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엔 ‘88·삼포’, 이젠 ‘쉬었음 세대’된 대한민국 30대 [매경포럼]

이재철 기자(humming@mk.co.kr) 2025. 11. 1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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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 발표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30대에서 구직조차 포기한 '쉬었음' 인구가 33만명을 넘어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찍었다는 것입니다.

십수 년 전부터 언론에 도배되던 '88만원(비정규직 한 달 월급) 세대',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 '오포(집·취업까지 포기) 세대'로 불리던 그 청년들이 지금 30대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에 앞서 일본은 10여 년 전 500만명에 육박하는 20·30대 비경활 인구 폭증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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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통계 속 ‘30대 쉬었음’ 증가
과거 ‘삼포·오포’로 불린 그 세대
선행지표 日 ‘청년무업자’ 닮은꼴
아무리 달려도 현실 나아지지 않아
‘거울 나라 앨리스’ 동화 같은 현실
기사 연관 이미지 <챗GPT 생성>
얼마 전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 발표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30대에서 구직조차 포기한 ‘쉬었음’ 인구가 33만명을 넘어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찍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30대 취업 포기가 늘었는지 정부 설명이 썩 명쾌하지 않았습니다.

“30대 고용률과 경제활동참가율은 전반적으로 양호한 편이지만, 비경제활동 인구 중 육아·가사 부문이 줄고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인원이 늘어나는 경향이다.”

이 발표를 해석하자면 예전엔 30대 비경제활동(취업·실업도 아닌 쉬었음·이하 비경활) 인구 상당수가 결혼과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해 휴직한 사례들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이유 있는’ 쉬었음 인구마저 줄고 있습니다. 결혼도 미루고 반복되는 구직 활동에 지쳐 나동그라지는 30대가 늘고 있다는 뜻이죠.

이 대목에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잊고 있었습니다.

십수 년 전부터 언론에 도배되던 ‘88만원(비정규직 한 달 월급) 세대’,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 ‘오포(집·취업까지 포기) 세대’로 불리던 그 청년들이 지금 30대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1980년 중반~1990년대생인 이들은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좋은 직장을 기대했건만 좁아지는 정규직 취업 문턱에 경악하며 스펙 쌓기 전쟁을 치렀습니다. 취업 후에는 일반 근로소득으로는 부모 세대가 이룬 부의 경로를 따라갈 수 없는 현실.

30대가 된 이들의 생존 몸부림을 우리는 ‘영끌·빚투 세대’로 자조하고 토닥입니다.

우리에 앞서 일본은 10여 년 전 500만명에 육박하는 20·30대 비경활 인구 폭증을 겪었습니다. 패러사이트 싱글(기생족),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사토리(달관) 등으로 불린 세대입니다.

2014년 일본에서 출간된 ‘무업사회’ 북커버 <이미지=아마존>
당시 일본에서 출간된 ‘무업사회(無業社会)’는 이들을 ‘청년 무업자’로 특정하며 “한 번 직장을 잃거나 제때 취업하지 못한 이들이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고 경고했죠.

학계에선 이 절망의 나선 구조를 낙인효과(scarring effect)로 부릅니다.

사용자는 채용 과정에서 ‘취업 미경험자’를 상대적으로 덜 선호하고, 구직자는 이런 편향에 더 낙담해 결국 구직을 포기합니다.

국가데이터처 통계 속 33만4000명의 ‘30대 쉬었음’은 우리도 일본식 ‘무업사회’ 경로을 닮아가며 ‘낙인효과’에 지쳐가는 게 아닌지 걱정을 키웁니다.

근로 현장에서 지식과 경험의 ‘스폰지’ 역할을 할 30대가 비경활 인구로 커진다는 건 노동의 ‘능력 축적’ 사다리가 함께 망가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양질의 일자리에서 젊고 유능한 인재가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축적되지 못하는 기업과 산업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국부 창출과 한미 안보 협력의 성장 엔진으로 떠오른 K조선이 대표적입니다.

지금 중국보다 뛰어난 배를 만드는 거제와 울산의 고숙련 인력이 대거 은퇴하는 시점에서 이를 대체할 역량 있는 후배 세대가 텅 비어 있습니다. 반도체, 전기전자, 모빌리티, 바이오 등 분야별 주력 기업마다 비슷한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 북커버 <이미지=아마존>
루이스 캐럴의 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편·1871년)를 보면 미지의 언덕에서 길을 잃은 주인공 앨리스의 손을 붙잡고 붉은 여왕이 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앨리스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주변 풍광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이곳에선 같은 자리를 지키려면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단다. 다른 곳으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두 배는 더 빠르게 달려야 해. 빨리, 더 빨리.”(붉은 여왕)

힘껏 달렸지만 한발 더 내디뎠다고 인지하기도 힘든 세상.

동화 속 부조리가 대한민국 ‘30대 쉬었음’ 통계에 현실로 묻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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