 지역 방언도 레퍼토리이고, 누군가를 만날 때 말을 적당하게 변형하는 것도 레퍼토리다. 외국인 친구를 만났을 때 그 나라 말로 인사를 해 주는 것, 다른 세대가 쓰는 단어가 어색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 그런 것이 레퍼토리의 조화로운 연결이다.
과거에 '콩글리시'는 말 그대로 '나쁜 것'이었다. 겨레말인 한국어를 망친다하여 부끄러운 일이라 했고, 영어를 쓰는 '콧대 높은 분'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영어를 쓰니 국제 망신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콩글리시(네거티브)'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지금은 다른 의미에서 재해석되고 있다. 미국의 어느 대학 신문에서 한 기고자는 한국계로서 자신의 성장 과정을 추억하면서 이민 후 1년 뒤, 자기 동생이 화장실의 열린 문틈으로 "Umma, I'm DDONGing!"이라고 콩글리시로 외친 문장을 기억해 낸다. 그러면서 '디아스포라 아이들은 타고난 신조어의 마스터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에게 누적된 레퍼토리, 그 레퍼토리를 꺼내는 것은 '부족하거나, 부정적이거나,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소중한 자원이자 '창의적이고 고유하며 번뜩이는, 그리고 나와 세계를 더 풍부하게 연결시켜 주는 것'으로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세상도 그러한 때가 되었다. 그러니까 콩글리시(포지티브)도 괜찮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주변의 이주자들이 조금은 낯선 한국어로 말을 꺼낼 때 더불어 소통하며 내 레퍼토리를 달곰하게 넓혀 보는 것도 좋겠다.

강남욱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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