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에서 숨진 26세 복서 김득구… 어머니·심판도 잇달아 목숨 끊어
1982년 11월 18일 26세

프로복싱 라이트급 선수 김득구(1956~1982)는 1982년 새해를 맞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사력을 다해 올해 안에 세계 챔피언이 되겠습니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기사는 스포츠 유망주를 연쇄 인터뷰하는 ‘82년을 뛴다’ 시리즈 중 하나였다. 제목은 ‘잡초처럼 질긴 근성 주먹, 금년 내 세계 도전’(1982년 2월 4일 자 9면)이었다. 기대대로였다. 한 달 후 동양 챔피언에 올랐다. 잇달아 3차 방어에 성공했다. 세계 타이틀 도전 자격을 얻었다.

1982년 11월 13일 김득구는 세계 챔피언 레이 맨시니의 2차 방어전 상대로 링에 올랐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팰리스 특설 링이었다. 절대 열세라는 예상을 깨고 9회까지 난타전을 벌이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10회부터 흔들렸다. 이미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14회 19초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맞고 링 바닥에 쓰러졌다. 일어서려 했으나 다리가 풀리며 비틀거렸다. 심판은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이후 의식을 잃었다. 뇌사 상태였다. 이틀 후 어머니 양선녀씨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99시간 만인 11월 18일 오전 11시(한국 시각) 생명 보조 장치를 떼고 26세 짧은 생을 마감했다. 신장을 기증해 미국인 두 생명을 구하고 하늘로 떠났다.
프로 데뷔 3년 11개월, 17승(8KO) 2패 1무 전적이었다. 강원도 고성 출신으로 17세에 가출해 구두 닦이·막노동 같은 일을 하다 복싱에 입문했다. 가난을 이겨내려 링에서 번 돈은 거의 모두 저축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경기 중 선수가 사망한 사건은 세계 복싱계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김득구 사망을 계기로 복싱 경기는 15라운드에서 12라운드로 줄었고, 의료진이 경기를 중단시킬 수 있는 ‘닥터 스톱’ 제도를 도입했다.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김득구 어머니 양선녀씨는 아들 사망 72일 만인 1983년 1월 29일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죽은 후 “젊은 것이 고생만 하다가 이제 겨우 살 만해졌는데 억울하게 일찍 갔다. 나도 따라 죽겠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누워만 있었다.(1983년 1월 30일 자 11면) 당시 경기 심판 리처드 그린도 선수를 보호하지 못한 죄책감에 사고 7개월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득구에게는 약혼녀가 있었다. 약혼녀 21세 이모씨는 임신 중이었다. 이씨는 김득구 사망 직후 “영혼 결혼식을 올리고 평생 그이를 남편으로 모시며 살겠다” “득구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식을 훌륭한 복서로 키우겠다”(1982년 11월 20일 자 11면)고 했다. 1983년 6월 22일 태어난 아들은 복서가 아닌 치과의사가 되었다.
챔피언 맨시니도 정신적 충격이 컸다.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천재 복서라는 평가였지만 3년 후인 1985년 은퇴했다. 맨시니는 “그 경기 이후로 복싱하는 게 괴로웠다”고 했다. 한때 다시 링에 복귀하기도 했으나 이후 영화배우로 변신했다.
사망 20주기인 2002년 6월 김득구 스토리를 담은 영화 ‘챔피언’이 개봉했다. 맨시니는 한국을 찾아 시사회에 참석했다. 김득구를 다시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겠느냐는 기자 질문에 맨시니는 허공을 오래 바라보다 말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저 악수를 건네고 그를 껴안을 것 같다.”(2002년 6월 26일 자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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