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 앞까지 찾아온 혐오… 최전선에 선 구로중학교의 분투기

‘이주 배경 학생 30% 이상인 학교 전국에 350곳’ ‘다문화 학생 97%인 학교 등장’···.
이주민 집중 거주지역의 학교들은 종종 느닷없는 관심을 받는다. 모든 맥락을 제거한, 20자 이내의 제목으로 압축된 이런 뉴스들 아래 댓글에는 한국이 망할 것이란 탄식부터 내국인이 역차별당한다는 분노가 쏟아진다.
이주 배경 학생 증가는 매번 호들갑스럽게 조명되지만, 사실 수년간 이뤄진 자연스러운 변화다. 2025년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초·중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주 배경 학생 수는 20만명을 넘어섰다. 10년 전보다 2.5배 증가했다. 전체 학생 수는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교실의 모습은 이미 많이 달라졌고, 앞으로 더 달라질 전망이다.
이주민 집중 거주지역이 최근 더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극우 시위대가 서울시 명동과 대림동, 경기도 수원과 안산 등을 찾아가 혐오를 담은 구호를 외친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구로중학교도 그런 혐오 공격의 최전선에 선 학교 중 한 곳이다. 분명 상처를 입었지만, 내내 무방비였던 것만은 아니다. 거기엔 이미 선주민, 이주민 학생과 공존하기 위해 애썼던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다름과 공존해야 하는 지역엔 갈등도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처음 겪는 문제들이고 더 많은 자원과 사람이 연결되어야 했다. 바꾸어 생각하면, 이들 지역은 문제 해법도 더 많이 알고 있는 곳이다. 이주민을 둘러싼 혐오 정치가 득세하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이 경험을 참고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지난 9월부터 2개월간 취재한 구로중학교의 이야기를 싣는다. 이 이야기는 혐오뿐만 아니라 혐오에 ‘대응’한 기록이기도 하다.
#9월17일 대림역 4번 출구
저녁 7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사람들이 경찰이 친 바리케이드 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마다 손에 든 슬로건엔 ‘화교 혜택 들어봤어? 자국민 역차별’ ‘중국인 투표권 중국 노예됨’ ‘차이나 아웃’ 따위 내용이 적혀 있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 주택가가 시작되는 초입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소식을 듣고 나온 인근 주민들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얼굴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막 퇴근한 구로중학교 교사 박복희씨가 시위대 맞은편에 도착했다. 혹시라도 학생들이 여기를 지나칠까 봐 겁이 났다. 그의 학교로부터 불과 300m 거리였다. “왜 이런 시위를 허가해준 겁니까? 인근에 학교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도로를 통제하던 경찰관은 서로 가까이 있으면 충돌이 일어날 수 있으니 “얼른 지나가달라”고 당부했다. 시위대가 튼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쩌렁쩌렁 흘러나왔다.

혐중 시위 소식이 알려진 건 전날이었다. 주최 측은 민초결사대라는 극우 성향 단체로, 대림역 인근에 한 달 동안 집회신고를 했다. 앞서 중국인 관광객이 찾는 명동에서 커지던 혐중 집회를 두고 이재명 대통령이 “깽판”이자 “업무방해”라고 비판하면서 명동 진입이 가로막혔다. 경찰이 제한 통고를 내린 것이다. 그러자 중국계 이주민이 많은 구로와 대림 쪽이 극우 시위대의 다음 타깃이 되었다.
올해만 두 번째였다. 7월11일에도 윤석열 지지자들이 대림역 11번 출구에 집결했다. 이들은 거리를 행진하며 ‘중국공산당을 추종하는 중국인은 꺼지라’고 외쳤다. 중국 동포 자녀들이 다니는 학원을 운영하는 문민씨는 급히 휴강 문자를 보내야 했다. “결국 아이들이 다 본 것 같더라고요. 아직까지 (혐중 시위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꺼내지 못하겠어요. 저도 질문에 답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걸요.” 최근 몇 년간 이주민 집중 거주지역을 향한 혐오가 확산했지만 이렇게 “문 앞까지” 찾아온 줄은 몰랐다. 한국에 정착한 지 30년 차인 그는 무력감을 느꼈다. “아이들이 당장은 표출 안 하지만 다들 마음에 새기고 있을 거예요.” 그날 혐중 시위대가 대림동에 머무른 건 고작 두어 시간이지만 그 여파는 오래 남았다.
