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권 vs 생계권…새벽배송 논란, 왜 진흙탕 됐나 [Deep Spot]

신현주 2025. 11. 19. 11:3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새벽배송 놓고 찬반 논란 가열
민노총·쿠팡노조, 퀵플렉서 실태 다른 해석
“82% 휴가자유 없어” vs “51% 3일 휴가”
시장규모 11.8조, 중단 땐 연간 54조 손실
택배노조 “필요 상품 위주로 새벽배송해야”
자영업자 “새벽 물건 못 받으면 영업 타격”
전문가 “사회적 대화만이 유일한 실마리”

헤럴드경제는 ‘Deep Spot(딥 스폿)’을 통해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최신 이슈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포인트를 질문하고, 이를 상세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회원전용 콘텐츠 HeralDeep(헤럴딥)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회원으로 가입하시면, ‘딥 스폿’ 기사 리스트를 통해 최신의 중요한 이슈 흐름을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쿠팡 직원이 새벽배송인 ‘로켓프레시’ 주문상품을 포장하고 있다. [쿠팡 제공]

새벽배송을 둘러싼 ‘건강권’과 ‘생계권’의 대립은 한국 노동시장을 대표하는 해묵은 주제다. 김범석 쿠팡 최고경영자(CEO)가 “‘어떻게 쿠팡 없이 살았을까’라고 말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언급했을 때부터 택배기사의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과로사로 생을 달리한 택배기사가 나올 때마다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여전히 새벽배송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그대로다. 최근에는 업체나 노동자 간 갈등이 감정적으로 격화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생산적이면서 모두를 아우르는 해결책은 없을까. 왜 새벽배송은 계속 시끄럽기만 할까.

민주노총 vs 쿠팡노조…조사결과 동일, 해석은 반대

이번 논란의 핵심은 ‘노동자들의 갈등’이라는 점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쿠팡친구노동조합(쿠팡노조)가 대척점에 섰다. 이들은 각각 택배기사의 건강권과 생계권을 주장하고 있다. 같은 직무를 수행하지만, 새벽배송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어 쿠팡 CLS 위탁영업점 소속의 퀵플렉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퀵플렉서 679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1.1시간(휴게시간 22.6분), 평균 소득은 647만3000원이었다. 평균 지출 156만5000원을 제외하면, 월평균 490만8000원의 실질 소득이 발생한다고 민주노총은 전했다.

주 5일 근무한다는 기사는 36.8%였다. 격주 주 5일제(28%)를 포함한 주 5일제 비중은 64.8%에 달했다. 주 6일 근무 비중은 28.3%로 집계됐다.

민주노총은 “퀵플렉서의 82%가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고 전했다. 운송사가 대체 기사를 구할 때 드는 비용인 ‘용차비’ 부담이 원인이었다. 민주노총 측은 “근무일, 근무시간, 배송건수 등을 통해 쿠팡 퀵플렉서 노동자의 노동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반면 쿠팡노조 측은 이번 조사 결과로 퀵플렉서의 근무 여건이 오히려 우수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반박했다. 실제 해당 조사에 따르면 3일 연속 휴가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택배기사는 51.5%였다. 휴가를 자유롭게 갈 수 없다는 응답이 많았지만, 반대로 2명 중 1명꼴로 3일 연속 휴가를 냈다는 주장이었다. 휴가 사유로는 ‘여행·휴식·여가’가 59.7%로 가장 높았다.

이는 한국물류과학기술학회가 조사한 퀵플렉서 3일 연속 휴무 비중(49%)보다 높다. CJ대한통운·로젠택배·롯데택배 등 국내 주요 6개 택배사 소속 기사 1203명에 대해 ‘업무 여건 및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택배기사들의 월평균 총수입은 516만9000원이었다. 일반적으로 100만원을 웃도는 차량유지비 등을 제외해도 퀵플렉서의 월 순수입이 높다.

밤 12시~새벽 5시 근무 금지, 현실성 없다고?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밤 12시~새벽 5시 근무 금지’의 현실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근무를 금지하면서 오전 7시까지 배송을 마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주장한다. 민주노총의 입장은 다르다. 민주노총은 근로 시간을 단순히 제한하기보다 이를 계기로 새벽배송 제도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주장한 대안은 ‘주간연속 근무제’가 대표적이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현재 새벽배송 시스템은 주간(오전 8시 반~오후 8시), 야간(저녁 9시~오전 7시) 근무조로 나뉘어 운영 중이다. 이를 오전(오전 5시~오후 3시), 오후(오후 3시~자정) 조로 재편하자는 취지다. 한선범 전국택배노조 정책국장은 “오전 조의 출근 시간이 5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야간 근로 수수료를 적용받을 수 있다”며 “이럴 경우 수입 감소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했다.

