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74> 탕(湯)과 뚝배기
- 우리 밥상문화 핵심 국·탕·찌개
- 기원전 6000년 시작됐다는 說
- 뚝배기는 고려 때부터 활용 기록
- 온기 오래 지속돼 국 요리 제격
- 돼지국밥·물메기탕·멸치찌개 등
- 지역 따라 무궁무진 국물음식
- 깊고 진한 고유의 맛 이어온 비결
어쩌면 이렇게 깊고 진한 맛을 낼까? 뜨거우면서도 시원하고 짙으면서도 개운하다. 묵직하면서도 활달하고 얼큰하면서도 담박하다. 한 술 한 술 국물을 뜰 때마다 입안이 풍성해지고, 속이 뜨겁게 환해진다. 찬 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뜨거운 뚝배기 한 사발 들이켜는 장면이다.
뚝배기 안에 어떤 국물이 들어가든 상관없다. 고깃국물이든 생선 국물이든 이 뚝배기 안에서는 모든 탕국이 뜨거우면서 시원하고, 진하면서도 개운하다. 한 술 한 술에 속이 환하게 풀리고, 한 뚝배기 들이켜고 나면 마음마저 넉넉해지는 것이다.

▮국과 밥이 기본인 탕반문화
우리나라 밥상 문화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 첫째는 쌀을 주식으로 해서 밥을 지어 먹는다는 점과 밥과 더불어 국을 밥상의 중심부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밥상 맨 앞에 밥과 국이 자리하고, 밥을 먹기 전 국물 한 숟가락으로 입을 적시는 것으로 식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주식인 밥은 분식(粉食)과 달리 쌀 보리 콩 등의 거친 알곡으로 짓는 입식(粒食)이기에, 밥의 소화를 돕고 밥과 반찬 등을 먹은 후 입안을 가시는 역할을 국물 음식이 했다. 국 없이는 식사를 못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반상 문화의 주요한 구성 요소였던 것.
이 때문에 한식 반상(飯床)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국과 찌개’ 등의 ‘국물을 끓여내는 요리’인 ‘탕(湯)’이었다. 우리네 밥상에서 ‘탕’으로 끓여내는 조리 문화는 관습적이라 할 정도로 아주 오래된 음식문화이다. 기원전 60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나올 만큼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중요한 조리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탕반(湯飯)’. 탕반은 ‘국’과 ‘밥’을 이르는 말이다. 음식 고유의 이름으로는 ‘국밥’을 뜻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 ‘탕반문화’의 발달은 우리 식문화가 ‘쌀 문화권’ 중에서도 ‘습식(濕式)의 문화권’에 속해 있기에 그러하다. 이런 탕 문화와 오래도록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우리 고유의 그릇인 뚝배기이다. 뚝배기는 고려시대 때부터 활용되었다고 할 정도로 우리 음식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식기로, 국물 음식이 발달한 한식 밥상에 있어서 아주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그릇이기도 하다. 뚝배기는 불에 강한 데다가 직접 불 위에 올려놓고 음식을 끓이면서 먹을 수 있어서 보온성이 좋고, 일단 끓고 나면 그 열이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국물 음식에 제격이다.

‘탕’으로 범용해서 부르는 국물 음식에는 국 탕 찌개 등이 있는데, 요즘 구분으로는 대략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겠다. 우선 ‘국’은 우리 한식 반상에 밥과 함께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이다. 채소 고기 생선 등의 식재료에 물을 넉넉하게 부어 간장 된장 액젓 등의 장류를 풀어 간을 맞춰 끓여낸다. 밥에 맞춰 조화를 이뤄야 하기에 슴슴한 국물 위주의 음식이다.
‘탕(湯)’은 원래 국의 높임말이었으나 지금은 국과 다른 형태의 국물 음식으로 분류하고 있다. 국보다는 국물이 적으며 오래 끓여내기에 그 맛이 진하다. 취향에 따라 소금이나 간장 등으로 간을 맞추고, 파 고추 마늘 등 양념을 추가해 먹기도 한다. 주로 고기를 조리해 내는 육탕(肉湯)과 해산물 등을 식재료로 하는 어탕(魚湯), 채소를 넣어 만든 소탕(素湯) 등이 있다.
‘찌개’는 고기나 생선 채소 등의 식재료에 간장 된장 고추장 등으로 간을 맞추어 바특하게 끓여낸 음식이다. 주로 국물 속 건더기를 먹을 요량이기에 국물에 비해 건더기가 많고, 국물은 자작하여 맛이 진하며, 다른 국물 음식에 비해 간이 세다. 각자의 그릇에 담아내는 국 탕과 달리 찌개는 한 그릇에 담아놓고 함께 먹거나 개개인의 그릇에 따로 덜어 먹는다.
이들 국물 요리는 뚝배기에 담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여러 해장국 종류나 식으면 누린내나 비린내가 나는 국물 요리, 밥을 말아내거나 끓여낸 국밥류 등이다. 모두 파르르 국물 째 끓고 있는 상태에서 밥상에 올라와야 제맛을 내는 음식들이다. 그러하기에 이들에게 뚝배기라는 그릇은 필수적이다. 그릇의 보온성이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뚝배기는 천천히 열을 올려 익히거나, 오랜 시간 동안 푹 고아야 하는 요리에 적합하다. 그래서 찌개는 오래 끓여낼수록 깊은 맛을 내고, 탕은 탕의 열기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가 있으며, 조림은 건더기 안에 양념이 속속들이 고루 배게 한다.
▮탕음식을 더 맛깔나게 하는 뚝배기