두 달 뒤 다시 벌어진 혐오의 현장, 어떻게 해서든 시위를 막아야 했다. 그 전날 이 사실을 알게 된 구로중학교 조선영 교장은 구로구청과 경찰에 긴급 서한을 보냈다. “대림동은 다수의 이주민 가정이 생활하는 주거지이자 일상 공간입니다. 이곳에서의 혐오 집회는 주민과 학생들에게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간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선영 교장은 점심도 거르고 편지를 썼다. “남대문경찰서와 동일한 수준의 조치를 취해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혐중 시위대는 예정대로 도착했다. 메가폰을 쥔 한 남성이 구로동 주택가를 향해 소리쳤다. “우리는 중국인이 미워서 온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 땅을 사들인 걸 미워하는 거지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받을 혜택을 중국 사람들이 받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걸 올바르게 잡고자 온 것입니다.” 시위대 수십 명이 “맞습니다!”라며 연호했다. 조용했던 동네가 일순간 소란스러워졌다. 태권도 도복을 입은 초등학생 두 명이 시위대가 흔드는 깃발과 현수막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대응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교사 박복희씨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가오리방쯔와 조선족
“우리 조상이 조선족이 되고 싶어서 한국 땅을 떠났습니까?” 중국 동포 주성만씨가 되물었다. 1995년 한국에 입국해 귀화한 지 20년 차다. 9월17일 집 근처에서 벌어진 혐중 시위를 보며 “아득바득 살아온” 조선족 역사를 떠올렸다. “일제강점기에 살기 힘들어서, 강제 이주에 의해서, 독립운동 한다고 중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이잖아요.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에게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불법체류’ 딱지를 붙였습니다.”
1999년 재외동포법이 제정되었지만 중국 동포는 제외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해외로 이주한 동포’가 대상에서 빠지면서다. 주성만씨는 미등록 상태를 해결하고자 거리에서 촛불도 들고 국회도 찾아갔다. 방문취업(H2) 비자와 재외동포(F4) 비자로 체류 자격이 점차 확대되기까지 끈질긴 싸움이 있었다. “우리가 특혜받았다고 하는데 순 거짓말이에요.” 구두닦이부터 건설 현장, 자동차 공장, 조경업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대체로 인력난이 심한 업종만이 허락되었다.

이제 좀 살 만해지나 싶더니 구로와 대림을 향한 혐오가 휘몰아쳤다. 주성만씨 같은 중국계 이주민들이 모여 중국 상권과 주거지를 형성한 곳이다. 법무부 통계월보에 따르면 서울 구로구와 영등포구에 사는 중국계 이주민은 각각 4만6000명, 4만4000명으로 전체 인구 중 12%, 11%를 차지한다. 중국 동포를 대상으로 건강기능식품 사업을 하는 그는 “중국 사람이 없으면 한국 식당도 한산해지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동네에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있었다.
서울 구로만 겪는 문제가 아니었다. 경기도 안산과 수원에서도 혐중 시위가 벌어졌고, 서울 광진구 자양동 양꼬치 거리에서 혐중 집회를 연 윤석열 지지자들이 상인들과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중국인 여행객과 유학생이 길거리와 버스에서 폭행당하는 피해 사례가 보고되었다. 국민의힘에서는 ‘중국인 3대 쇼핑 방지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했다.
“중국에 있을 때는 ‘가오리방쯔(高麗棒子·고려 몽둥이라는 뜻으로 한국인을 비하하는 용어)’라고 불렸어요. 조선족이라는 말은 저에겐 원래 아주 자랑스러운 이름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지금 멸칭으로 쓰이는 것 같아요.” 중국과 한국에서 이중의 차별을 겪었다. 주성만씨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처했다. “다들 자기 속마음 표현하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중국 동포를 향한 혐오가 속수무책으로 퍼지고 있었지만 중국 동포 주민들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9월18일 구로중학교 행정실
이튿날 행정실로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다. 혐오 집회를 막아달라는 학교장 서한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례없는 관심이 쏟아졌다. 교장이 나서는 경우가 드물었다. 기사 속 ‘구로구 A 중학교 교장’이 이 학교가 맞냐며 따져묻는 격앙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울렸다. 이틀 내내 조선영 교장은 학교가 노출되는 걸 막느라 진땀을 뺐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가 이 문제에 침묵할 수는 없었어요. 우리 학생과 학부모 중에 당사자가 있으니까요.”

