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호 변호사의 법률 칼럼] 판결문이 손난로가 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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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살갗을 콕콕 찌르는 계절입니다.
"채무불이행", "불법행위", "각하"와 같은 낯선 법률 용어들로 가득한 판결문은 당사자에게 마치 외국어처럼 느껴집니다.
이러한 권고에 따라 위 판결처럼 법률 언어의 벽을 허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법의 언어가 차가운 기호와 개념에서 벗어나 따뜻한 사람의 언어가 되는 날에 판결문이 누군가의 손난로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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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살갗을 콕콕 찌르는 계절입니다. 추위를 견디게 하는 건 큰 난방보다 작은 온기입니다. 주머니 속 손난로처럼 말입니다. 법도 그렇습니다.
2022년 12월 추운 겨울날 한 법정에서 작지만 큰 변화가 있습니다. 큰 공감을 주었기에 이를 소개합니다. 판결문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장애인 당사자를 위해 판사가 직접 '쉬운 말로 요약한 판결문'을 써준 것입니다(서울행정법원 2021구합89381 판결). 이 요약본에는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와 같은 평이한 표현과 함께,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그림까지 첨부되었습니다. 한 사람을 위한 배려가 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었습니다.
패소 소식을 듣고 법원을 나서는 길은 유난히 바람이 매섭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때 사람에게 온기를 주는 건 복잡한 법리가 아니라 한 줄의 배려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배려는 오랫동안 외면했던 법의 언어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채무불이행", "불법행위", "각하"와 같은 낯선 법률 용어들로 가득한 판결문은 당사자에게 마치 외국어처럼 느껴집니다. 내 삶의 중요한 결정이 담긴 문서를 한 줄도 이해하지 못할 때 느끼는 절망감은 변호사 없이는 법의 장벽을 넘을 수 없는 서글픈 현실을 보여줍니다.
언어는 권력의 도구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그 권력을 해체하고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도 지배층이 독점하던 한자의 권력에서 벗어나 백성이 스스로 말하고 기록할 수 있게 한 언어의 해방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법원은 시대 변화를 읽고 이러한 길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인의 사법 접근성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사법적 절차 전반에 걸쳐 사용할 수 있는 정보전달 및 상호 의사소통의 대안, 보강수단(점자, 수화, Easy-Read, 오디오 및 비디오 등)을 개발하라"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권고에 따라 위 판결처럼 법률 언어의 벽을 허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복잡한 법률용어 대신 쉬운 표현을 사용하고, 표나 도표를 활용해 가독성을 높이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당사자가 판결문의 낯선 언어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다만 복잡한 개념적 체계이자 도그매틱인 법률 개념과 법률용어의 정확성을 전적으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법이 전문성 뒤에 숨어 사람들과의 소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일 것입니다. 법원이 평이한 대중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할 때, 법원은 다가가기 힘든 법대가 아니라 소통의 광장이 될 수 있습니다. 법의 언어를 일상의 언어로 바꾸려는 작은 노력 하나가 평범한 국민들에게 사법 신뢰를 주는 변화가 될 것입니다.
법의 언어가 차가운 기호와 개념에서 벗어나 따뜻한 사람의 언어가 되는 날에 판결문이 누군가의 손난로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분이 공감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법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 글 이권호 변호사

이권호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강남 구성원 변호사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허남이 기자 nyhe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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