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석유화학 ‘설비 통합’ 눈앞에…중국 ‘공급과잉’이 부른 위기 벗어날까[경제밥도둑]

오동욱 기자 2025. 11. 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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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 사업재편안 최종 조율 단계
중, 러시아·이란 원유 수입에 에틸렌 가격경쟁력 높아져
한국, 고부가가치 전환 목표에 업계 “대출 확장 등 지원을”
충남 서산시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롯데케미칼의 석유화학 설비 모습. 롯데케미칼 제공

국내 대표 석유화학 기업인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에틸렌 생산시설 설비 통합을 골자로 하는 사업재편안이 최종 조율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석화 기업들이 지난 8월 정부와 구조조정 자율협약을 맺은 뒤 ‘1호’ 사업재편을 이룰 수 있을지 관심이 몰린다.

18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충남 서산시 대산석유화학단지의 석화 설비를 통폐합하는 내용의 사업재편안을 놓고 최종 조율을 거치고 있다. 양사는 조율을 마친 뒤 산업통상부에 최종 재편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재편안은 롯데케미칼이 대산 공장 나프타분해설비(NCC)를 현물 출자해 HD현대케미칼에 이전·통합하고, HD현대케미칼이 현금 출자 방식으로 합작법인을 세워 양사 지분을 재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지난 8월20일 NCC 통폐합을 통한 공급 감축안을 골자로 한 석화 산업 구조개편을 발표한 뒤 나타난 석화 기업 간 자율 사업재편의 첫 사례다.

한국 석화 산업 위기와 중국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에쓰오일 공장에 전시된 나프타의 모습. 나프타분해설비(NCC)는 나프타를 고온에서 분해해 에틸렌, 프로필렌과 같은 화학산업의 원료를 생산한다. 오동욱 기자

한국 석화 산업이 사업재편을 할 정도로 위기에 처한 것은 에틸렌 등 화학제품 원료의 전 세계적 공급 과잉 상황에서 비롯됐다. 한국화학산업협회에 따르면 국제 에틸렌 생산능력은 수요를 꾸준히 웃돌았다. 글로벌 에틸렌 생산능력은 2021년 2억301만t으로 수요량 1억7294만t을 3007만t 초과했는데, 올해는 이 격차가 4773만t(생산능력 2억3258만t·수요 1억8485만t)으로 커졌다.

업계는 중국이 2020년 “2025년 100% 자급”을 목표로 한 생산설비 증설을 주요인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그간 에틸렌을 수요(에틸렌 기반 화합물 포함)의 절반 정도 생산하고 나머지는 한국 등에서 수입으로 충당했는데, 이 구조가 바뀐 것이다. 실제 중국의 에틸렌 자급률(생산능력 기준)은 2015~2020년에는 50%대에 그쳤지만 2021년 71.5%로 급증했다. 2022년 자급률은 80.1%로, 에틸렌 생산능력을 약 4500만t으로 확대하며 미국(4300만t)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부상했다.

대규모 증설은 전 세계 공급 과잉으로 이어졌다. 특히 한국 등 에틸렌 수출국은 ‘팔 곳’을 잃은 데 더해, 중국이 내수에서 소화하지 못한 에틸렌 등을 해외로 ‘밀어내는 것’도 방어해야 했다.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 에틸렌의 가격경쟁력을 높였다. 러시아가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이 러시아 원유에 제재를 가하자 이를 중국에 값싸게 공급했기 때문이다. 업계는 중국이 사들인 러시아산 원유가 한국 물량 중 70~72%를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보다 배럴당 10~20달러가량 저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중동산 원유 가격의 기준선 격인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14일 기준 배럴당 65달러 수준인데, 이 경우 러시아 원유는 배럴당 45~55달러 수준이 된다.

중국은 또 다른 제재 대상인 이란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하는 모습도 보인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은 지난달 9일(현지시간) 이란 원유 수출에 연루된 50여개 기업·개인·선박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제재했다. 이 리스트에는 중국 원유 수입 중 9%를 처리하는 업체도 포함됐다. 업계는 이란 원유가가 원래도 배럴당 2~3달러 정도 더 저렴했는데, 제재로 인해 더 값싸질 가능성도 제기했다.

정부, 위기관리 ‘첫 단추’ 잘 꿸 수 있을까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8월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사업재편 자율협약식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석화 산업 위기관리 방안으로 내건 것은 크게 ‘통폐합을 통한 공급 감축’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의 전환’ 두 가지다. 석화 기업 간 통폐합을 통해 국내 공급 과잉을 완화하고 근본적으로 기업이 고품질 제품을 생산토록 ‘체질 개선’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구체적인 NCC 감축 목표는 270만~370만t으로, 국내 전체 나프타(에틸렌 생산을 위한 원료) 생산량의 18~25%에 해당하는 양이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통합으로 정부의 위기 타개책인 ‘공급 감축’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석화 업계는 관계 부처가 발표할 지원 방안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특히 자산 가치 하락을 보전할 회계적 지원 여부에 관심을 보인다. 생산능력을 줄이면 일정 설비는 사실상 유휴 설비가 되고, 이는 기업의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한 석화·정유업계 관계자는 “자산 가치가 줄어들면 자기 자본금이 감소하면서 부채 비율이 급격하게 올라가게 되고, 기업의 신용도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부의 회계적·재무적 지원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묘책이 나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재정적 지원 수준에도 관심이 몰린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재 석화기업 전반에 적자가 누적된 상황”이라며 “기업으로선 정부 방침대로 ‘고부가가치 전환’을 하려면 추가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자금 확보를 위해 대출 한도를 확장하는 것과 같은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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