구로중학교는 전체 학생 437명 중 55.2%가 이주 배경 학생이다. 이들 중 대다수가 중국 출신, 즉 중국 동포 자녀다. 3년 전만 하더라도 이 비율이 절반 아래(46.2%)였는데 빠르게 늘고 있다. 2014년 이후 중국 동포가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를 초청할 수 있게 되면서 구로구와 영등포구의 학교엔 최근 몇 년간 새로운 전학생들이 찾아왔다. 조선영 교장은 “귀화 절차가 어려워 부모가 한국 국적 취득을 안 한 것뿐이지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절반이 넘는다”라고 말했다. 중국 국적이지만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학생도 많다. 서로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는 뜻이다.
구로중 2학년 5반 담임을 맡고 있는 박복희씨는 최근 시위에 대해 섣불리 묻기가 조심스러웠다. 혐중 시위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이 있을까 봐 걱정됐다. 수업 시간에 슬쩍 얘기를 꺼냈더니 한 학생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한심하네요!” 당찬 대답에 박복희씨는 “빵 터졌다”. “제가 언젠가 아이들한테 농담으로 ‘우리말로 하라’고 했더니 ‘선생님, 우리말이 중국어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말해요. 제가 실수했다고 사과해야 했죠. 아이들은 씩씩하게 지내요.”
지금 당장 드러나지 않더라도 언젠가 갈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게다가 민초결사대가 9월25일 또 한번 대림역 4번 출구에 집회 신고를 해둔 상황이었다. 소통 채널을 만들어야 했다. 그때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이 박복희씨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구로동, 대림동 소재 학교 선생님들과 동포 단체장들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보면 어떨까요?” 조선영 교장의 ‘혐오 반대’ 편지가 공론화되면서 지역사회 단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간 목소리 내는 데 조심스러웠던 동포 단체들도 적극적이었다. 혐오 시위를 계기로 지역사회가 끈끈하게 묶이고 있었다. 박복희씨는 화답했다. “9월23일 저녁 구로중학교에서 만나시죠.”
#‘기피 학교’를 찾아온 사람들
박복희씨는 올해 구로중으로 다시 돌아온 교사다. 2014년부터 6년간 근무했다. 정년을 4년 남겨둔 상황이었다. “현장에 사람이 필요하다”는 교장의 연락을 받았다. 현장이란 ‘이주 배경 학생 비율이 과반인 학교’를, 사람이란 ‘다문화 교육을 담당할 전문가’를 의미했다. “이 학교는 대부분 신규 교사가 와요. 선생님들한텐 험지거든요. 준비되지 않은 교사들에겐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에요.” 박복희씨가 말했다.
종종 ‘다문화 학생 비율이 ○○% 넘어선 학교가 등장했다’는 기사가 뜬다. 대체로 소통이 안 돼 수업 진행이 버겁고 내국인 학생이 소외되는 등 역차별 논란이 제기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차별과 혐오가 뒤섞인 댓글이 달린다. 한국인 학생들이 이탈하면서 이주 배경 학생의 밀집이 더 가속화된다. 교사들에겐 업무가 많은 ‘기피 학교’로 불린다.
상대적으로 밀집이 서서히 진행된 구로중도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박복희씨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전교조 조합원으로 구로 지역에서만 교사로 20년을 근무했다. 그에게는 ‘투쟁의 역사’가 쌓인 지역이었다. “직영 급식, 교복 공동구매 같은 혁신 교육의 본산지가 바로 구로였어요.” 1960년대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형성된 학교들은 노동자들의 자녀가 다니는 곳이자 노동자 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구로공단이 쇠퇴한 후로 중국계 이주민들이 유입되며 지역사회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는다. 2025년 서울시 교육청 다문화교육 기본계획에 따르면, 구로·영등포·금천 지역은 이주 배경 학생 비율이 29.04%(6180명)로 가장 많다(평균 7~8% 수준, 강남·서초 지역이 2.75%로 가장 적다). 노동자의 역사를 함께해온 구로중은 이제 공존의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최전선’이 되었다.

