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생대구탕

전골냄비에 생대구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맑게 끓인 탕이다. 입동이 지나고 나니 자연스레 점심 메뉴로 생대구탕이 간택되었다.
다섯 명이 둘러앉아 먹는 자리, 네 명은 몇 번의 겸상으로 식사 자리가 낯설지 않았고, 오늘의 물주인 한 명과는 첫 식사 자리인지라 탕을 제일 먼저 뜰 수 있도록 국자를 양보했다. 그도 첫 국자여서 신경이 쓰였는지 큰 건더기는 두고 국물 몇 번, 숨 죽은 채소 조금, 부서진 살점 몇 개를 담는다.
겨울 눈이 가슴팍까지 푹푹 쌓이던 때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부석면 노곡리 과수원집의 겨울은 엄마가 끓이시던 동태탕이 가장 큰 음식 호사였다. 이 동태탕으로 말하자면 달고 시원한 겨울 무와 배추를 넣고 마늘, 생강, 파를 넣어 진하게, 거기에다 매운 고춧가루를 확 풀어 시뻘겋고 맵게 끓인 탕이었다. 그런 탕을 아버지는 매운맛이 싱겁다며 청양 고춧가루를 더 넣어 드시기까지 했었다.
그 당시 해산물은 겨울이 되어야만 맛보았던 것 같다. 기억을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동태탕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는 부석 오일장이 열릴 때면 노곡에서 오리(2㎞)정도 떨어진 길을 걸어서 왕복하셨다. 딸린 자식들이 넷이나 되시니, 그 입들 때문이라도 엄마는 겨울 눈 녹아 진창인 길을 걸으셨다. 그렇게 오일장을 다녀오신 엄마가 끓여내던 동태탕은 특별했다.
특별했다는 말보다 이상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동태탕을 끓여내던 양은솥은 여섯 식구가 먹을 만큼 보다 더 큰, 한 열 식구가 먹을 만큼 큰 솥이었다. 그 솥이 방 안으로 들어와 작고 둥근 양은 밥상, 정 중앙에 안착하면 아버지부터 순서대로 배식받듯 탕을 한 그릇씩 받았다. 그렇게 받고 나면 그릇 속 내용물을 확인할 차례. 동태 눈알이 몇 개나 나왔다며 좋아하는 동생과 내장이 나왔다며 슬쩍 밀어내는 동생까지 우리들의 그릇 속에는 동태 머리와 내장들로 가득했다. 그래도 꼬리가 나온 동생은 행운 복권 당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특별히 이상한 동태탕. 우리 가족은 몸통 없는, 살 없는 동태탕만 먹었던 것이었다.
엄마는 장날 생선 장수에게서 동태 살만 있는 가운데 토막들을 팔고 남은 부산물을 잔뜩 사 오셨던 거였다. 살 없는 머리와 알과 이리 없이 남은 내장들, 그래도 간간이 내장에 섞여 있던 알과 이리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맞다. 거기에 하나 더, 통통하니, 씹어 먹으면 뜨거운 물이 툭 터져 입천장이 데어 다 까지면서도 씹는 맛이 좋아서 골라 먹던 미더덕도 생각난다.
생대구탕을 앞에 두고 푹푹 눈이 내려 쌓이던, 고드름이 창같이 길게 자라, 눈과 고드름이 아이들인 우리의 장난감이 되었던,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이 떠오르는 건 무엇 때문일까?
생대구탕에 살들이 넘친다. 몇 국자를 덜어내도 뜨는 국자마다 살덩이가 따라 올라온다. 그중에 미더덕이 따라 올라왔다. 어린 시절 미더덕 물에 입천장을 덴 것이 각인된 탓인지, 살살 옆으로 미더덕을 몰아놓고 식힌다. 누가 보면 먹기 싫어 밀어놓은 줄 알겠지만, 실상은 향긋한 미더덕 향이 좋아, 유년으로 통하는 열쇠이기도 해서 아껴두고 먹으려 한 것이다.
생대구탕이든 동태탕이든 한결같이 맛이 좋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탕은 예나 지금이나 혼자 먹지 않고 함께 둘러앉아 먹는 음식이다. 그래서인지 탕을 제대로 맛보려면 서로 가까이 모여 먹어야 한다. 특히 겨울에 먹는 탕은 멀어진 마음의 거리까지도 따뜻하게 데워 준다.
이 겨울, 부모님과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동태탕을 끓이며 오랜만에 그 거리를 좁혀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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