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여러분 잘못이 아닙니다”…세월호 생존자 울린 한마디

■ 세월호 생존자들 국가배상 소송 제기… 1심 '각하'
2021년 4월 세월호 참사 7주기를 앞두고 제주도 지역 세월호 생존자 15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2015년 3월 마련된 '세월호피해지원법'에 따라 국가로부터 배·보상금을 받았지만 당시 배·보상금 신청 기간이 '법 시행일로 6개월 이내'로 짧아 배·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배·보상금을 받은 뒤 나타난 병증도 구제받지 못했습니다.
재판이 시작된 지 2년째인 2023년엔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정밀 감정하기 위한 신체 감정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재판부가 "원고들의 후유장해와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한 별도 감정이 필요하다"는 정부 측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신체 감정 절차가 진행되자 제주를 떠날 수 없었던 세월호 생존자 9명은 소송을 중도 포기했습니다.

2023년 5월 소송을 계속 진행한 생존자 6명이 받은 신체 감정 결과에는 '감정일로부터 향후 5년간 추가 치료가 필요하고 치료가 끝날 시점에 재판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5년의 치료 기간 28%의 노동능력이 상실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제주 세월호 생존자 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에서는 소송 요건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원고 각하’ 결정받았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생존자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어 2015년과 2016년에 걸쳐 세월호 피해자지원법에 따라 이미 보상금을 받았기 때문에 재판을 청구할 수 없다면서 "생존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예상 불가능한 후유장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생존자들을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는 "생존자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예상할 수 있는 후유장해였지만 지속 기간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에 피해자로부터 받은 동의서 한 장 내밀며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는 피고 대한민국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 주체인 국가가 정말 맞는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된다"고 항변했습니다.

■ “지금도 악몽이 떠올라”…10년째 이어진 고통
이후, 생존자 측은 항소를 제기했습니다.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민사부는 재판 진행 중, 당사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소송 원고 중 한 명인 세월호 생존자 윤길옥 씨는 항소심 재판에 출석해 세월호 사건 당시 딸이 학교에 다니다가 아빠가 사고가 난 걸 보고 학교를 못 다녔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과 전력 때문에 직장에 취업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도 털어놓았습니다.

또 다른 생존자인 강봉길 씨는 화물차 기사였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엔 운전 일을 하지 못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면서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자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다른 생존자 김동수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건 이후 트라우마밖에 남은 것이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6명의 생존자 모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도 받았습니다.

■ 2심 “당시 예견할 수 없던 후발 손해”…국가 책임 인정
1심 선고가 내려진 지 1년 4개월 만인 오늘(19일) 세월호 생존자와 담당 변호사는 항소심 법정을 직접 찾아 선고를 지켜봤습니다. 재판장인 송오섭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송 부장판사는 생존자 6명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국가가 추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생존 피해자들은 사고 직후 극단적 상황에서 자신들의 손해 범위를 인식하거나 예견하기 어려웠으며, 배상 동의 당시 예상할 수 없던 후발 손해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당시 배상금 동의는 ‘당시 예측 가능한 손해’에 국한된 것이라며,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장기화 등 새로 드러난 후발 손해까지 그 효력이 미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세월호 생존자들이 겪고 있는 장기적 정신적 고통을 처음으로 법원이 ‘새로운 손해’로 인정한 결정입니다.
국가는 생존자들의 청구가 소멸시효가 지나 이미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후발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그 손해가 현실적으로 드러난 시점에 성립한다”고 보아, 소멸시효는 훨씬 나중에 시작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2021년 제기된 이번 소송은 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는 결론입니다.
재판부는 생존자 6명에게 장기화된 PTSD로 인한 노동능력 상실, 치료 필요성 등을 고려해 최대 8천여만 원이 넘는 금액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국가는 책임 제한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공무원의 과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공동 불법행위로 평가해야 한다” 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여러분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법정 울린 판결
판결 선고 마지막, 재판부는 생존자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며 운을 뗐습니다.
"여러분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날 여러분이 세월호에 탑승하게 된 것도, 세월호에서 쓰러져 간 많은 사람을 뒤로한 채 여러분이 그곳에서 살아남은 것도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11년여가 지나는 동안 여러분이 아직 그로 인한 후유장애로 큰 고통을 겪고 있고, 그로 인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 우리의 일상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도 여러분의 잘못이 아님을 우리 재판부는 분명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끝으로 부디 오늘의 판결이 생존 피해자 여러분이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는 큰 고통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게 되고, 우리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이 누리는 일상의 삶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여러분과 같은 공동체에서 함께 삶을 영위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재판부 부원 모두는 간절히 소망합니다."
-송오섭 판사가 제주 지역 세월호 생존자들에게 전한 당부
세월호 생존자는 법정을 나서며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드디어 누군가 말해준 것 같다”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배에 오르면 그날이 떠오르는 생존자들. “여러분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라는 재판부의 한마디, 뒤늦게나마 이들에게 건네진 첫 공식적 위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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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주 기자 (think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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