박복희씨가 처음 혐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2014년 구로중에서였다. “반에 중국 동포 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짱깨’라는 말을 쓰면서 놀리더라고요. 굉장히 밝았던 아이 표정이 일순간에 일그러지는 걸 봤어요.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전교에 중국 출신 학생이 20명 남짓했다. 한어 병음으로 표기된 이름이나 원활하지 않은 한국어가 놀림의 소재가 되었다. 아이는 그럴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려 했다. “다문화라는 표현이 이제 낙인처럼 쓰이지만 사실 말 그대로 ‘문화가 다양하다’는 뜻이잖아요. 종교, 언어, 장애 유무, 성적 지향, 심지어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까지 사람마다 배경이 다양한데, 그 다름과 어떻게 살아갈지 가르치는 게 교사들이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중도 입국 학생들이 늘어나는데 학교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구로중이 ‘험지’인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 아니었다. 다문화 교육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력과 예산, 행정적 지원의 문제였다. “구청과 싸우고 교육청 향해 피케팅도 하고 난리를 쳐서” 교육 인프라가 하나씩 마련되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다문화 특별학급이 만들어지는 한편,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다문화 교육 프로그램이 갖춰졌다. “다문화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기득권층이 전혀 모르는 영역이에요. 교육청에 중장기 계획을 가지고 의논할 사람이 없어요.”
혼자서는 역부족이라 느끼던 때 한채민씨를 만났다. 2017년 구로중에 부임한 신규 교사였다. 영화 〈청년경찰〉이 개봉되며 혐오 표현들이 대림동을 향하고 있던 때다. “학생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조선족이라는 말을 교사가 써도 될까? 그런 고민들을 하다 보니 우리 안에서만 해결될 일이 아니더라고요(한채민).”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그해 ‘각색 교사 모임’을 만들었다. 각각의 색깔로 빛나는 학교라는 뜻이다. 기피 부서라 불리는 곳에서 분투하는 이들이 각색을 찾아왔다. “부딪칠 일이 많지만 같이 모이니까 위로가 되더라고요(박복희).” 구로·영등포·금천을 중심으로 한 교사 공부 모임에서 시작해 구청과 교육청, 시민단체 관계자 10여 명 등 지역사회 네트워크까지 결합했다. 교육행정의 빈틈과 이주민 차별에 대응하려면 온 마을이 필요했다.
각색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는“이주민 밀집지역에서의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처음 겪게 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구로는 집중화가 선행된 지역이라 시행착오든 성공 사례든 참고할 자료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없는 길을 만들어가던 각색 모임은 설립 8년 차, 혐오에 맞서는 가장 앞줄에 섰다.
9월25일 대림역 4번 출구에서 열린 맞불 집회에서 박복희씨는 마이크를 잡았다. “저쪽에 계시는 가짜뉴스를 양산하며 혐오를 부르짖는 분들 들어보세요. 다양한 이웃들과 함께하는 것은 새로움에 대한 턱을 넘는 능력을 키울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우리는 이렇게 이웃과 마을과 세상과 연대할 것입니다.”
#10월24일 구로중학교 교실
오전 8시50분이 되자 1교시 종이 울렸다. ‘찾아가는 세계시민교육’이 열리는 날이었다. 다문화 정책 학교인 구로중에서는 일부 창의체험활동 시간에 인권교육이 이뤄진다. 이날의 주제는 ‘지역사회 문제 해결하기’였다. “우리 동네에서 불편한 것, 개선했으면 좋겠는 부분이 있을까요?” 강사의 질문에 2학년 5반 학생들이 저마다 포스트잇에 빼곡이 써 내려갔다. 학교에 매점이 없어서, 자전거도로가 없어서 불편하다는 의견들이 나오던 중 한 학생의 포스트잇에 “중국인이 많아서 불편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서현이 넌지시 물었다. “이거 혐오 아니야?”
