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공세·美관세에 “팔수록 손해”… 80년 철강 강소기업도 두손 들어
포항 철강 산단, 이젠 폐업 천지

한국은 ‘산업의 쌀’이라는 철강의 세계 6대(大) 생산국이다. 1인당 철강재 소비량은 독보적 세계 1위(923.5㎏)다.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 중심 수출 경제를 철강업이 지탱해 왔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 포항은 철강 기업들의 폐업, 폐쇄가 속출해 1973년 포항제철소가 쇳물을 처음 뿜어낸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공장이 멈춘 건 중견·중소 철강사만의 현실이 아니다. 철강 도시 포항을 상징하는 포스코는 지난해 포항 1제강 공장, 1선재 공장을 잇따라 폐쇄했다. 조업 중단이 아닌 폐쇄다. 국내 2위 철강사인 현대제철도 지난 6월 포항 2공장이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포스코 1제강 공장에서 만난 김진일(59) 전 부공장장은 “2010년대 후반 적자였던 공장을 흑자로 바꾸고, 2022년 태풍 힌남노 때도 공장에 가득 찬 물을 빼내면서 살려냈는데 외부 요인 때문에 문을 닫게 됐다”고 말했다. 정년을 앞둔 김씨는 작년 7월 공장 폐쇄 이후 1년째 이곳의 유일한 근무자다. 그의 임무는 먼지 청소와 빗물 빼내기다.

◇위기의 철강 산단, 공장 폐쇄 속출
포항 산단은 부지 약 400만평에 포스코를 중심으로 356사가 입주한 국내 최대 철강 산단이다. 산단 내 도로 300m를 걷는 동안 목격한 폐업 공장만 3곳이었다. ‘당분간 회사 사정으로 운영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을 입구에 걸고 바리케이드를 치거나, 텅 빈 공장 입구를 그대로 열어놓은 곳도 있었다. 지난 9월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다른 기업에 매각된 78년 역사의 철강 중소기업 미주제강은 운이 좋은 사례로 꼽힌다. 현장에서 만난 한 산단 직원은 “폐업은 했지만 매각할 곳이 마땅치 않다보니 그냥 공장 문 닫아놓고 매각을 기다리는 곳이 허다하다”고 했다.
고로에서 끊임없이 쇳물이 쏟아졌던 이곳은 2020년부터 활기를 잃었다. 그해 602만t이었던 중국산 철강 수입량은 지난해 880만t으로 46% 급증했다. 육안으로는 구별할 수 없는 저가 중국산의 범람은 1t당 120만원이었던 열연 강판 가격을 30% 넘게 하락한 80만원대 초반으로 끌어내렸다.
중국산이 득세하자 국내 업체들이 설 자리는 점차 좁아졌다. 국내 조강(쇳물) 생산량은 2021년 7042만t을 정점으로 매년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생산량은 6365만t에 그쳤고 올해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산단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해도 경기가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에 재고를 쌓기도 했지만, 이젠 라인을 절반만 돌리거나 공장을 아예 멈춰 세운 곳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협력 업체들까지 줄줄이 타격
포스코를 필두로 한 대기업의 부진은 철강 생태계에 연쇄적으로 충격을 주고 있다. 철강 원재료인 철 스크랩을 납품해 온 한 업체 관계자는 “제강사가 가동률을 낮추니 수주량도 줄고 구매 단가까지 낮아져 힘겹다”고 했다. 철 스크랩을 실어 날랐다는 한 화물차 기사는 “한 달에 20차례 일감을 날랐는데 올해는 월 한 번으로 줄었다”며 “제품을 나른 다음에는 고철을 담고 돌아와야 하는데 요새는 빈 차로 다니고 있다”고 했다.
철강 산업은 안팎에서 ‘새우 등’ 처지다. 국내에선 산업용 전기료 폭등과 급진적인 친환경 전환에 따른 비용 부담, 건설 경기 추락에 따른 판로 축소로 신음하고 있다. 밖에선 세계 1위 철강 생산국 중국에 치이고, 50% 고율 관세로 자국 철강업을 부흥시키려는 미국에 차이는 신세다.
50%인 초고율 대미 철강 관세는 최근 한미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지만 요지부동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관세를 부과한 올 3월부터 12월까지 양 사가 미 정부에 내야 할 관세는 총 2억8140만달러(약 4100억원)에 이른다.
포항을 지탱하던 철강업 부진 여파로 이 도시의 미래 먹거리도 흔들리고 있다. 철강 산단에서 차로 20분 거리인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는 이차전지 등 미래 먹거리 조성을 목표로 2009년 착공했지만, 부지 대부분이 텅 비어 있었다. 포스코퓨처엠이 1조2000억원 규모의 전구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가 중단하는 등 현지 기업들이 긴축 경영에 들어간 여파다. 포항시에 따르면, 입주 계약을 맺은 기업 41곳 가운데 13곳만 공장을 지었다. 당초 6만 일자리를 예상했지만 현재 고용 인원은 300여 명뿐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매일 새벽 수매한 여수 갈치, 가시 완벽 제거해 집까지 배송
- 따뜻하다 못해 후끈한 열선 내장 ‘발열 장갑’ 조선몰 단독 특가
- 60년 쓴 일기 중 54년 간은 영어로… “손 꼽히는 조선 근세 인물” 윤치호
- 고가 기능 다 갖추고 전기료는 절반으로 낮춰, 13만원 대 초특가 비데 공구
- 쿠팡 개인정보 대량 유출, 피해 막기 위해 내 폰에 하면 좋은 7가지 조치
- ‘홍명보호’ 최악은 피했지만 만만하지 않다... 멕시코·남아공은 어떤 팀?
- 최악의 상대 피한 홍명보호... 멕시코·남아공과 같은 조에
- 쌍동가리, 용치놀래기, 학꽁치회… 남해의 겨울바다 털어먹기
- ‘아열대 본능’에 요즘 꽃 피는 나무...조조가 이 열매 좋아했대요
- ‘발트해의 고립된 섬’ 칼리닌그라드를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