뚝배기에 담아야 맛있는 대표적인 국물 음식은 설렁탕 갈비탕 곰탕 육개장 해장국 삼계탕 추어탕 등이 있겠다. 국밥 종류도 뚝배기와 잘 어울리는데, 소머리국밥 선짓국밥 순대국밥 돼지국밥 콩나물국밥 등이 있겠다.
지역에 따라 ‘뚝배기보다 장맛’인 음식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도 호감이 가는 음식이 꽤 있다. 오래 끓여낸 돼짓국에 고사리나 모자반을 넣고 뭉근하게 끓여낸 제주도의 고사리 해장국과 몸국, 돼지의 갈비 부위 중 가장 귀한 접짝뼈로 끓여 결혼 첫날의 신부에게만 먹였던 접짝뼛국, 마산 거제 통영 등 해안 지역의 생선국인 물메기탕 탱수국 쑤기미탕, 남해의 멸치찌개, 하동의 참게 가리장, 국과 밥을 따로 내는 대구의 따로국밥, 포항의 고래국밥, 울릉도의 오징어 먹물을 삭혀서 지져낸 오징어누런창찌개, 목포를 중심으로 삭힌 홍어의 애와 보리싹 등으로 끓여낸 홍어앳국, 민어 한 마리가 통째 들어가는 민어탕, 여수 순천의 짱뚱어탕, 나주의 나주곰탕, 완도 지역의 해조류로 끓인 매생이국, 전주의 콩나물해장국, 부안의 백합탕, 금강을 중심으로 민물고기로 끓여낸 어탕, 다슬기로 조리한 올갱이국, 금산 인삼어죽, 서산 태안의 말린 우럭에 젓국으로 국물을 낸 우럭젓국과 게장 국물에 김치를 담가 먹고 남은 국물로 국을 끓여 먹는 게국지, 못난이 생선인 도치의 알을 이용한 속초 고성의 도치알탕, 정선의 메밀국죽, 인제의 황탯국, 강릉 양양의 자연산 홍합으로 끓인 섭국 등이 있다.
부산 음식 또한 뚝배기에 담아야 맛있는 음식들이 꽤 많다. 우선 돼지국밥. 가마솥에서 슬슬 끓어대는 국물을, 뚝배기에 밥을 담아 여러 번의 토렴을 한 뒤, 뚝배기를 다 비울 때까지 뜨끈한 국물로 해장하고, 소주 한 잔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고기를 안주로 먹고, 잘 데워진 국밥으로 식사까지 하는 것이다. 복국도 그렇고 생선 맑은탕, 아귀탕, 바다 생선으로 추어탕식으로 끓여낸 바다 추어탕 등도 그렇다.
이처럼 한식 상차림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 중 하나인 국물 음식, 탕(湯). 계절에 따라 지역에 따라 식재료가 서로 다르고, 국물에 넣는 장이나 양념 또한 다채롭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 음식문화에서 탕의 역할과 기능은 아주 폭 넓고 깊으며 다양하며 유의미하다.

그리고 이 탕 음식을 더욱 오래도록 맛깔스럽게 담아내는 그릇이 뚝배기이다. 각각의 고유한 국물 음식의 정체성을 품고 그 맛이 떨어지거나 왜곡되지 않게 오롯하게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뚝배기이다. 특히 추운 겨울이 본격적일 때 더욱 뜨겁게 다가오는 뚝배기의 효용성은, 우리 한식 밥상에서 어느 것보다 더 중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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