이주 배경 학생들이 과반을 넘으면서 서로 간에 상처줄 만한 표현은 전보다 줄었다. 다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갈등 요소는 상존해 있고 언제든 불붙여질 수 있다. 선주민과 이주민이 분리되는 걸 막기 위해 수차례 다문화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이 늘 있어요.” 포스트잇 메모가 박복희씨를 심란하게 했다. 접촉이 많아진다고 해서 무조건 다문화 수용성이 늘어나는 게 아니었다. “연구 결과 오히려 다문화 학생이 소수이거나 거의 없는 학교가 다문화 수용성이 더 높게 나타나기도 했어요. 참 어려운 문제예요.”

다문화 통합교육의 확산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구로중처럼 다문화 교육에 적극적인 학교로 ‘쏠림 현상’이 더 가속화되고 있어서다. 이미 이주 배경 학생이 많더라도 특별학급이 생기면 ‘밀집된다’는 인식 때문에 학교에서도 유치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서울시 공립중학교 가운데 다문화 특별학급은 구로중을 포함해 두 곳뿐이다. 중도 입국 학생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데, 내국인 역차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 틈을 혐중 시위대도 파고들었다. 10월28일 ‘자유대학’ 등 극우 성향 단체가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정근식 교육감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신이 중국을 혐오하지 않는다면 당신 손주들부터 대림동 초등학교에 입학시키십시오. 지금 대림동 초등학교에는 한국인이 사라지고 있고, 중국인 학생들로 잠식돼가고 있습니다. 무비자 입국 제도를 통해 전체 한국에 벌어질 문제입니다.” 지난 4월 구로구청장 보궐선거에 나온 자유통일당 이강산 후보도 “중국인 밀집 지역인 개봉역을 ‘을지문덕역’으로 변경해 ‘구로의 주인은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는 인식을 확고히 심겠다”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득표율 32%를 얻었다.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는 이번 혐중 시위의 결과로 중국계 이주민 집중화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본다. “화교 학교의 학생 수가 가장 많았을 때가 한국 사회에서 화교에 대한 차별이 제일 극심했을 때였습니다.” 외부적 차별과 분리 압박이 거셀수록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더 안전한 공간을 찾게 된다. 구로구 청소년 지원 단체 학교너머더큰학교의 이사인 권신윤씨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주민과 갈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구로구는 그 시기를 넘었어요. 지역 안에서 공존의 시스템이 나름대로 작동되고 있었거든요. 이번처럼 외부적인 공격이 들어왔을 때, 이 체계가 쉽게 무너질지 더 탄탄한 자기 회복력을 가질 지 지켜봐야 합니다.”
구로중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세계시민교육이 끝나갈 때쯤 강사는 2학년 5반 학생들에게 힘주어 말했다. “중국 사람을 혐오하는 시위가 있었지만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위를 열었어요.” 9월25일 대항 집회를 연 덕분에 교실에서 더 ‘안전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중국인이 많아서 불편하다’는 포스트잇은 어느새 지워져 있었다. 윤서(가명)는 말했다. “일상생활 할 때 크게 불편한 건 없어요. (한국어에 약한 친구가) 책 읽을 때 조금 기다려주면 되니까요.” 불편함이 있다 해도 해결하면 된다. 이미 반마다 이중언어가 가능한 통역가들이 두어 명씩 생겨 소통을 도왔다. 혜민(가명)도 그중 한명이다. “여기가 치안이 안 좋다는데, 직접 살아보면 나쁘지 않거든요. 그냥 중국인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죠.” 한 동네에서 자란 두 친구에게 국적은 큰 의미가 없었다.
#내 정체성은 중국인, 한국인, 조선족, 다문화
구로중 정문 100m 거리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중단하라’ ‘아이들 급식, 값싼 중국산으로?’ 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지원씨(가명)가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일본에서 벌인 혐한 시위와 다를 게 없네요.” 한 수도권 대학에서 패션디자인학을 전공하는 그는 구로중 졸업생이다. 어릴 적 들은 차별적 언사들이 스쳤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왜 우리 몫을 빼앗느냐’ 같은 말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왜 한국인이 아니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2003년 중국 옌볜에서 태어난 그는 6살에 한국에 왔다. 부모가 먼저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뒤 그를 데려왔다. 그때만 해도 구로구 학교엔 중국 동포 자녀가 소수였다. 학교 출석부에 이름이 ‘Jin Zhiyuan(진즈위안)으로 쓰여 있어 늘 주목을 받았다.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자주 움츠러들었다. 김지원씨는 억양을 고치려고 애를 썼다.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이주하는 중도 입국 청소년 중에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가정환경은 달라지고 언어는 낯설다. 때로 돌봄 공백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구로중에서 다문화 특별학급을 담당하는 한미희 교사는 “학교 오는 것 자체만으로 훌륭하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아이들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보기에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에서 ‘온전한 지지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아이들은 달라질 수 있다. “이주 배경 학생들이 특별학급에 와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선생님들이 친절해요’ ‘한국 학교는 나를 존중해요’예요.”
