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각으로 비춘 세계의 기원… 현호정이 다시 쓰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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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8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현호정의 이야기들은 인간적인 시선과 관점을 고집해 온 이들에겐 당황스러울 수 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현호정 월드에서는 인간의 피를 받아 마시며 몸집을 불려 가는 라즈베리 나무와 대화하는 일이, 지구 탄생 비화를 누설하며 창세기를 다시 쓰는 일이, 지난 생에는 한 존재의 눈물이었으나 현생에서는 웅덩이에서 눈뜬 한 방울 물의 여정에 동참하는 일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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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정 소설집 '한 방울의 내가'
편집자주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8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11월 하순 발표합니다.

현호정의 '한 방울의 내가'는 낯선 체험을 안겨주는 소설집이다.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가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자기 형식과 리듬을 가졌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개성이다. 한 편의 시나 희곡을 읽은 듯한 인상도 든다.
현호정의 이야기들은 인간적인 시선과 관점을 고집해 온 이들에겐 당황스러울 수 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현호정 월드에서는 인간의 피를 받아 마시며 몸집을 불려 가는 라즈베리 나무와 대화하는 일이, 지구 탄생 비화를 누설하며 창세기를 다시 쓰는 일이, 지난 생에는 한 존재의 눈물이었으나 현생에서는 웅덩이에서 눈뜬 한 방울 물의 여정에 동참하는 일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소설을 읽다 보면 지금껏 몸이라고 단언하며 믿어왔던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경계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는 이 세계의 기원과 구조, 비밀을 비추는 광각 카메라를 가졌다. 소설의 넓은 화각은 때로는 신의 자리에서, 때로는 떠다니는 혼의 자리에서 익숙했던 세계를 다시 만나게 한다.

그러나 현호정 소설이 진짜 좋을 때는 기획이 돋보일 때가 아니라, 종이 위로 핏물이 번지듯 서사의 표피를 뚫고 어떤 눈빛이 만들어지는 순간들이다. '죽은 너를 향해서든 산 너를 향해서든 상관없이 나는 너를 향해 하강한다.' 표제작인 '한 방울의 내가'에서처럼 회수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회로 없는 사랑이 지속될 때. 한 방울의 물로서 경험하는 세계가 얼마나 외롭든 고통스럽든 그것이 물의 숙명임을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 머리와 가슴이 합을 맞춰 이인삼각 경기를 펼치는 순간들.
작가는 작은 옥구슬 하나를 건네며 현상 너머 본질을 들여다볼 것을 주문한다. '옥구슬 민나'. 세계를 구슬 하나 크기로 축소해 보라는 제언이다. 코앞만 보다간 겁에 질리고 말 테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매일을 살아갈 구체적인 용기니까. "어떤 힘에 끌려간다는 느낌이었는데, 그 힘은 내 힘이었어. 내 안에 있는 나의 힘." 이제 인물들은 '온'이라 이름 붙인 내부의 동력을 따라간다. 사랑은 우리의 인식과 이해를 넘어서는 지점에서 탄생과 사멸을 반복할 뿐 장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여기 있음과 아름다움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 단단한 사랑이 곧 소설의 눈빛을 이룬다.
실제적 사실의 재현보다는 심리적 진실을 따르는 데 골몰하는 현호정의 서사에는 독자가 들어가 앉아볼 의자가 많다. 우리가 읽은 것은 빙산의 일각일 따름이지만, 그의 소설은 말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소설이 된다.

안희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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