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돌파한 독립영화… ‘충무로 주인’ 된 비결은

이민경 기자 2025. 11. 1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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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주인’ 흥행… 윤가은 감독의 3가지 매력
① 극사실주의적 연출 - 경험 담긴 장면에 현실감 백배
② ‘진짜’이야기를 내놓다 - 이창동 감독의 조언 큰 힘
③ 미성년 배우와 협업 - 깊은 대화로 생생연기 끌어내
주로 초등학생 아이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뤄왔던 윤가은(오른쪽 위 작은 사진) 감독이 세 번째 장편 ‘세계의 주인’에서는 연령대를 고등학생으로 높였다. 여전히 ‘극사실주의’적 연출 감각이 깊게 배어 있다.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얼굴도 낯선 신인 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독립영화가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달 22일 개봉해 지난 14일 누적관객수 10만 명을 넘어섰다. 대형 상업영화의 관점에서 10만 명은 보잘것없는 숫자처럼 보이지만 독립영화로는 ‘1000만 영화’에 못지않은 성적이다. 데뷔작 ‘우리들’(2016)로 눈도장을 찍었던 윤가은(43) 감독의 새 영화 ‘세계의 주인’ 이야기다.

윤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세계의 주인’이 올해 독립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주말을 지나며 누적관객 11만명(17일 기준)이 됐다. 윤 감독의 전작 ‘우리들’(5만3141명)과 ‘우리집’(5만6852명)이 거둔 성적의 더블 스코어다.

윤 감독의 연출에는 일종의 ‘문법’이 존재한다. 그중 ‘극사실주의’(하이퍼리얼리즘)는 매 작품에서 드러나는 대표적 특징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데, ‘세계의 주인’ 속 주인(서수빈)과 ‘우리들’의 선(서수인) 등 주인공들은 당장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다 마주칠 것처럼 현실감이 충만하다.

리얼리티의 비결은 윤 감독의 다양한 경험과 그에 바탕한 취재에 있었다. 전작 ‘우리들’에서는 교사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초등학교 교실에서 은밀히 작동되는 권력관계가 펼쳐지는데, 이는 윤 감독이 단짝 친구에게서 받은 상처의 경험이 재료가 됐다. ‘세계의 주인’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세차장 신도 역시 윤 감독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내면의 아픔을 표면화하길 꺼리는 주인과 엄마 태선(장혜진)이 유일하게 터놓고 응어리를 풀 수 있는 곳을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 기계식 세차장으로 설정해 공감을 부른다. 세차 중인 차 안에서 주인이 억누른 감정의 고삐를 풀고 엄마와 진심으로 대면할 때 관객도 해방감을 맛본다.

아울러 윤 감독은 ‘세계의 주인’을 만들면서 주인공 캐릭터를 관객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각종 의학서적과 논문을 “닥치는 대로 읽고 공부”했고, “일말의 고정관념까지 모두 격파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피해자 인터뷰를 했다고 밝혔다.

또 하나는 선배 이창동 감독의 조언과 자신만의 결심이다. 윤 감독은 “시나리오 공부할 때 이 감독님이 ‘이야기는 만드는 게 아니라, 만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솔직히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며 “이번 작품을 하면서 드디어 알게 됐다. 작가적인 제 의지를 내려놓고, 실재하는 것과 인물을 정확하게 바라보려고 했다”고 밝혔다. ‘진짜 이야기’를 내놓기까지 이번이 ‘유작’이 될 수도 있다는 비장한 결심도 한몫했다. 그는 “사실 아주 오랫동안 10대 여성 청소년의 성과 사랑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안 났다”며 “코로나 팬데믹 기간, 내게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올까 고민했다. 어쩌면 내 마지막 영화가 될 수도 있기에 풀지 못한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고 고백했다.

마지막으로 미성년 배우들을 조화롭게 지휘하는 능력은 윤 감독만의 특기라고 할 만하다. ‘세계의 주인’에서 여고생들이 막춤을 추고 영상을 찍으며 노는 장면은 정말 고등학교의 한 반을 찾아가 찍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날것의 생생함을 보여준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자신들을 담고 있는데, 어떻게 배우들은 진짜 친구들처럼 어우러질 수 있을까. 윤 감독은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최대한 개개인과 깊은 대화를 하고, 가장 평범한 고등학생의 얼굴을 한 배우들을 모았다”며 “이들이 서로 친해져서 이미 촬영에 앞서 친구가 되어 있었다”고 비결을 밝혔다. ‘우리들’과 ‘우리집’에서는 훨씬 더 어린 배우들이 출연했다. 이때도 윤 감독은 한 사람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나리오를 이해시키고 현장에서 상황극을 통해 ‘진짜’ 연기와 대사를 끌어내곤 했다.

고르고 고른 메시지를, 커다란 노력을 들여 영화로 내놓은 윤 감독은 그럼에도 “다음 작품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영화산업이 많이 변한 상태에선 더욱 차기작을 어떻게 할지 걱정이 큽니다.”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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