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LPGA 시즌 마지막 페이지'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골프한국] 한 해의 LPGA투어는 마치 한 권의 장대한 소설을 닮았다. 봄의 첫 티샷에서 시작한 긴 문장이 여름의 굴곡을 지나고, 가을의 침착한 리듬 속에서 성숙한다. 그리고 20~24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리츠칼트 골프리조트 티뷰론 골프클럽에서 대미를 장식한다.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상위 60명의 선수만 초대장을 받아 400만 달러의 우승 상금을 놓고 시즌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골프 제전이다.
CME그룹은 미국 시카고에 있는 북미 최대의 파생상품 거래소(Chicago Mercantile Exchange) 집단이자 이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든든한 스폰서 덕에 이 대회 총상금이 지난해부터 5년 전보다 120% 늘어난 1100만 달러로 뛰었다. 우승 상금은 여자골프 사상 최대인 400만 달러(약 58억 3000만원), 꼴찌도 약 8000만원을 받는다.
이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모두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지난해 태국의 지노 티티쿤은 마지막 라운드 17번 홀에서 이글, 마지막 18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 기적 같은 한 타 승리로 400만 달러를 품었다. 하지만 그에게 돈보다 더 선명하게 남은 것은 마지막 두 홀에서의 몰입이었을 것이다. 모든 감각이 한 점으로 모이는 경험, 골퍼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그 짜릿한 순간의 호흡을 지노 티티쿤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올해 티티쿤은 세계랭킹 1위로 다시 네이플스로 돌아왔다. 최근 7개 대회에서 톱10 다섯 번과 두 번의 우승을 기록한 흐름은 그의 자신감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특히 티뷰론에서는 한 번도 톱10 밖으로 밀린 적이 없다.
골프가 때로 돌고 도는 순환이라지만 티티쿤의 컨디션은 순환의 고리를 넘어 확신의 단계에 와 있는 듯하다. 티티쿤이 고진영 이후 두 번째 2연패에 성공할지 주목되는 이유다.
넬리 코다는 수없이 문을 두드렸으나 열리지 않았던 그 '한 번'을 갈구하고, 조용한 시즌을 보낸 리디아 고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안정감을 유지하며 기회를 엿볼 것이다. 그는 이 대회에서 이미 두 번이나 우승했고 작년엔 3위에 올랐다.
호주교포 이민지는 올 시즌 이미 메이저(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우승의 영광을 안았으나 투어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름을 새기고 싶을 것이다. 시즌 첫 대회를 비롯해 이미 두 번의 우승을 거둬 신인상을 확정한 일본의 야마시타 미유 역시 LPGA투어 시즌 첫 페이지에 이어 마지막 페이지도 장식, 올해의 선수까지 탐낼 만하다.
한국 선수로는 김효주부터 최혜진 김세영 김아림 이소미 임진희 유해란 고진영 이미향까지 9명이 출전한다. 신인 윤이나는 이 대회 최종일 5언더파 65타 활약으로 8언더파 공동 21위에 올랐으나 CME랭킹이 제자리에 머문 63위로 출전권을 놓쳤고 신지은은 한 주 사이 랭킹이 58위에서 61위로 밀렸다.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은 그동안 한국 선수와 인연이 많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6년 중 한국 선수가 네 번 우승했다. 2019년 김세영, 2020·2021년 고진영이 우승했고 2023년에는 양희영이 대박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 대회는 많은 시즌 타이틀의 향방도 결정한다. 상금왕, 베어 트로피, 올해의 선수상까지. 숫자들이 서로를 추월하고 다시 추월당하는 포인트 계산의 축제이기도 하다.
이민지는 상금 선두를 달리고 티티쿤은 최저 타수상과 올해의 선수상 부문에서 앞서 있다. 야마시타 미유는 신인상과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에 노리는 욕심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골프의 매력은 언제나 '숫자 저 너머'에 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비로소 시즌을 이해하게 되고, 누군가는 스스로를 용서하게 되며, 또 누군가는 다가올 시즌의 희망을 발견할 것이다. 때때로 그 한 걸음 한 걸음 속에서 큰 상금보다 더 큰 의미를 맛볼 것이다.
플로리다의 늦가을 햇빛은 유난히 길고 낮다고 한다. 저녁으로 기울어가는 빛 아래 티부론의 잔디는 얇은 금실처럼 빛나고 그 위를 걸어 들어오는 60명의 발걸음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 같은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이 한 주가 내 이야기를 완성한다.'라는 마음을.
선수들은 늘 자신에게 되묻는다. '결과를 쫓을 것인가, 과정에 머물 것인가.' 그러나 시즌의 마지막만큼은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하나로 포개진다. 과정의 갈무리가 곧 결과가 되고, 그 결과는 다시 다음 시즌의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의 마지막 라운드. 언제나 어렵고 그래서 언제나 아름다운 한 해의 마지막 페이지가 어떻게 꾸며질지 기대된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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