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의 ‘싱가포르 합의’ 약속에 북한 “파렴치의 극치” …팩트시트 이후 첫 비판
한·미 관세 합의 “제물포 조약 연상케”
수위 조절…향후 북·미 대화 염두
대통령실 “적대·대결 의사 없다”

북한이 한·미가 북한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고, 동맹 현대화를 합의한 데에 대해 “대결적 기도가 다시 한번 공식화됐다”며 “국가의 주권과 안전이익, 지역의 평화수호를 위한 보다 당위적이며 현실대응적인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18일 밝혔다. 지난 14일 한·미가 관세·안보 협상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설명자료)와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을 발표한 후 처음으로 북한 입장을 내놓으며 반발한 것이다. 다만 입장 발표 주체를 조선중앙통신 논평으로 격을 낮추고, 거친 표현을 자제하면서 향후 북·미 대화 재개를 고려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변함없이 적대적이려는 미·한 동맹의 대결 선언’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한·미 팩트시트와 제57차 SCM 공동성명에 대해 “지역정세 긴장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는 미·한의 도발적 행태”라며 이같이 밝혔다.
통신은 팩트시트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문구가 담긴 것에 대해 “우리 헌법을 끝까지 부정하려는 대결 의지”라고 밝혔다. 또 한·미가 2018년 6월 북·미 싱가포르 합의를 이행키로 합의한 것에 대해 “미국이 스스로 파기하고 백지화한 과거의 조·미합의 이행을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파렴치의 극치”라고 밝혔다.
이는 싱가포르 합의에 담긴 비핵화 논의를 거부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싱가포르 합의에는 비핵화 이외에 ‘새로운 북·미 관계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담겼다. 앞서 지난 7월29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도 핵 보유국 지위 인정을 전제로 한 대화를 요구하며 해당 합의를 “실패한 과거”라고 규정한 바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해당 합의의 이행에 소극적인 미국을 비판한 것이지, 합의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통신은 미국이 한국에 대한 관세를 15%로 인하하고, 한국이 대규모 대미 투자를 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는 “불평등한 제물포 조약(1882년 조선·일본의 조약)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또 한국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3.5%로 증액하고, 미국산 무기를 250억달러어치 구매키로 한 것을 언급하며 한·미 관계를 “상전과 주구 사이의 철저한 종속관계”라고 평가했다. 한국을 미국에 종속된 하위 주체로 규정하고, 향후 미국과 협상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통신은 또한 한·미가 확장억제와 핵협의그룹(NCG) 이행을 재확인한 것에 대해 “반공화국 대결적 행위”라고 밝혔다. 또 한·미 동맹의 현대화는 “미국 주도의 나토식 안보 구도를 형성해 경쟁 적수를 포위 억제하려는 미국의 패권적 기도”라고 말했다.
이날 논평은 한·미의 팩트시트와 SCM 공동성명 발표를 계기로 북한이 기존 입장을 재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기존 입장을 짚고 넘어가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다만 발화 주체를 당국자가 아닌 국영통신사의 논평으로 택하고 한·미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 수위를 낮춘 것으로 평가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강하게 대응할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의 창을 닫아버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정부는 조선중앙통신의 논평과는 달리 북측에 적대나 대결 의사가 없다”며 “남북 간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을 위해 일관되게 노력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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