한 국장은 “새벽배송의 품목을 제한하면 노동 강도를 줄일 수 있다”면서 “손톱깎이, 옷걸이 같은 물건을 왜 꼭 새벽에 배송해야 하나. 소비자들이 진짜 아침에 필요한 것들을 위주로 새벽배송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소비자 편의와 택배기사의 건강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현대자동차가 주야 2교대 체제에서 주간연속근무제로 바꾼 대표적 경우인데, 실제 일자리 변화가 없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새벽배송 중단 땐 타격 불가피…“연간 54조 손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13년 10년간 논의 끝에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14년 연구한 결과를 살펴보면, 울산 북구 지역의 현대자동차 부품 협력업체 11곳 중 5곳의 직원 임금이 교대제 전환 뒤 10% 이상 줄었다.

이 가운데 임금이 늘어난 곳은 1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4곳은 변화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10곳은 교대제 전환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든 데 따른 물량 보전을 단위 시간당 노동 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정진영 쿠팡노조 위원장은 “주간·야간 근로의 급여 차이가 한 달에 최소 40만원”이라며 “건강권을 지켜야 하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임금 수준을 보전하는 것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새벽배송 시장 자체의 타격도 클 수밖에 없다.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2015년 4000억원에서 2024년 11조8000억원까지 성장했다. 국내 최대 물류산업 학회인 한국로지스틱스학회는 최근 새벽배송과 주 7일 배송이 중단되면 택배 주문량이 약 4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손실은 연간 54조3000억원으로 분석됐다. 세부적으로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 매출이 33조2000억원, 소상공인 매출이 18조3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봤다. 택배업계도 일자리 감소 등으로 2조8000억원대 손실을 볼 것이라고 학회는 전했다.

소비자 불만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새벽배송이 가능한 물품을 일부 신선식품 등으로 제한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새벽배송 주문은) 맞벌이 가정에서 필요한 생활용품이 될 수도, 전날 갑자기 필요한 자녀의 준비물이 될 수도 있다”며 “새벽배송 물품을 정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고 반박했다.

새벽배송으로 받은 물품으로 가게를 운영한다는 한 식당주인은 “새벽에 물건을 못 받으면 직접 구매해야 하는 수고와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결국 식당 운영시간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며 “물류망을 갖춘 대형 프랜차이즈보다 1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가게들의 매출이 눈에 띄게 감소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시 강서구 CJ대한통운 터미널의 모습 [연합]

회사·정부는 어디에…“사회적 대화도 산 넘어 산”

이번 논란의 핵심인 ‘노동자 간 갈등’은 가장 큰 맹점이다. 근로 체계를 구축한 회사의 입장 역시 테이블 위에 올라오지 않는다. 택배기사 과로사로 목소리를 높였던 정부는 중재에 소극적이다.

민주노총 출신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국감 자리에서 “(새벽배송 제한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유보적 견해를 내놨다. 국민의 대표라는 현역 국회의원들은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의 관련 토론은 화제였지만, 실질적인 대책 마련보다 정치적 공방에 가까웠다. 여러 차례 새벽배송 제도 개선 논의가 촉발됐지만, 건설적 대화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다.

노동자들의 갈등은 정치적으로 비화했다. 쿠팡노조는 지난 7일 민주노총의 새벽배송 금지 주장에 대해 ‘민주노총 탈퇴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쿠팡노조는 성명을 통해 “지금의 새벽배송 금지 주장은 쿠팡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쿠팡노조는 2023년 정치적 활동이 아닌 조합원을 위한 실질 활동에 집중하겠다며 조합원 93% 찬성으로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대화’가 유일한 실마리라고 조언한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해관계가 다른 두 당사자가 겨루기만 하며 정책을 끌어가는 것은 많은 갈등 비용을 유발한다”며 “먼저 이런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심야 근로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너무 자명하기 때문에 심야 근로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논의되어야 한다”면서 “택배기사의 임금, 소비자의 편의를 주장하는 쪽도 노동자의 희생을 당연시하지 않는 선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새벽배송은 임금과 근로 환경이 함께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며 “현재 민주노총의 주장은 다소 극단적이기 때문에 기업의 이익, 소비자 편익을 모두 고려한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현주·박연수 기자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