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슈가 기부로 … 자폐아동 음악으로 자립
1박2일 캠프서 연주하면서
사회성 훈련하고 소통 익혀
무대공연 통해 자립 체험도
자폐스펙트럼 10년새 두배
아직 원인도 완치법도 불명
조기 발견·사회 치료 필요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본관 옆 70여 년 역사를 지닌 제중관 건물 1층, 이곳에 세계적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슈가(본명 민윤기)가 50억원을 기부해 만들어진 자폐스펙트럼장애(이하 자폐) 아동 치료 공간인 '민윤기치료센터'가 있다. 어린이병원과 이어진 분주한 복도 한편에 음각으로 현판을 새겼고, 안쪽엔 상담실과 방음 처리된 음악·사회성 치료실이 자리한다. 추후 확장 이전을 염두에 두고 문을 연 작은 공간이지만 까끌까끌한 벽지, 한두 명 몸을 넣을 수 있는 쉼터 등 자폐 아동의 감각을 자극하면서도 마음에 안정을 주는 배려가 곳곳에 묻어 있다. 발달장애 화가 이규재의 '봄을 기다리는 겨울 숲' 등 그림도 걸려 있는 공감각적 아지트다.
이곳에서 만난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겸 민윤기치료센터 소장은 "수십만 명의 자폐 영유아를 진료하면서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을 대학병원 안에 구축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그 꿈이 현실이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자폐에 대한 인식은 드라마나 육아 예능 등 미디어 노출 증가와 함께 자연스레 높아졌다. 덩달아 자폐 환자도 늘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자폐성 등록장애인 수는 4만7350명으로, 10년 전 대비 두 배 이상이다. 천 교수는 "환자가 갑자기 폭증했다기보다 인식되지 않던 아이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라며 "부모의 고령화, 대기 오염이나 호르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유전자의 변이를 초래한다는 것도 중요 가설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자폐는 아직 '불치'의 영역이다. 상급종합병원 전문의의 진단을 받으려면 최소 1년 길게는 5년까지도 걸리는데, 어렵게 진단을 받아도 완치법이 없다. 검증된 치료법은 행동 수정, 언어 치료, 사회성 훈련 등 증상을 완화하는 정도다. 이것도 맞춤형으로 받기는 어렵다. 천 교수는 "자폐 아동별로 심각성과 발달 정도가 천차만별이라 집단 치료를 할 때도 애로가 있다"고 했다.
이에 그가 새롭게 고안해낸 대안이 음악을 활용한 'MIND'(Music·Interaction·Network·Diversity) 치료법이다. 지난해 11월 슈가가 천 교수에게 먼저 재능 기부 의사를 밝혀왔고, 올해 상반기에 함께 기존의 사회성 기술 훈련을 음악이라는 언어로 확장하는 임상을 거쳤다. 천 교수는 "말을 잘 못하는 아이여도 감각만 있으면 함께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언어의 벽을 넘어 자연스럽게 차례 지키기, 감정 조율 등의 상호작용 문법을 경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천 교수는 25년간 전문의로서 수많은 자폐 환자를 경험했다. 눈 맞춤도 안 되던 아이가 어엿한 영업사원이 돼 선물을 사들고 찾아오기도, 곤충 그림에만 집착하던 아이가 레스토랑 셰프가 돼 결혼 소식을 전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몇 사례를 제외하면 '자립'의 벽은 여전히 높다. "자폐 아동·청소년에게 자립은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의미 있는 역할을 찾는 과정이에요. 단순히 혼자 살아가는 능력이 아니라 존재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이죠. 그런데 국내 장애인 고용은 사회적 기업이나 대기업의 시혜적 베풂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에 그는 단순 노동, 소일거리보다는 문화 예술 직업군에서 가능성을 찾고 있다. 지난 9월 말 개소한 민윤기치료센터에서 주력할 MIND 치료는 우선 연내 1박2일 캠프와 정식 공연을 통해 '자립'의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12월 9일 'MIND 밴드' 창단 연주회에 대해 천 교수는 "원래부터 악기에 능숙한 아이가 아니어도 훈련을 통해 꽤 근사한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타인에게 박수와 찬사를 받는 경험, 자기 욕구를 참고 연습해보는 과정 등이 모두 치료이자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자폐 치료의 핵심으로는 조기 진단과 개입이 꼽힌다. 천 교수는 현재 연세대·서울대 컨소시엄으로 국가 과제 '자폐 조기 선별 디지털 의료기기'를 개발 중이다. 아이의 행동 영상을 인공지능(AI)이 분석해 자폐 위험도를 예측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보건소·소아과·가정용 앱 등으로 보급하는 게 목표다. 천 교수는 또 "진짜 치료는 의료뿐 아니라 가족, 학교, 지역사회의 연계 속에 이뤄져야 한다"며 "통합 연결 시스템이 구축될 때 비로소 자폐 치료의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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