움츠러들던 김지원씨에게 버팀목이 되어준 것도 학교였다. 2018년 중학교 2학년 시절 다문화 수업이 그를 붙들어주었다. “‘다른 게 틀린 게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내가 중국인이라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처음 생각했어요.”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면서 김지원씨는 가족을 보듬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학교 체육대회 때 보통 가족들을 부르는데 어머니는 제가 부끄럽게 느낄까 봐 오지 않으셨어요. 한국에서 저보다 더 큰 차별을 받으며 살았던 거죠.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 너무 고생 많았다’ 그렇게 어머니를 위로했어요.”
당시 그의 담임이었던 한채민씨는 제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교사가 학생 한 명만 만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구로중을 거쳐간 졸업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지금은 당장 혐중 시위에 대해 어떻게 느끼냐 물어도 학생들이 잘 얘기를 안 하거든요. 앞으로 이 경험이 각자의 삶에서 해석될 텐데, 학교가 무엇을 했는지가 정말 중요해요.” 수치나 통계로 드러나지 않지만, 각색 교사들이 씨앗처럼 뿌렸던 다문화 교육이 조금씩 무언가를 바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지원씨는 “구로중에 다닐 수 있어 다행이었다”라고 말했다. “다름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어요. 제 안에 중국과 한국, 조선족의 역사가 다 섞여 있어요. 말 그대로 ‘다문화’예요.”
#연대가 혐오 이기는 역사를 위해
시위대가 떠난 뒤, 대림역 4번 출구는 다시 일상을 되찾았다. 언제든 혐중 시위대가 찾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을 놓을 수는 없지만, 각색 모임을 중심으로 한 대응 협의체는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했다. 혐오 시위에 제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은 “우리의 목적은 혐오의 사슬을 대림동에서 몰아내는 게 아니라, 끊어내는 것”이라 말했다. 명동에서 대림으로, 또 안산과 시흥으로 혐오 집회의 반경이 넓어지고 있었다. 박 소장은 “혐오에 반대하고 차별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사회적 여론이 고조되어 있다는 걸 가시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 이후 각색 모임에서는 일본의 혐한 시위에 맞선 ‘카운터스’ 활동을 자주 들여다본다. 2013년 재특회(재일 조선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모임)가 도쿄와 오사카에 있는 한인타운에서 혐한 시위를 열자, 일본 시민들은 여기에 맞서 끈질긴 대항 시위를 조직했다. 이들의 활동 덕분에 전 사회적으로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2016년 5월 일본 참의원에서 ‘혐오표현 방지법’이 찬성 다수로 통과되었다.

혐중 시위대가 완전히 떠나더라도 과제는 남는다. 이주민 집중 거주지역에서 공존 교육은 가능한가? 구로중 사례는 열정적인 현장 교사들이 다문화 의제의 공론장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여전히 다문화 부서는 기피 업무로 취급받는다. 결국 실제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박복희씨는 “미개척 분야가 너무 많다”라고 말한다. “특수교육의 경우 교육청 내 체계도 있고 교육과정이 준비된 상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이주 배경 학생과 관련해선 그런 자원이 없거나 빈약해요.” 정년이 얼마 안 남은 박복희씨의 목표는 교육청과 각 학교마다 더 많은 ‘전문인력’이 늘어나는 것. 그래야 이주민 혐오를 자극하는 정치인들에게 맞서 더 단단히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회의 자리가 열릴 때마다 박복희씨와 한채민씨는 자주 물었다. “연대가 혐오를 이기는 역사가 만들어질까요?” 각색 모임은 11월 중 구로구에서 이일하 감독의 다큐 〈카운터스〉 공동체 상영회를 열기로 했다. 2025년 겨울 대한민국,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혐오의 발화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거기 ‘대응’하는 이들의 분투도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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